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안 당하려면 서약서 써라" 전남도립국악원의 '갑질'

강현석 기자 2021. 10. 1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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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악원 법인화 동의 강요도
청소년미래재단도 ‘괴롭힘’ 확인

공공운수 노조 광주전남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7일 전남도청 앞에서 도립국악단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공공운수 노조 광주전남지부 제공

전남도립국악단 예술감독 A씨는 지난 1월부터 단원들에게 ‘서약서’ 작성을 요구했다. 서약서를 작성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단원들에게는 “해고를 당하지 않으려면 서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A씨가 서명을 강요한 서약서는 ‘규정에 어긋난 전남도의 행위에 대해서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평가가 낮아 해촉(해고)이 될 경우에는 아무런 법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전남도 산하 공공기관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공공운수 노동조합 광주전남지부는 “전라남도인권센터 도민인권보호관이 최근 전남도립국악단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국악단 예술감독과 사무장은 도가 국악단에 대한 법인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단원들에게 설명하면서 “법인화에 동의하지 않는 단원은 섬으로 발령을 내거나 시설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겠다”고 겁박하며 동의하도록 강요했다.

국악단 운영 조례에 단원들의 근무시간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로 돼 있지만, 이들은 ‘8시간 근무 확인서’에 서명하도록 했다. 거부한 단원에게는 공연 기회를 박탈하고 외부 출연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노조는 지난 3월 전남도립국악단 간부 3명이 단원들에게 괴롭힘을 가하고 있다며 전라남도인권센터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조사를 진행한 도민인권보호관은 국악단 간부들의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도민인권보호관은 “이러한 행위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판단되고, 신청인들은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고 근무환경을 악화시킨 것으로 인정된다”면서 “도지사는 가해자들을 징계하고 재발방지책 마련과 국악단에 대한 인권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또 다른 전남도 산하 공공기관인 전남청소년미래재단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이 확인됐다.

도민인권보호관은 지난 4월 전남청소년미래재단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여 시정조치 권고를 결정했다.

전남청소년미래재단 간부 2명은 직원들에게 폭언과 괴롭힘을 일삼았다. 이들은 모든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나이 먹어서 일을 그따위밖에 못하느냐”, “오타 한 자당 한 대씩 맞는다” 등의 폭언을 했다. 연차 등 휴가 결재를 올리면 면박을 주고, 결재를 수차례 반려시키며 노동자들을 무능한 사람 취급하며 모독하기도 했다. 전남청소년미래재단은 진상조사를 진행해 가해자 2명에 대해 정직 2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전남도는 지난달에서야 ‘직장 내 괴롭힘 금지조례’를 제정했다”면서 “김영록 도지사가 도민인권보호관의 결정과 조치사항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노동인권 인식을 쇄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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