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타일] 학폭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2차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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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기자님. 현정이(가명) 아빠입니다. 상고심 판결이 8월12일 열린다고 합니다. 끝까지 저희 현정이에게 관심 놓지 말아주시고 억울한 제 딸의 판결 결과를 세상에 알려주세요."
스스로 생과 작별한 10대 자녀를 둔 부모를 만날 때마다 나는 곧잘 말문이 막혔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다는 날 오후 '현정이 아빠'에게 전화했다.
김민수씨는 혹시나 소송 결과가 뒤집힐까 봐 마음 졸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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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기자님. 현정이(가명) 아빠입니다. 상고심 판결이 8월12일 열린다고 합니다. 끝까지 저희 현정이에게 관심 놓지 말아주시고 억울한 제 딸의 판결 결과를 세상에 알려주세요.”
지난 8월9일 최종심을 사흘 앞둔 김민수씨(가명)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간곡함과 절박함이 꾹꾹 담겨 있었다. 지난 6월 학교폭력을 취재하며 만난 피해자 유족이었다(〈시사IN〉 제719호 ‘학폭으로 아들과 딸을 잃은 엄마 아빠’ 기사 참조).
스스로 생과 작별한 10대 자녀를 둔 부모를 만날 때마다 나는 곧잘 말문이 막혔다. 잘 물어보고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게 기자라는 업의 본질이자 윤리라고 여기지만, 그때만은 무슨 말을 이어가야 할지 자주 망설였고 길을 잃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다는 날 오후 ‘현정이 아빠’에게 전화했다. 학교폭력 가해자 3명에게 유죄가 선고된 2심이 확정되었다. 김민수씨는 혹시나 소송 결과가 뒤집힐까 봐 마음 졸였다고 했다. 마지막 말은 여전히 묵직했다. 학교와 교육 당국에 소송을 걸 계획이라고 했다. 피해자들은 피해를 신고하고 구제받는 과정에서 더 상처받았다. 가해자만큼이나 학교와 교육 당국에 치를 떨었다. ‘실은 너(와 네 주변)에게 문제 있는 게 아니냐’라는 시선을 보내며 책임을 전가했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딸이 이 과정을 겪지 않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익숙해서 무서운 이야기였다. 학교폭력 피해자만이 아니라 숱한 성범죄 피해자가 들어야 했던 말이기도 했다. 그 무렵에도 군대 내 성범죄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피해를 신고한 당사자는 숨졌고, 유족은 초동수사가 부실했던 군 당국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고 의심했다.
우리는 아마 모든 범죄 피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2차 피해는 분명, 다른 일이다. 충분히 예방 가능한 시스템의 문제다. 현정이 아빠가 소송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 때문이다. 반복되는 아픔과 슬픔을 호소하는 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가기. 내가 하는 일은 거기에 동력을 더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소송을 하시면 꼭 연락 달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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