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칼럼]이재명은 '이재명'을 넘어야 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2021. 10. 1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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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21대 대통령 후보가 11일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당지도부-대통령후보 상견례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두 이(李)씨의 승부를 ‘명낙대전’이라 불렀다. 언론의 조어가 시나브로 세지고 있지만, 오랜만에 대전(大戰)이 붙여진 것이다. 역사적으로 크고 격했던 여야의 대선 내전은 1997년 신한국당의 9룡, 2002년 노무현-이인제-정몽준, 2007년 이명박-박근혜, 2012년의 문재인-안철수 사이에 있었다.

이기수 논설위원

50.29% 대 39.14%. 7월4일 첫 TV토론이 시작된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은 10월10일 이재명의 승리로 끝났다. 결선투표 없이 갈린 승부를 ‘큰 싸움’으로 칭하는 이유는 두 가지일 게다. 지난해 8월 이재명 지지율이 이낙연을 추월하며 시작된 14개월의 설전은 길고 곡절도 많고 독했다. 일방적이던 경선도 막판에는 대장동 회오리 속에서 0.29% 차로 본선 직행이 결정되는 반전이 있었다. ‘이재명’으로 날이 새고 진 선거에서 득표율 50%를 훌쩍 넘고팠던 1위도, 내내 ‘밋밋하고 할퀴는 이낙연’의 상(像)에 갇혀 있다 마지막 날 추격 고삐를 당긴 2위도 아쉬움에 전전반측했을 것이다. 운명의 추는 그렇게 갈렸다.

제1야당 대선 주자 결정까진 4주가 남았다. 이재명에겐 경선 상처와 공약을 살피고 약점을 메울 금쪽같은 시간이지만, 우왕좌왕 붕 뜨고 내분하면 훅 지나갈 수도 있는 한 달이다. 고서 속의 쇄신에는 몸 부수며 열과 성을 다하는 것(碎身)도 있고, 묵은 폐단을 고쳐 새롭게 하는 것(刷新)도 있다. 두 개의 숙명과 짐이 승자 이재명의 어깨에 얹어졌다.

급한 불은 원팀이다. ‘1 더하기 1이 2’가 되지 않는 게 표밭의 셈법이다. 정치 원로들은 경선 승자에게 “참을 인(忍)자 100개를 품어라” “마른 수건을 짜듯 하라”고 말한다. 대선판의 원팀이 말처럼 녹록지 않고 시간이 걸림을 일깨운 것이다. 당장 사퇴한 정세균·김두관의 무효표 처리에 이낙연 쪽이 이의를 제기하고, 당과 청와대가 경선 결과를 공인한 여진부터 풀어야 한다. 원팀의 주도권·해법·책임은 승자 이재명에게 달려 있다.

역대 대선에서 원팀의 키는 또 다른 두 사람이 쥐었다. 패자의 다른 이름인 ‘경선 2위’와 여당 주자와 불가근불가원하는 ‘대통령’이다. 대통령과 충돌하고 당명을 바꿔 출마한 1997년 이회창, 2007년의 정동영은 패했다.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동행하고 시대정신을 달리한 2002년 노무현, 2012년의 박근혜는 승자가 됐다. 원팀이 깨진 여당은 승부호흡도 지난해진다는 뜻이다. 그 반대로 1997년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에게 지고 불복해 출마한 이인제, 2002년 노무현을 흔든 ‘후단협’과 단일화를 엎은 정몽준, 2012년 단일 후보 지원에 미온적이던 안철수는 정치적 부메랑을 맞았다. 신당 출몰이나 합종연횡이 컸던 대선사에 굽이굽이 ‘교훈’처럼 찍혀 있는 이름과 발자국들이다. 10월엔 민주당, 11월엔 국민의힘이 그 원팀의 시험대에 선다.

“바꿔보자.” 이재명이 추석 직후 SBS <집사부일체>에 나와 왜 정치를 하느냐는 물음에 답한 네 글자다. 그제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는 미국의 분배 정의와 복지 토대를 쌓고 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대통령의 롤모델로 삼았다. 그는 정치적 뒷배가 있거나 착해서 대선 후보가 된 게 아님을 공언한다. 언제부턴가는 팔 굽은 소년공 시절에 겪은 고통과 좌절도 그대로 연설문에 옮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끝까지 풀어갈 코로나19·한반도·탄소중립을 이어받고, 불평등·성장·부동산 해법은 새롭게 하겠다고 한다. 정치·개혁의 효능도, 대선 승부도 이재명의 중심은 정책일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 10월에 유권자 시선은 이재명을 좇을까, 보수의 4강전에 쏠릴까. 대장동의 돈잔치와 검찰의 권력 사유화가 세상에 돋운 울화와 두 사건의 진실은 어디로 향할까. 정권교체 여론은 50%가 넘고 양자대결은 이재명이 앞서는 ‘민심의 격동기’가 꽤 오래 이어지고 있다. 다섯 달 앞 대선의 불가측성이 역대급으로 높다는 뜻이다.

한 달 뒤 보수의 얼굴까지 뽑히면 대선은 리셋된다. 대한민국의 길싸움이 시작되고, 집토끼(지지층)와 들토끼(스윙보터)를 잡는 전면전이 벌어진다. 비주류 이재명은 정치는 노무현의 길을, 정책은 루스벨트의 길을 꿈꾼다. 그러려면 달라져야 한다. 이제 변방의 사고를 당의 중심으로 옮기고, 왕의 어법을 금하고, ‘진보 사이다’의 이목은 중도를 향해야 한다. 땅보다 땀을, 나눔·돌봄·기후·청년·평화를 중시하겠다는 정책은 예산과 소통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재명에겐 예선을 통과한 컨벤션 효과도 작을 수 있다. 그것은 대장동의 진실과 격랑이 잡히고 원팀으로 뭉친 뒤에 생각할 일이다. 이재명은 ‘이재명’부터 넘어야 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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