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너를 알아가는 시간 [지역아동센터 쌤들의 기분좋은 상상]
[스포츠경향]
“깊은 산골 외딴집에 혼자 사는 아주머니가 있었어. 아주머니는 전쟁 때 남편과 아이들을 잃어 쇠를 몹시 싫어했지. 칼과 창은 모두 쇠로 만드니까 말이야. 하루는 밥풀을 뭉쳐서 작은 인형을 만들고 이름을 불가사리라고 지었어. 작은 인형 ‘불가사리’는 살아나 쇠를 먹기 시작했고, 집 안은 물론 동네의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조리 먹어 치웠어.”
나는 기간제 돌봄 교사로 특수 아동을 돌보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센터에는 조울증과 ADHD 진단을 받은 아이가 있습니다. 선호(가명)는 사소한 자극에도 분노조절이 되지 않아 언제 터질 줄 모르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글을 읽는 것보다 어쩌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배워 가는 것이 시급한 아이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다른 아이들의 학습과 놀이에서 기어코 일을 내고야 마는 선호를 전담하는 것이 오후에 제가 하는 업무이기도 합니다. 선호에게 나는 매일 오후 한 권씩 동화책을 읽어주곤 합니다. 오늘은 선호에게 ‘쇠를 먹는 불가사리’를 읽어줬습니다.
“누가 나에게 먹이를 줄까? 누가 나에게 쇠를 줄까?”
“마침내 불가사리가 전쟁터로 나갔어. 오랑캐들은 불가사리를 겹겹이 에워싸고는 활을 쏘고, 창을 던지고, 칼로 찔렀지. 하지만 불가사리는 끄떡도 하지 않았어. ‘쿵쾅쿵쾅’ 돌아다니며 쇠를 먹기 시작했어. 칼도, 창도, 대포도 닥치는 대로 다 먹어 버렸지. 오랑캐들은 겁에 질려 줄행랑을 쳤어.”
사실 나에게 선호는 마치 싸움거리를 찾아 먹어 치우는 불가사리 같습니다. 전쟁에서 쇠를 독식하며 사람들의 환호를 받던 불가사리처럼 선호에게 싸움은 일상이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잔뜩 사나워진 선호를 마냥 꾸짖었습니다. 선호는 자신의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거리고 벽을 치고 이리저리 발길질을 해댔습니다. 싸움이 날 때마다 선호는 친구들에게 ‘화만 내는 아이’나 ‘싸움을 거는 아이’로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나는 그런 선호를 이해하지 못했고, 많이 버거웠습니다.
‘선호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떨까?’
문득 무참히 공격받고 있는 불가사리의 그림이 내 눈에 어렸습니다. 활이 되고, 창과 칼이 돼 버린 사람들과 친구들의 시선과 말. 싸움이 날 때마다 ‘화만 내는 아이’나 ‘싸움을 거는 아이’로 낙인이 찍힌 아이.
오늘도 선호가 크게 펑펑 울었습니다. 억울하다는 말만 연신 외치던 선호는 “선생님~ 친구들이 나하고는 아무도 놀아주지 않아 너무 속상해요. 선생님은 왜 매번 나한테 하지 말라는 말밖에 하지 않아요? 나도 늘 참고만 있어요”라며 발버둥치며 울어댔습니다.
선호의 감정 표현이 미숙하기 때문일까, 자신을 밀어내는 친구들 때문일까? 그렇게 선호는 나의 품에 안겨 실컷 울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선호에게 다시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왕의 질투를 산 불가사리를 잡으려 자신을 만들어 준 아주머니를 기둥에 매어 유인하는 장면에서 ‘뒤도 돌아보지 말고, 죽지도 말고 앞만 보고 가라’는 어미의 심정을 담은 구절을 읽어주다 슬퍼서 이번엔 내가 울었습니다. 아주머니를 구해내는 불가사리가 선호의 모습과 겹쳐 더 안쓰러웠습니다.
선호는 울고 있는 내 모습에 기분이 이상했는지 더 이상 못 읽겠다며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휴지 몇 장을 가져와 건넸습니다. 고이도 접어온 휴지를 보며 참으로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제야 사랑스러운 선호의 마음이 보였습니다. 선호의 마음속 부모님의 빈자리, 친구의 빈자리가…. 어쩌면 선호는 싸움이 싫고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최여름(똘레랑스지역아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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