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통역] ① "외국 선수의 길잡이 21년" 서울 SK 한성수

최설 2021. 10. 1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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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경력 21년. 서울 SK에서만 벌써 18번째 시즌을 맞이한 KBL 대표 통역사. 바로 한성수(49) 씨다. 

 

한성수 씨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활동하며 통역계 살아있는 레전드로 불리고 있다. 그를 거쳐 간 외국선수만 해도 50명이 넘는다.

프로농구에서 외국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 따라서 그들을 관리하는 한성수 통역의 역할도 구단 전력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한상수 씨는 여전히 농구가 재밌고 사랑스럽다고 말한다.

농구의 매력에 빠져있어 힘닿는 데까지 일하고 싶다는 한성수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아버지를 통해 농구와 인연을 쌓았을 것 같다.
(그의 아버지 고 한창도 씨는 1980년대 성균관대와 이화여대 농구 감독을 지내며 이후 국내 1호 NBA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한 유명 농구인이다.)
맞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께서 성균관대 감독을 하셨다. 체육관에 가서 형들한테 농구도 배우고 자연스레 농구와 가까워졌다. 집에 농구 관련 서적도 많았다.

Q.이후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했다고.
외할아버지가 미국에서 목사로 활동했다. 시민권을 받았고, 우리 가족에게도 이민을 권유하셨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아버지께서 교육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판단하여 시애틀로 떠났다. 하지만 정착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웃음).

Q.미국에서 NBA를 봤는지.
많이 가지는 못했지만 한두 번 갔다. 그때 문화 충격을 받았다. 나한테는 장충체육관 정도가 전부였는데 서너 배 되는 경기장에 사람들이 꽉 차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달라 무척 놀랐다. 그 이후에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다니곤 했다.

Q.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온 건지.
마지막은 호주에서 들어왔다. 대학 시절 전공은 경영학을 했고, 미국에서 호주로 편입학을 했다. 호주에서 1년간 지내면서 많은 걸 배웠다. 다양한 사람들이랑 섞이면서 많은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Q.이후 통역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나.
군대 가기 전 NBA 관련 중계 보조 아르바이트를 했다. 영어를 할 수 있었고, 농구를 좋아했기 때문에 번역하는 일을 도왔다. 그러면서 대학선발팀 국제 초청대회 통역을 지원했는데, 다른 나라 선수들의 통역을 맡았다. 당시 필리핀 리투아니아를 포함해 5개국이 초청받은 거로 기억한다. 문경은 전 감독과 전희철 감독이 선수였을 때다. 그때 농구와 관련해서 일을 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전역 후 통역에 지원했다.

Q.첫 입사가 기억나는지.
1998년 인천 대우 제우스(현 대구 한국가스공사)에 첫 취직을 했다. 당시 유재학 감독이 팀을 이끌던 시기였다.

Q.적응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 당시 통역이 없던 팀도 있었다. 트레이너가 그 업무를 대신했다. 나도 사수가 없었고 가이드도 없었다. 리그 자체에 외국선수 도입이 2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다.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몰랐다. 외국인 식당도 많이 없어서 KFC와 맥도날드만 찾아 외국선수들 밥을 챙겨 먹였다.

Q.지금 환경은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인터넷도 좋아지고 배달 앱도 생겨 식사 주문이 편리해졌다. 그리고 구글 앱도 있기 때문에 외국선수들이 직접 길을 찾아 외출도 가능해졌다.

Q.이후 잠시 다른 일도 했었다고.
2년 차가 끝나고 다른 회사에서 오퍼가 들어왔다. 스포츠마케팅 쪽이었는데 광고 회사였다. 온라인 마케팅이나 축구장 필드에 설치하는 90도 광고판을 놓는 일을 했다.

Q.근데 다시 통역으로 돌아왔다.
회사가 어려워졌다. 미래를 생각하면서 2004년 재입사를 선택했다. 그때는 SK 나이츠로 들어왔다. 결혼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천직이거니 하고 들어왔다. 근데 만약 그 회사서 잘 됐으면 아직도 하고 있지 않았을까? 농담이다(웃음).

Q.20년 가까이 일을 하고 있다. 장수비결은.
비결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일이 재밌다. 1인자는 아니지만 2인자로서 팀을 돕는 것이 내 성격에 맞다. 그리고 성과를 이룬다는 점에 큰 보람을 느낀다. 무엇보다 농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도 식지 않았다.

