"'난 특별해' 자존감 중독 사회..'내 편 아니면 敵' 집단 자기애로 이어져"

박동미 기자 2021. 10. 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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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곽성호 기자
일러스트 = 이정호 작가
‘한국인의 마음’은 문화일보 문화부 유튜브에서 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국인의 마음 - 우리를 이해하는 7개의 질문

③ 소설가 정유정이 말하는 ‘우리는 왜 나르시시즘에 빠졌나’

행복, 삶의 궁극적 목적 아닌데

강박 빠진듯 집착하고 매달려

자기 집단에도 지나치게 확신

관용 부족해지고 갈등 부추겨

‘자유의지’로 뭘 원하는지 찾고

결핍 인정하는 게 진짜 자기애

‘개인은 자존감 중독, 사회는 집단 나르시시즘….’ 소설 ‘완전한 행복’에서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주변을 파멸로 몰고 가는 인물을 그렸던 정유정 작가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험한 징후로 비뚤어진 방식의 ‘행복 강박’을 꼽았다. 개인에게 그것은 무조건 높은 자존감, 항상 충만해야 하는 자기애로 드러나고, 사회적으론 ‘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 식으로 편을 가르는 집단적 ‘내로남불’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가장 ‘소중’하기에 빠른 ‘손절’(관계 끊기)이 일상이 된 나르시시즘의 시대. 마음을 지키기 위해, 균형을 잡기 위해 한국인은 무엇을 재설정해야 할까.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최근 정 작가를 만났다. 실체 없는 ‘행복’을 논하기 전에, 불완전한 ‘나’를 끌어안고, 진짜 나를 사랑하는 법을 찾기 위해.

#행복 강요하는 사회, 우리는 모두 자존감에 중독됐다

―나르시시스트의 범죄를 그린 근작의 제목이 ‘완전한 행복’이다. 자기애와 행복은 어떤 관련이 있나.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SNS를 봐도 그렇고, 요즘 너무 이상하지 않나. 온통 ‘행복’을 이야기한다. 거의 강박 수준이다. 행복해야 하고, 자존감이 높아야 하고, 자기애가 충만해야만 하고…. 그게 맞는 걸까. 행복의 가치를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행복을 다시 설정한다는 의미는.

“행복은 실체가 없고, 순간의 경험일 뿐이다. 사실 인류는 행복하도록 진화된 게 아니라 생존하도록 진화됐다. 먹고 사는 것에 매달린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삶을 충실히 산다는 뜻에서의 ‘생존’이다. 인생을 성실히 수행할 때 자존감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행복이란 순간이 잠시 찾아온다. 그러니까 절대 행복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고, 돼서도 안 된다.”

―행복에 대한 강박이 나르시시즘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나르시시즘은 비뚤어진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뭘 해야 행복할까에 골몰하니 집착과 강박도 생기고…. 사회 전반에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나를 사랑하는 게 나쁘다? 자존감과 자기애는 높을수록 좋을 것 같은데.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자기애와 자존감은 가짜다. 행복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다들 자기애, 자존감 높이기에 중독된 것 같다. ‘난 소중해’ ‘난 완벽해’ ‘난 세상의 중심이야’라며….”

#‘내로남불’ ‘손절’… 한국은 지금 ‘집단 나르시시즘’

―사회 전반에서 나르시시즘을 느낀다고 했는데, 집단적으로도 그러한가.

“나르시시즘이 ‘다이내믹 코리아’와 만나 독특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우리는 지나치게 분명한 것만 선호한다. 흑과 백 사이를 보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회색 지대에 있는 사람을 용인하지 못한다. ‘내 편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성향이 강하고,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한다. ‘내로남불’. 그게 바로 집단 나르시시즘이다.”

―한국사회의 집단 나르시시즘에서 특히 우려되는 건 무엇인가.

