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동족끼리 무장사용하는 끔찍한 역사 되풀이 말아야"
[경향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 처음으로 국방발전전람회를 열고 군사력 강화를 핵심 국가정책으로 재천명했다. 남측의 군비증강과 미국의 대북 적대시 태도를 더 구체적으로 문제 삼으면서, 자신들의 군사력 증강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주 동안 세 차례나 대중연설을 하면서 대내외 메시지를 연이어 발신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전날 3대혁명전시관에서 개최된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 기념연설에서 “조선반도(한반도)에 조성된 불안정한 현정세하에서 우리의 군사력을 그에 상응하게 부단히 키우는 것은 우리 혁명의 시대적 요구이고 우리들이 혁명과 미래 앞에 걸머진 지상의 책무로 된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강력한 군사력 보유 노력은 주권국가가 한시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당위적인 자위적이며 의무적 권리이고 중핵적인 국책으로 되어야 한다”면서 “우선 강해지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배경으로 “우리 국가 앞에 조성된 군사적 위험성은 10년, 5년 전 아니 3년 전과도 또 다르다”는 점을 꼽았다. 3년 전인 2018년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계기로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여가 이뤄졌고, 그 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1차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됐다.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회담 결렬 이후 남북, 북·미 관계가 경색돼왔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때보다 더 구체적으로 남측의 군비 증강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고, 국방력 강화를 도발로 규정하는 남한의 ‘이중기준’을 다시 지적했다. 그는 한·미연합훈련과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구매한 스텔스 전투기와 고고도 무인정찰기,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이후 남측의 미사일 개발 등을 언급하며 “도가 넘을 정도로 노골화되는 남조선의 군비 현대화 시도”라고 표현했다. 또 “더 위험한 것은 그들의 군비 현대화 명분과 위선적이며 강도적인 이중적 태도”라며 “이제는 남조선에서 ‘도발’과 ‘위협’이라는 단어를 ‘대북전용술어’로 쓰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상대방에 대한 불공평을 조장하고 감정을 손상시키는 이중적이고 비논리적이며 강도적인 태도에 커다란 유감을 표한다”며 “앞으로 계속 우리의 자위적 권리까지 훼손시키려고 할 경우 결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강력한 행동으로 맞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을 향해서는 “미국은 최근 들어 우리 국가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신호를 빈번히 발신하고 있지만 적대적이지 않다고 믿을 수 있는 행동적 근거는 하나도 없다”고 평가했다. 또 경색된 한반도 정세 배후로 미국을 지목하며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지역 긴장 산생”, “조선반도의 정세 불안정은 미국이라는 근원때문에 쉽게 해소 어렵다”라고 했다.
다만 그는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면서 “이 땅에서 동족끼리 무장을 사용하는 끔찍한 역사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자신들의 국방력 강화가 대미·대남 공격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미를 향해 변화를 압박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대중연설은 지난달 29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10일 당창건 76주년 기념강연회에 이어 2주새 세 번째다. 대외메시지를 포함하지 않았던 기념강연회 연설을 제외하면 연이어 이중기준과 대북 적대시 정책을 빌미로 국방력 강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번 연설은 전반적으로 시정연설의 주요 내용과 방향성 등을 재확인한 수준이지만 남측의 국사력 증강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첨단무기 개발을 정당화하려는 논조도 더 뚜렷하게 드러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군사력 강화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대내 단결과 체제 결속을 독려하려는 의도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이날 연설에서 과학자들과 군수노동자들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국방력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자들에 대해 최고훈장인 김일성 훈장 등을 수여하며 격려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은 당분간 지난 1월 당대회에서 밝힌 국방 강화 목표대로 핵무기 고도화·소형화에 집중하면서 대외 협상력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적대시 정책과 이중기준 철회를 조건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만큼 당분간 한·미의 태도변화를 지켜보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통일부는 남북 대화를 통해 이견을 해소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남북관계라는게 어느 일방의 기준을 일방적으로 요구·관철하는 방식으로 풀기 어렵다는 게 정부의 기본 생각”이라며 “(이전) 합의를 기준으로 대화와 협력을 통해 이중기준과 관련한 이견과 입장차를 해소하면서 이런 문제를 풀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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