Q.초창기에는 실수도 했었을 텐데.
실수가 잦으면 안 되는 직업이다. 예전에 한 번 있었다. 감독이 (조니) 맥도웰보고 왼쪽으로 가라 하셨는데, 내가 오른쪽으로 가라고 해서 맥도웰이 “왼쪽이래”라고 수정해줬던 적이 있었다. 그때 정말 고마웠다.

Q.베테랑이지만 여전히 노력한다고.
시대에 따라 농구 용어도 계속 바뀐다. 그런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최근 선수들의 인터뷰나 영상을 자주 듣는다. 통역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계속 고민하고 있다. 점점 더 젊어지는 외국선수들 때문에 농구 관련 영화나 영상을 찾아서 보고 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준비도 해야 하기에 아직도 힙합을 듣고 있다.

Q.지금껏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은.
당연히 2017-2018시즌이다. SK 입사 후 10년 동안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문경은 감독으로 바뀌고 나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당시 나 혼자 계산해가며 SK의 정규리그 2위를 예상했는데 딱 맞아떨어져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전주 KCC는 3위로 예상했는데 플레이오프에서 만나 이겼다.

Q.하지만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애런 헤인즈가 부상을 당했었다.
맞다.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끝내고 무릎이 아프다고 하더라. 그냥 멍든 거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 했는데, 병원을 가보고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 (애런) 헤인즈가 많이 울고 아쉬워했다. 다행히 제임스 메이스를 데리고 오고 테리코 화이트가 날아다녀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

Q.가장 힘들었던 시즌은.
바로 지난 시즌이다. 이유는 성적이 좋지 않아서다. 그리고 한 시즌 더 꼽자면 2018-2019시즌이다. 무려 외국선수 7명과 계약을 했다. 다 부상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숙소에 외국선수 4명이 있을 정도였다. 비자 받으러 일본에 시도 때도 없이 갔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 선수와 계약을 다 해놓고 울산에 갔는데 이적 동의서를 놓고 와서 식은땀을 흘렸던 적도 있다.

Q.그런 경험으로 인해 조언을 구하려는 후배 통역사들이 연락을 자주 할 것 같다.
자주는 아니다(웃음). 최근 여자 농구단에서 연락을 주셨다. 통역이 바뀌었는데 나중에 도움을 구할 수 있는지 협조 요청 전화를 하셨다. 연락처만 주고받았다.

Q.통역분들끼리의 모임도 있는지.
없다. 안타깝게도 통역이라는 직업이 이직률이 높다. 몇 년 전에 정보 교류차 전 구단 통역들이 모인 카카오톡 방을 만든 적 있었는데. 변영재 통역(대구 한국가스공사)과 함께. 다들 바빠서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았다. 개개인 별로 연락하고 지낸다.

Q.외국선수 스카우팅 업무도 병행하는 걸로 알고 있다.
맞다. 통역 업무도 하면서 외국선수 스카우팅도 같이하고 있다. 이에 평소에도 G리그나 해외리그 경기들을 계속 보고 있다. 교체 상황은 언제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선수들의 근황 파악도 주 업무 중에 하나다.

Q.외국선수 영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먼저 감독이 원하는 유형의 선수들을 물어보고 선수들을 추린다. 그러고 나서 감독에게 최종 확인을 받고 본격적으로 에이전트에게 연락을 취한다. 최근엔 FIBA 홈페이지나 농구 관련 사이트에 정보가 다 잘 나와 있기에 에이전트 정보 찾기가 수월해졌다.

Q.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외국선수 선발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
그렇다. 전에는 시즌이 마무리되는 4월, 최종 미팅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잡고 해외로 출장을 갔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어려운 상황이다. 영상을 최대한 많이 보고 결정해야 한다. 선수들의 인성과 성격은 개인 SNS를 둘러보거나 가르쳤던 코치들에게 연락을 취해 물어본다. 그래서 직접 보는 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Q.SK의 두 외국선수는 자밀 워니와 리온 윌리엄스다. 두 선수에 대해 말하자면.
두 선수 모두 반 한국인이다. (리온) 윌리엄스는 부인이 한국분이시고 (자밀) 워니는 워낙에 한국 생활을 좋아해 적응의 문제가 따로 없다. 윌리엄스는 KBL 경험이 풍부해 선수들과 다 알고 지내는 사이다. 그에 비해 워니는 까불까불한 성격이지만 친화력이 좋아 다 친하게 지낸다. 둘의 사이도 좋다.

