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여성에 '결혼·출산' 묻는 취업 면접, 정부는 "법 위반 아냐"

최윤아 2021. 10. 1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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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계열사, 2030 여성 응모자에 성차별 질문 의혹
"업무역량 평가와 무관한 성차별 질문 수 차례" 주장
노동부 "질문 있었으나 자료에 기재 않아 위법 아냐"

대기업 계열사인 에스케이 피아이씨글로벌(SK picglobal) 경력직 채용 면접에서 ‘만나는 사람 있냐’ ‘결혼이나 출산계획이 있냐’고 묻는 등 수차례 성차별 질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부당함을 느낀 응시자가 신고했으나 고용노동부는 “면접에서 혼인여부에 대한 질문이 나온 것은 사실이나, 면접 관련 자료에 이를 기재하지 않았으므로” 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당시 면접 대상자는 노동부 신고를 하지 않은 이를 포함한 2명의 20~30대 여성으로, 남성 면접관들에게 둘 다 이러한 성차별적 질문을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들은 2년 계약직에 응모했으나 모두 떨어졌다.

11일 <한겨레>가 ‘채용성차별 철폐 공동행동’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의당 강은미 의원 등을 통해 취재한 바에 따르면, 지난 1월26일 에스케이 피아이씨글로벌은 파견업체를 통해 소개받은 여성응시자 A(에이)씨, B(비)씨 2명에 대한 면접을 서류절차 뒤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A씨는 면접관으로부터 ‘만나는 사람 있느냐’ ‘결혼 계획은 있냐’ ‘향후 결혼, 출산계획이 있느냐, 있다면 몇 년 정도로 생각하느냐’ ‘가족과 동거하느냐’ 등 업무역량 평가와 무관한 성차별 질문을 수차례 들었다고 한다. A씨는 면접 뒤에 친구에게 “스크(SK)에서 면접 볼 때 결혼출산 질문했는데, 이거 법적으로 문제 있는 거 아니냐”고 카카오톡으로 묻기도 했다. 그리고 약 2주 뒤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이듬달인 3월 고용노동부 안내대로 국민신문고에 고용노동부 서울고용노동청에 채용성차별을 조사·처벌해 달라고 민원을 제기했다. 2주 뒤의 조사 결과는 이랬다. “에스케이 피아이씨글로벌이 면접 당시 구직자에게 혼인여부에 대한 사항을 구두로 질의한 것은 사실이나, 면접 자료에 관련 내용을 기재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돼 채용절차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 (…) 다만 구두로 혼인여부 등을 질의하는 것은 채용절차법 입법 취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어 주의·촉구 조치했다.” 채용절차법 4조3항은 ‘구직자에 대해 직무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신체조건·혼인여부 등의 정보를 기재토록 요구하거나 입증자료로 수집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 서울청은 단순 구두 질문은 ‘수집’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여부는 검토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면접에서 결혼, 출산 등에 대해 묻는 행위는 “사업주는 근로자 모집·채용에 있어 남녀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남녀고용평등법(7조) 위반으로 볼 여지가 상당한 데다, 고용노동부는 아예 “면접 중 결혼 후에도 직장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등 특정 성(별)에게만 개인적 질문을 하는 경우 차별에 해당한다”고 사례집을 통해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서울고용노동청으로부터 제출받은 A씨의 민원 결과. 질의는 사실이나, 기재하지 않아 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고용노동부의 조치에 A씨는 자신의 경험을 ‘채용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에 알렸다. 계기로 서울고용노동청이 해당 기업을 조사한 자료 일체를 강은미 의원실과 <한겨레>가 살핀 결과, 조사 과정에서부터 상당한 문제가 발견됐다.

A씨 민원에 따라 진행한 노동청 조사에서 사측은 “구직자 중 1명이 혼인 여부에 대한 내용을 (자소서에) 자발적으로 기재해 사실관계 확인 차원에서 질문을 했다. (…) 나머지 1명은 자기소개서에 해당 내용이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아 혼인여부에 대한 질문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민원 당사자인 A씨는 미혼으로, 자기소개서에 담을 결혼 정보가 아예 없었다. 혼인 사실이 적힌 소개서는 다른 응모자 B씨의 것이었다. 결국 노동청이 ‘허술하게’ 조사한 덕에, 문제제기도 안 한 다른 응모자에게도 성차별성 면접을 진행한 사실을 기업이 실토한 셈이 되었다.

A씨는 <한겨레>에 “B씨와 나는 서로 다른 파견 대행업체로부터 추천되어 면접을 치렀다. 혹시 서울고용노동청이 혼동할까봐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릴 때 내가 어느 업체로부터 추천을 받았는지까지 적었다. 서류만 제대로 살폈어도 ‘응시자가 먼저 자소서에 결혼 관련 사항을 적어서 확인차 질문했을 뿐’이라는 사측의 답변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A씨는 또 “중소·중견 기업 면접에서 성차별 질문을 수없이 받았지만 대기업 계열사인 에스케이 피아이씨글로벌에서 같은 질문을 받으니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고용노동부가 이런 상황을 바로 잡아주길 기대했는데 고용노동부도 기업의 편이라는 것만 확인한 것 같다”고 했다.

이에 에스케이 피아이씨글로벌 관계자는 <한겨레>에 “당시 면접관 3명 모두에게 확인한 결과, 면접에서 A씨에겐 결혼 출산 등을 물어볼 이유가 없고 언급한 적도 없다. 다만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면접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겠다”고 알려왔다.

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 관계자는 “면접에서 직무와 관계없는 결혼, 출산 관련 질문을 한 것은 상당히 부적절하다. 다만 해당 사건 처리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한 것이기 때문에 이 판단에 대해 현재로써는 뭐라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고용노동부 소속기관이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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