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산사태 위험지역'을 송전탑 후보지로..한전, 국민 안전 저버렸나

강연주 기자 2021. 10. 1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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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동해안~신가평 500㎸ 송전선로’ 사업 경과대역 선정과 관련애 지난 3월17일자 서부구간 입지선정위원회 제12차 회의에서 결정된 경과대역 지도. 이 지도에서 ‘산사태 위험지역’이 고려대상(범례)에서 빠져 있다. 이동주 의원실 제공


한국전력이 대규모 송전선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산사태 위험지역’을 후보지에 포함시키고, 관련 규정을 개정한 사실도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전은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입장이지만, 결과적으로 사업 편의를 위해 국민 안전과 전력수급의 안정성을 해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1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한전은 ‘동해안~신가평 500㎸ 송전선로’ 경과대역(사업 후보 지역)을 설정하면서 산사태 위험지역을 표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의원실이 확보한 2019년 5월 입지선정위원회 5차회의 자료에서도 한전은 산사태 위험지역을 누락한 송전선로 경과대역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당시 내규였던 ‘전력영향평가 시행 기준서(2017년 개정안)’에 위배된다. 규정대로라면 한전은 저항치가 100에 달하는 산사태 위험지역을 사전에 파악한 뒤, 이 구역을 최대한 피하면서 송전선로 경과대역을 선정해야 한다. 저항치란 송전선로 후보지를 선정할 때 배제해야 하는 정도를 수치화한 값이다. 저항치가 높은 항목일수록 송전선로 후보지로 부적합하다고 판단한다.

이에 ‘강원도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가 지난해 11월7일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주관한 주민간담회에서 한전이 기준을 위반했다며 경과대역 재선정을 요구했지만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전은 같은 달 30일 산사태 위험지역에도 송전선로 후보지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해 전력영향평가 내규를 일부 개정했다. 산사태 위험지역을 경과대역 배제 항목에서 삭제하는 대신 ‘추후 송전 철탑을 설치할 때 산사태 저항치를 적용하겠다’는 단서를 붙인 것이다. 이 내용이 담긴 개정안은 현재까지도 비공개로 돼 있다.

한국전력이 2020년 11월 30일에 개정한 전력영향평가 시행 절차서 개정 비교표. 한전은 이 개정안에서 산사태 발생지역 및 가능성 높은 지역을 경과대역 배제 대상에서 삭제하고 ‘철탑위치 선정시 (산사태 위험성을) 적용’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왼쪽은 2017년에 개정된 전력영향평가 시행 기준서. 이동주 의원실 제공.


이에 대해 한전은 송전선로 사업이 추진되는 울진~가평 구간 대부분이 산악지로, 산사태 위험지역을 고려하면 경과지 선정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해 개정 내용과 관련해선 산사태 위험지역을 후보지에서 모두 제외하면 결국 민가 쪽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어,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개정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의원실은 산사태 위험지역을 후보지 선정 과정에서 고려하지 않은 채 송전탑 위치 선정 과정에서야 뒤늦게 반영하는 것은 안전상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한전의 고충은 이해하더라도, 송전사업 상당수가 산간 지역에서 이뤄지는 만큼 산사태 위험 정도를 사업 초기부터 면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전선로 경과대역에 산사태 위험지역이 표시되지 않은 탓에 주민들은 알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이 의원은 지적했다. 이 의원은 “한전이 자체 사업에 불리한 정보를 감추게 되면 경과대역 선정 과정에서 주민들의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차라리 산사태 위험지역의 저항치를 낮추되 지역 주민들이 송전선로 경과대역의 산사태 위험성을 파악할 수 있게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는 “우리도 개정 과정에서 이 부분을 많이 논의했다”며 “필요하다면 산사태 위험지역의 저항치를 낮추는 방식으로 개정해서 지역 주민들이 사업 추진 전에 (산사태 위험성을) 비교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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