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나는 경제 교육..수능서도 퇴출 위기

김제림,고민서 2021. 10. 1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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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어렵고 대입서도 불리
전국 응시자 겨우 5천명선
2028학년도부터 제외 검토

◆ 위기의 경제교육 ◆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영역에서 경제 선택 응시자가 줄고 있는 가운데 교육당국에서 향후 2028학년도 수능에서 경제 과목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교육계와 경제학계에 따르면 최근 교육과정 개정추진위원회는 다음달 발표되는 2022년 개정교육과정(고등학교에서 2025년부터 적용)에 경제 등 일반 선택 과목 수를 줄이고 진로 선택, 융합 선택 과목을 확대하는 방향을 잠정 확정했다. 일반 선택 과목 수를 줄이면 가장 응시자가 적은 경제 과목이 2028학년도 수능에서 자동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유력하게 거론되는 방안이 기존의 9과목이던 사회 선택 과목을 역사, 윤리, 지리 외 다른 한 과목으로 줄이는 것인데 사회문화, 정치와 법에 비하면 경제를 선택하는 학생 수는 너무 적다"면서 "지금같이 경제 과목 응시자가 5000명 수준인 상황에서 선택 과목 수를 줄이면 사실상 경제 과목이 수능에서 빠지는 수순으로 가게 된다"고 전했다.

2021학년도 수능에서 응시비율은 경제가 2.3%로 사회문화 57.2%, 정치와 법 10.7%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수능에서 경제 선택 과목은 상위권 학생들이 주로 응시해 표준점수에서 불리하다는 이유로 응시자 수가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2017학년도 수능에서 7985명이던 응시자는 2021학년도 5076명으로 줄어들었다. 한경동 한국외대 교수는 "지금 같은 대입 위주 교육에서 경제 과목이 빠지면 고등학교에선 경제 교육이 전무하게 될 것"이라며 "경제·금융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생활과 밀접한 경제 위주로 교육 내용을 바꿔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일반 선택 과목 수를 줄이는 방향은 거의 확정됐지만 2028학년도 수능까지는 여러 변수가 있다"며 "공청회 등의 의견을 수렴한 이후 교육과정 심의위를 거쳐 최종 발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경제학계에서는 금융 투자에 뛰어드는 청소년이 늘어나면서 제대로 된 경제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20세 이하의 국내 파생상품 투자액이 1조838억원일 정도로 이미 초고위험 투자를 경험한 청소년이 많다. 전년도 투자액이 1767억원이라는 데 비춰보면 1년 새 투자 규모가 7.6배 증가한 것이다.

상경계 응시생마저 "경제과목, 대입에 불리"…교사도 어려워 해

수능 '경제' 퇴출위기…매경·교총, 초중고 교사 752명 설문조사

"경제교육 全無" 30% 달해
60%는 "일회성으로 가끔"

불법 소액대출 쓰는 청소년들
초등생도 '따상' 은어 쓰는데…
올바른 금융교육 강화 절실

"실생활과 연결된 교재 만들고
국가 차원서 과목지정 나서야"
수능 탐구영역에서 경제를 선택하는 응시자가 점차 줄고 있는 가운데 11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경제학 도서들이 진열돼 있다. [이충우 기자]
지난달 경기도가 도내 중·고등학생 3359명을 상대로 청소년 불법 대출에 대해 실태조사를 했다. 게임 아이템이나 아이돌 굿즈를 살 돈을 빌려주고 수고비 명목의 이자를 받는 불법 고금리 대출(대리입금)에 관한 것이었다. 통상 대리입금은 1만원가량을 빌려주고 수고비로 일주일에 1000원가량을 받는다. 이를 경험한 학생 73%는 대리입금의 이자율이 낮거나 적정하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일주일 이자율이 10%이기 때문에 연 이자로 환산하면 520%(단리)~1만4200%(복리)나 되지만 1000원이라는 금액만 생각하기 때문에 이자율이 낮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자율의 개념과 계산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초고금리 사채의 위험성을 간과한 학생들이 많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수능 사회탐구 경제 선택 비율 2.3%, 일반고 실용경제 과목 개설 비율 3.9%'. 학교 현장에서 경제·금융 교육은 거의 씨가 말랐다고 지적할 만한 수치다. 경제 과목은 어렵고, 점수도 잘 나오지 않고, 내신이나 수능 등급을 잘 받기 어렵다는 인식 때문에 경제 교육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다. 한경동 경제학교육위원회 위원장(한국외대 교수)은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으니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고 그러다 보니 관심이 있던 학생들도 아예 선택권이 없어진 게 지금의 경제 교육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한 국제고 교사는 "상경계열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등급에서 손해를 보는 게 명확하기 때문에 경제 과목을 선택하지 않는다"면서 "학생들은 괜히 경제를 선택해서 불이익을 받는 것보다 세부·특기사항(세특)에 경제 서적 독서나 연구보고서 쓰기 등으로 보완하는 게 훨씬 입시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는 매일경제가 지난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를 통해 전국 초·중·고 교사 752명을 대상으로 학교 현장의 경제·금융 교육 실태를 설문조사(온라인)한 결과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29.8%(224명)는 '학교에서 경제·금융 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그나마 '일회성으로 가끔 하고 있다'는 응답이 60.4%(454명)로 가장 많아 학생들을 위한 경제·금융 교육이 공교육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대적으로 '학기마다 혹은 분기마다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7.7%·58명)와 '주 1회 등의 수업으로 정례화돼 있다'(2.1%·16명)고 답한 교사는 10명 중 1명(9.8%)이 채 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경제·금융 교육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정규 수업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한 교사가 61.4%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이어 '관련 교육 교재가 미흡하기 때문'(12.1%), '해당 교육을 맡을 교사가 없기 때문'(11.8%) 순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참여한 A초등학교 교사는 "정규 교과목으로 지정되지 않으면 창의적 체험활동으로라도 지도를 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해야 할 교육이 너무 많아 지도에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B고교 교사는 "교과 과목인 경제를 수강하더라도 3학년 선택 교과로 수능을 위한 학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경제 교육보다는 시험을 위한 교과 성격이 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학생들을 위한 경제·금융 교육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응답자 중 경제·금융 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한 경우(92.8%·698명)가 대부분이었다. 교사들은 '청소년기에 올바른 경제·금융생활을 도모하기 위해' 경제·금융 교육이 절실하다고 본 경우가 55.9%로 가장 많았다. 이외에 '조기 교육을 통해 사회·경제활동의 필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27.5%), '청소년기 경제·금융 문맹을 탈출할 목적'(11.5%) 등의 순이었다.

C초등학교 교사는 "학교와 가정에서 모두 금융·경제 교육이 필요하다"며 "주식이 뭔지도 모르는 초등학생들도 있지만 벌써 '따상' '떡락' 같은 은어를 자연스럽게 말하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로 학생들 간 금융이해도나 관심에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경제·금융 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찬성한 교사든, 그렇지 않은 교사든 모두 동일하게 '실생활과 연결되는 교재나 교과서를 개발해야 한다'고 본 의견이 40.4%로 가장 많았다. 경제·금융 교육을 해야 한다고 본 교사들의 29.2%는 '국가 차원의 경제·금융 교육 과목 지정 등 관련 교육 총량 이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외에 '학교·학부모·학생·교사 등 당사자 관심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은 14.9%였다.

[김제림 기자 / 고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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