Q.한국 음식도 잘 먹는지.
둘 다 식성이 좋다. 윌리엄스는 특히 차돌박이와 감자탕을 좋아한다. 워니는 다 잘 먹는다. 예전에 파김치를 먹는 걸 봤는데 놀랐다. 맛있냐고 물어보니 본인은 맛있어서 먹는 거라고 말하더라(웃음).

Q.거쳐 간 외국선수들이 많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아무래도 (애런) 헤인즈가 아닐까 싶다. 오랫동안 같이 있으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 재밌는 일도 많았다.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알 정도다. 최근 은퇴해서 농담으로 한국에서 코치 한번 해보라고 말해봤는데 거절하더라.

Q.거절이유는.
지금 미국에서 벌여 놓은 일들이 많다고 하더라. 오히려 같이 사업을 하자고 역제안했다(웃음).

Q.재밌었던 일은 무엇인가.
하루는 고양 오리온 시절 헤인즈가 갑자기 전화를 했다. 무슨 일인지 물어봤더니 분식집에서 김밥하고 만두를 못 시키겠다 하더라. 그래서 전화를 넘겨받아 대신 주문을 해줬다. 이 외에도 길을 잃으면 자주 전화를 했다(웃음).

Q.올 시즌 SK의 두 외국선수 조합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예상하는지.
감히 평가하기가 좀 그렇지만. 적어도 TOP4에는 들 것 같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시즌 중에 많은 외국선수가 교체되어 다시 들어온다. 그중 대부분이 KBL 경력자들이다.

Q.반대로 제일 위협적인 외국선수 조합은.
그 질문에는 항상 정해진 답이 있다. ‘까봐야 안다’다. 이름값만 보고는 절대 알 수 없다. 과거 경력이 화려했던 선수들도 한국에 왔다가 한 달도 안 돼서 짐 싸서 나가는 걸 자주 봤다. 여기 시스템에 얼마나 적응하고 이해하는지에 달렸다.

Q.평소 휴일은 어떻게 보내는지.
시즌 때는 보통 경기와 경기 사이에 4일 정도 여유가 있을 때 휴가를 받는다. 주로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초등학교 4학년 딸이 한 명 있다.

Q.따님도 농구와 연관돼 있는지.
전혀 없다. 농구선수도 아니다. 내가 운동능력이 없다. 문경은 감독이 10년 동안 있으면서 공도 제대로 못 던진다고 뭐라 하셨다(웃음).

Q.1년 스케쥴과 일과는.
크게 보면 외국선수가 입국하는 8월부터 본격적인 시즌 준비에 돌입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계속 스카우팅을 병행하면서 시즌이 끝나는 4월에 외국선수들과 계약을 준비한다. 이후 외국에도 다녀오고 정보를 수집한다. 일과로 따지면 시즌의 경우 하루에 2번 팀 훈련에 모두 참여하고 외국선수들의 하루를 관리해준다.

Q.직업병도 생겼다고.
어딜 가든 간판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외국선수들 밥 먹는 걸 챙기다 보니 항상 음식점이 어딨는지 파악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 그리고 직업병은 아니지만, 감별사가 된 거 같다. 공항에서 외국선수와 한두 마디만 나눠도 이 선수는 오래갈 것 같다. 교체될 것 같다. 딱 감이 온다. 실명은 거론 못한다(웃음).

Q.선배 농구 통역으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우선 영어를 잘해야 하고 더불어 농구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농구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힘들다. 또 내 생각을 전하는 게 아니라 가운데서 얘기를 전해야 하므로 이를 잘 조율할 줄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내선수든 외국선수든 나를 어려워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들의 속마음까지 들을 수 있는 자세가 돼야 한다.

Q.올 시즌 SK의 주장이 최부경으로 바뀌었다.
(최)부경이는 예전부터 혼자서 영어 공부를 했을 만큼 외국선수와 기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주장이 되면서 더욱 성숙해졌다.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 보자고 선수단을 똘똘 뭉쳐놨다.

Q. 전희철 감독도 새롭게 선임됐다.
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랜 기간 함께 했다. 잘 맞춰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문경은 전 감독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SK 특유의 빠른 농구는 계속 유지될 것 같다. 선수들과 대화도 많이 하신다. 호흡을 강조하신 만큼 조직력이 많이 올라왔다.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다.

Q.통역으로 최종 목표가 있다면.
글쎄.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팀이 원한다면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
 

#사진_박상혁 기자

점프볼 / 최설 기자 cs34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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