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상자 2만원 하락... 남아도는 제주 은갈치, 쌓아둘 창고도 부족하다

서귀포/성유진 기자 2021. 10. 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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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현장 가보니… 어민들의 한숨소리뿐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포수협 냉동 창고에 제주 은갈치를 담은 상자가 가득 쌓여 있다. 코로나 여파로 재래시장, 식당 등에서 갈치 소비가 줄면서 제주도 창고마다 팔리지 않은 은갈치가 가득하다. 저장 공간이 부족해 일부는 부산 냉동 창고로 보내고 있을 정도다. /장련성 기자

지난 9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포항의 한 냉동 창고 건물. 창고 문을 열자 6m 천장 높이까지 ‘선상냉동갈치’라고 적힌 상자가 빽빽이 쌓여 있었다. 990㎡(300평) 규모 창고 안은 지게차가 다닐 공간을 빼곤 가득 찬 상태였다. 인근에 이런 창고가 6개 더 있었다. 임병철 성산포수협 유통영업과장은 “제주도에만 6만 상자(한 상자 10㎏ 기준)를 보관하고 있고, 공간이 부족해 부산 냉동 창고로 보낸 게 4만 상자 정도 된다”고 말했다. 두 곳을 합쳐 1000t이 쌓여 있는 셈이다.

한때 ‘금갈치’ 대접을 받았던 제주산 은갈치가 판매 부진에 시달리면서, 어민들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조업량은 작년과 비슷한데, 식당·시장 등 주요 수요처가 코로나로 타격을 입으면서 소비량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로가 막힌 중매인들이 외면한 물량을 수협이 사들이면서 각 수협 냉동창고마다 갈치가 쌓이고 있다. 현지 위판 가격 기준 냉동 갈치 한 상자당 가격도 작년 9월 12만1100원에서 지난달 10만1100원으로 1년 새 2만원 하락했다(33마리 들어가는 대자 갈치 기준).

◇조업 비용은 오르고, 수요는 감소

18년 경력의 한 중매인은 “낙찰받은 갈치는 주로 재래 시장으로 보내는데, 코로나로 손님들이 줄다보니 시장 상인들도 물건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미 사놓은 물량도 아직 못 팔고 있어서 당분간은 입찰에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성산포수협은 “코로나로 직거래하던 식당 20~30%가 문을 닫았고 나머지 식당도 일주일에 다섯 상자씩 가져가던 것은 한 상자씩으로 줄였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한 수요 감소와 산지 가격 하락은 고등어·참조기 등 다른 어종도 마찬가지지만 갈치는 선동(배에서 바로 냉동) 비율이 70%로 높아, 바로 유통되지 못하고 물량이 쌓이면서 적체가 더 심해졌다. 1인가구와 맞벌이 가구가 늘며 소비자 밥상이 변한 것도 한 원인이다. 이용호 롯데마트 수산팀장은 “요즘 손님들은 연어나 오징어처럼 먹기 간편하고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안 나오는 수산물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제주 선동(냉동) 갈치 위판가

어민들은 울상이다. 29t 갈치잡이 배를 모는 김용완(52) 선장은 “바다 일을 25년 했는데 올해가 손에 꼽을 정도로 힘든 해”라며 “미끼로 쓰는 꽁치 값은 작년의 두 배가 됐는데, 갈치 값은 계속 떨어져서 수익이 반 토막났다”고 말했다. 이곳 갈치잡이 배들은 제주도 근해를 돌며 30~40일 정도를 조업하고 돌아온다. 한번 배를 운행하는데 유류비와 부식비, 미끼 값을 포함해 8000만~9000만원이 들고, 위판장에서 갈치를 팔아 얻은 수익을 선주와 절반씩 나눈다. 그 돈을 다시 선원 8~10명과 나눠 갖는다. 한 번 출어해 잡아오는 물량은 1500상자 정도다. 올해처럼 위판가만 2만원씩 떨어져도 배 전체 수익이 3000만원 줄어든다.

반면 코로나로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막히면서 인건비는 20~30% 올랐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주요 국가에서 외국인 선원이 출국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 탓이다. 오종실 성산포어선주협회장은 “선원 30~40%가 외국인 노동자였는데 요즘엔 그 자리를 국내 선원으로 채워야 해 인건비 부담이 늘었다”고 말했다.

◇”위판가 더 낮아지면 어민 생계 위협”

해양수산부나 유통업체에서는 판촉 행사를 지원하거나 대규모 물량을 사들이며 어가 돕기에 나서고 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최근 일주일 간격으로 갈치 소비 촉진 행사를 진행했다. 롯데마트는 “제주 어민들이 갈치를 소진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수협과 손잡고 판매 촉진 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도 수협들은 위판가가 10만원 아래로 내려가면 산업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어획량이 동일한 상황에서 가격이 더 밑으로 내려가면 어민들이 조업을 나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수협들은 어민들이 최소한의 인건비는 건질 수 있는 가격에 갈치를 사들인다는 입장이지만, 이런 상황이 올해 말까지 계속되면 더는 수매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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