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 토마 상카라를 죽였나?

조기원 2021. 10. 1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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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아프리카주의와 반제국주의의 상징적 인물인 상카라 전 부르키나파소 대통령이 피살된 지 34년 만에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재판이 시작됐다.

부르키나파소의 수도 와가두구 군사법정에서 11일 상카라 전 대통령을 살해한 혐의 등으로 그의 친구였던 블레즈 콩파오레(70) 전 대통령을 포함한 14명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고 <아에프페> (AFP) 통신 등이 전했다.

상카라 사후 34년 만에야 그의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는 재판이 시작된 이유는 27년에 걸친 콩파오레의 장기 집권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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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카라 사후 34년 만에 관련 재판 시작
친구였지만 쿠데타 일으킨 콩파오레 기소
이웃 국가로 망명해 실질적 단죄는 어려울 듯
토마 상카라 전 부르키나파소 대통령이 1986년 2월 프랑스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의 모습. 1년 6개월 뒤 그는 동료였던 블레즈 콩파오레가 일으킨 쿠데타로 목숨을 잃었다. AFP 연합뉴스

누가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라 불리던 토마 상카라를 죽였나?

범아프리카주의와 반제국주의의 상징적 인물인 상카라 전 부르키나파소 대통령이 피살된 지 34년 만에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재판이 시작됐다. 부르키나파소의 수도 와가두구 군사법정에서 11일 상카라 전 대통령을 살해한 혐의 등으로 그의 친구였던 블레즈 콩파오레(70) 전 대통령을 포함한 14명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전했다.

군 장교 출신인 상카라는 1983년 33살 때 동료 콩파오레가 주도한 쿠데타로 대통령에 올랐다. 오토바이를 즐겨 타고 재즈 밴드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적도 있는 그는 집권 뒤 사회주의와 범아프리카주의에 기초한 정책을 급진적으로 추진하며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라 불렸다. 집권 이듬해 나라 이름부터 프랑스 식민지 시절 불리던 ‘오트볼타’(프랑스어로 ‘볼타강 상류’)에서 ‘부르키나파소’(최대 부족인 모시족 말로 ‘존엄하고 정직한 사람’)로 바꿨다. 소농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토지 개혁, 여성 할례 금지, 대규모 예방접종을 실시했고, 장관들이 타던 관용차를 벤츠에서 르노 소형차로 교체했다. 하지만 그 역시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았으며 집권 뒤 언론 자유를 제한하고 반대파를 탄압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상카라는 급진적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내외의 반발에 봉착해 집권 4년 만에 실각했다. 상카라가 기타를 쳤던 밴드의 보컬이며 정치적 동료였던 콩파오레가 1987년 10월15일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상카라는 이 과정에서 동료 12명과 함께 처형된 뒤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콩파오레가 장악한 정부는 쿠데타 다음날 상카라를 “광인”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블레즈 콩파오레 전 부르키나파소 대통령의 2010년 때 모습. AFP 연합뉴스

상카라 사후 34년 만에야 그의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는 재판이 시작된 이유는 27년에 걸친 콩파오레의 장기 집권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콩파오레 집권기에 상카라의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은 금기시됐다. 콩파오레는 2014년 5선 연임을 위해 헌법을 고치려다가 민중봉기로 실각했다. 그 이듬해인 2015년에야 상카라로 추정되는 주검이 발굴돼 조사가 시작됐다. 주검에선 열발 이상 총상을 입은 흔적이 나왔다. 그러나 디엔에이(DNA) 검사 결과 상카라의 주검인지 확정할 수 없어, 미스터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이번 재판을 통해 상카라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어디까지 밝혀질지는 미지수다. 핵심 피고인 콩파오레는 2014년 축출당한 뒤 이웃 나라인 코트디부아르에서 살고 있다. 콩파오레는 상카라의 죽음에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으며, 변호인은 7일 이번 재판이 “정치적”이라며 콩파오레가 출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때문에 진실이 밝혀져도 콩파오레에 대한 처벌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상카라 공격에 직접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 인물인 이아생트 카판도도 붙잡히지 않아 궐석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부르키나파소를 1960년까지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가 어디까지 개입했는지도 재판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정부는 관련 문서를 부르키나파소에 넘겼으나 엘리제궁이 보관 중인 핵심 자료는 보내지 않았다.

상카라는 사후 남미의 체 게바라처럼 아프리카 혁명의 상징으로 남았다. 콩파오레 정권을 끝낸 2014년 부르키나파소 시위 때 상카라 정권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젊은이들이 그의 사진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부르키나파소를 넘어 서아프리카 전역에서 그의 얼굴이 새겨진 스티커를 붙인 택시를 볼 수 있다고 <비비시>(BBC) 방송은 전했다. 상카라의 동료였던 알루나 트라오레는 “재판은 모든 거짓말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꿈을 회복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아에프페>는 전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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