“자기애적 현상은 전 세계에서 감지되지만 우리 사회에서 특히 관찰되는 건 세대 간, 남녀 간, 계층 간 갈등이다. 나와 똑같지 않다고, 반대에 서는 것은 아니다. 토론과 대화를 통해 조금쯤은 같이 묶일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하는데, 우린 사람을 자꾸 발라낸다. 대화하면 할수록 갈등이 더 생긴다. 저것이 다르고, 이것이 다르다는 식으로 자꾸 나누니까. ‘완전한 행복’에서 ‘유나’가 ‘행복은 뺄셈’이라 말한, 바로 그것 아닌가.”

―소설처럼 행복을 위해 불행의 요소를 제거하는 ‘뺄셈’은 요즘 인간관계를 ‘손절’한다는 표현과 비슷한 것 같다.

“‘손절’이 빠른 세태가 정말 우려된다. 누구랑 말하고 관계 맺기 싫고, 자기 세계 안에 갇혀 갈등 해결의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다. 전부 ‘섬’처럼 살게 될 것 같다. 손절은 최후의 방식이어야 한다. 조금 불편하다고 사람을 ‘끊는 것’은 거미줄 치우는 데 전기톱을 쓰는 꼴이다. 결국 그게 인생을 허무하게 만들고, 자신을 사회에서 고립시킬 것이다.”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변화는 빠른데, 훈련이 부족한 탓일 수도…. 대화하는 법을 모른다. 여전히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라는 게 안타깝다. 교육에도 책임이 있다. 어려서부터 ‘너는 특별하다’고 말하며 아이들을 키우는데, 이런 게 꾸준히 마음에 쌓이면 어느 순간 ‘나는 세상의 중심이야’라고, 심해지면 ‘내게 중심을 향하지 않는 건 모두 나빠’라는 인식도 생길 것 같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든다.”

#자존감 낮추고 결핍·불운도 인정하라

―한국인들의 자존감 중독을 우려했는데, 작가라는 직업도 자존감이 높을 것 같은데.

“작가를 이끄는 건 자존감이 아니라, 글을 쓰겠다는, 이야기를 반드시 완성하겠다는 욕망이다. ‘종의 기원’을 쓸 때 사이코패스 청년을 그려내야 했는데, 그게 생각대로 잘 안 돼서 안달복달했다. 내겐 그 욕망이 있어서 2년이고 3년이고 글을 쓸 수 있다. 이 욕망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어떻게 될지 소설로 한번 써보고 싶다. ‘완전한 행복’으로 시작한 ‘욕망 3부작’의 마지막 편이 될 것 같다. 아, 이거 오늘 처음 말하는 거다(웃음).”

―자존감과 자기애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어려운 것 같다.

“진정한 자기애는 내가 불완전하다는 걸 인정해야 생긴다. 결점, 단점, 흑역사도 나라는 걸 받아들여야 생긴다. 자존감은 성취가 있어야 한다. 남들은 비웃어도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한 발 한 발, 성실히 살고 있다는 작은 성취감이다. 인간은 완성형이 아니라, 완성해 나가는 존재고 자기애와 자존감은 그런 ‘과정’에서 생겨나는 거다.”

―요즘 자기계발서들은 대부분 자존감을 키우라고 말한다.

“성실히 삶을 꾸리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자존감을 높이려고 하면 비뚤어진 자기애가 된다. 그 전제가 자존감이 높아야 좋고, 낮으면 안 좋다는 것인데, 그건 참 이상한 일이고, 그런 사회는 불편하다.”

―그런데 자존감이 낮으면, 좀 의기소침해지지 않을까.

“자신만만하고 눈치 안 보고 누가 비난해도 상처 안 받는 것. 그게 자존감이 높은 거라면 나는 정반대다. 상처 잘 받고, 결핍과 불운도 많다. 낮으면 낮은 대로 장점이 있으니까 시무룩할 이유는 없다. 자존감 낮은 이들 중에 섬세하고 감수성 풍부한 이들이 많다.”

―베스트셀러 작가다. 결핍이나 불운은 없어 보이는데.

