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영어교육, 이젠 바뀌어야

한겨레 2021. 10. 1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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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유학 시절 교수가 "데이터 아(Data are)"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아(are)? 데이터가 복수였나?"라고 반문한 적이 있었다.

수능에서는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기본적인 능력을 평가해 반영하고, 좀더 난이도 있는 영어 독해나 기타 영역은 영어2 과목을 만들어서 선택과목으로 심화시키면 불필요한 입시경쟁과 사교육 열풍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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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뱅크

[왜냐면] 최진수ㅣ영어교육평론가·영국 브리스틀대 영어교육학 석사

영국 유학 시절 교수가 “데이터 아(Data are)…”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아(are)? 데이터가 복수였나?”라고 반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예, 단수형은 데이텀(datum)입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교수와 학생들은, 평소 아무 말도 없던 녀석이 웬일로 고대 그리스어 같은 희귀 단어를 알고 있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배운 영어에는 그런 ‘희귀한’ 지식이 많았다.

그 뒤에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 영어 교육은 좀체 변화가 없다. 교육의 당사자인 학부모와 학생들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나라 영어 교육을 모두 쓰기(writing)와 말하기(speaking)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여기에 해답이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지금처럼 짧은 지문을 해석하면서 문장의 구조와 문법을 따지는 방식의 영어 공부는 무의미하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배우는 영문법은 미국 수능인 에스에이티(SAT)에서 나오는 영문법과 다르기까지 하다. 놀랄 일이다.

그렇다면 말하기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뭘까? 말하기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이다. 먼저 초1부터 고3까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영어 수업을 영어로만 진행해야 한다. 가능할까? 물론이다. 영어 교사가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영어 과목 교사만큼은 임용고시가 아니라, 수업 자체가 100% 영어로 진행되는 각 대학의 영어교육학과 교육과정을 통해 양성해야 한다. 지금 각 대학 영어교육학과 입시 커트라인과 이런 관문을 거쳐 입학한 학생들의 자질을 볼 때, 그렇게 4년을 훈련받은 예비교사라면 충분히 영어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물론 교수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각 대학 영어교육학과 커리큘럼을 지금의 이론 중심의 수업에서 실용적인 과정으로 전부 개편해야 한다.

쓰기는 어떤가. 쓰기 중심으로 수업할 때, 문법과 어휘는 쓰기에서 요구하는 수준으로 조정될 수밖에 없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미국 에스에이티의 영어 과목은 섹션1과 섹션2로 이루어져 있는데, 섹션1에서 다루고 있는 문법 문제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쉽게 문법의 방향과 기능을 파악할 수 있다. 쓰기 교육에는 문법과 어휘, 문장의 구조뿐만 아니라 언어학에서 추구하는 논리적 사고, 지적 표현, 심지어 쓰는 사람의 감성적 측면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렇게 12년을 영어로만 수업한 학생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기본적으로 필요한 영어는 거의 구사할 수 있다. 수능에서는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기본적인 능력을 평가해 반영하고, 좀더 난이도 있는 영어 독해나 기타 영역은 영어2 과목을 만들어서 선택과목으로 심화시키면 불필요한 입시경쟁과 사교육 열풍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또한 자연스럽게 원서 중심의 수업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일찍이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인간은 선천적으로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기제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나 언어학에 큰 족적을 남겼던 러시아의 발달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는 언어교육이 인간의 다른 인지 발달과정을 선도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교사와 학생, 학부모는 이미 뚜렷한 동기와 수준 높은 안목을 갖추고 있다. 언제든지 새로운 외국어 학습을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 정부는 단지 전환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전국민이 공감하는 숙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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