“잘 알려졌다시피 신춘문예 11번 떨어지고, 12번째 당선됐다. 늘 패배감과 결핍에 시달렸고 지금도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글이 한 방에 나오는 적 없고 안달복달하면서 겨우 쓴다. ‘아, 나는 세상을 겨우 사는 사람 같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마음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한탄하면 되게 불행해지는데, 그래도 ‘이렇게라도 얻어지는 게 어디야’라고 생각하니 괜찮더라. 애면글면하면 얻어진다는 자신감도 무의식중에 생긴다. 이런 경험으로 극복해 나간다. 글을 쓰는 게 좋으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에 쏟아 넣는 에너지를 통해 자신의 결핍과 불운을 끌어안을 수 있지 않을까.”

#행복보다 앞서는 가치… 충실한 인생엔 자유의지가 있다

―행복이 목표가 아니라면, 가장 필요한 건 뭔가. 우린 어떤 가치가 필요한가.

“자유의지다. 이게 없으면 삶에서 투쟁할 어떠한 동기도 부여되지 않는다.”

―내가 왜 삶을 투쟁하듯 살아야 하느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생존’을 위해 진화된 우리라서다. 여기서 생존은 복잡한 사회조직에서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남는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선 인생을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자유의지’는 어떻게 발현되나.

“‘자유의지’는 자신을, 자기 삶을 이해하게 해주는 동력이다. 첫째, 사람이 구체적으로 자신이 뭘 원하는지를 아는 능력이고. 둘째, 그것을 이루거나 지키기 위해 평생토록, 성실하게 애쓰며 살 수 있는 힘이다.”

―자유의지를 위해 무얼 할 수 있나.

“마음이 무너지거나 손상됐다고 느낄 때 나는 나를, 그러니까 몸을 괴롭힌다. 수영, 킥복싱, 마라톤을 하고 산티아고를 걷고, 히말라야에도 올랐다. 마음을 지키는 방법은 각자 찾아내야 하는 것이지만, 우선 체력을 기르라고 조언한다. 인생을 건강하게 산다는 명제엔 육체의 건강이 먼저니까. 아프면 세상이 비관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읽자. 실용서나 자기계발서 말고 문학, 인문학서, 대중 과학서를 보자. 책을 읽는다는 건, 아주 안전한 거리에서 타인의 인생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아주 경제적인 방법이다. 진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도 그 속에서 배우게 될 것이다.”

■ 정유정의 리스트

“인간을 객관적으로 보려면…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추천”

나르시시즘 시대에 마음의 균형을 잡기 위해, 정유정 작가는 다양한 책을 읽으라고 조언했다. 그중에서 특히 대중 과학서를 추천했는데, 정 작가가 심신의 안정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는 “인간을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학문이 생물학, 의학, 뇌과학”이라며 “과학서를 읽으면 인간을, 그리고 나를 멀리 떨어트려 놓고 볼 수 있고, 하나의 다른 ‘생물’처럼 여기게 돼 안정감이 생긴다”고 전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는 거의 같아요. 공평하다고 느껴질 만큼요. ‘인간은 대체 왜 이러지?’ 하다가도 책을 보면, ‘아, 그래, 인간이 원래 이렇지’ 하게 되거든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대중 과학서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다. 역사학자이면서 생물학을 넘나들며 광범위한 연구를 하고 있는 하라리는 이 책에서 지구를 정복한 ‘인류’에 대한 새로운 탐색을 시도한다. 50개국에서 1000만 부가 넘게 팔린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정 작가는 “책은 ‘사피엔스의 종말’을 예견하고 있지만, 나는 이게 인류의 멸망을 뜻하는 건 아닐 거라 믿는다”며 “그로부터 진화한 새로운 존재가 지구의 새로운 주인이 될 수도 있다. 읽을수록 흥미롭고 재밌다”고 설명했다. 정 작가는 하라리를 존경하고 또 좋아한다면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도 함께 권했다. 하라리의 근작으로 일, 자유, 종교, 평등, 교육 등 21가지 테마를 통해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계를 들여다본다. 정 작가는 인간을 객관화하는 책들을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결과적으로 소설가로서 글을 쓰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문장은 냉정한 자세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과학 분야의 책을 읽으면, 시니컬(냉소적인)해져 보탬이 되더라”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한 태도를 견지하고 싶다면, 과학서를 읽으세요. ‘나’에서 거리를 두세요. 저 멀리, ‘인간’이 보입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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