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의 헌법 너머] 선거 여론조사 유감/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달 26일 독일에서는 제20대 연방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이 있었다. 무려 16년을 재임해 온 메르켈 총리가 더이상 총리 후보로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치러지는 선거여서 모처럼 차기 총리에 대한 관심 또한 컸다. 선거 결과 기민당과 사민당 간의 오랜 양강(兩强) 구도가 무너지고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방정식이 복잡해졌다. 그동안은 주로 두 정당이 함께 연정을 꾸려 왔는데, 이번에는 세 정당이 연합해야 해서 사민당이 주도하는 ‘신호등연정’ 또는 기민당이 주도하는 ‘자메이카연정’ 둘 중에 하나가 유력시된다.
늘 그래 왔듯이 서로 정책을 달리하는 정당들 간에 앞으로 함께 추진해 가야 할 정부 정책을 조율하고 합의하는 연정 협상은 결코 쉽지 않다. 선거가 끝나고서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이 연정 협상은 그냥 밀실 합의로 끝나는 게 아니라 문서로도 작성된 뒤 공개된다. 현재 메르켈 정부의 연정 협약서는 연방정부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로그인 없이도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정부 정책과 관련해 쓰레기 정책 등 시시콜콜한 사항들까지 합의해 적어 둔 방대한 연정 협약서를 보면 심지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독일에서도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는 목전의 선거가 없어도 매주 정기적으로 행해진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특히 눈길을 끈 여론조사 결과는 이렇다. 제2공영방송(ZDF)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독일 시민들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기후변화, 코로나19 팬데믹, 연금 문제, 사회정의, 난민 문제 그리고 교육의 순서로 응답이 있었다. 그런데 응답자의 무려 46%가 기후변화가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답했다. 이어서 코로나19 팬데믹이 23%, 연금 문제가 12%를 차지했다. 그리고 각 이슈마다 해당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정당이 어디이겠는지를 묻는다. 기후변화에는 녹색당이, 코로나19 팬데믹과 난민 문제에는 기민당이, 그리고 연금ㆍ사회정의 및 교육 문제에는 사민당이 가장 높게 나왔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있은 이후로 독일에서는 줄곧 환경 문제가 주된 이슈로 불거져 왔다. 녹색당의 약진이 시작된 계기이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환경교육이 강화됐고, 환경 수업을 받은 아이들이 오히려 부모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가르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고서는 녹색당의 지지율이 무려 30% 가까이나 치솟기도 했다. 이후 메르켈 정부는 꾸준히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그리고 재작년에는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매주 금요일마다 초중등 학생들의 기후파업(수업거부)이 벌어졌다. 우리 선관위 같으면 녹색당과 같은 특정 정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해 학교에서 실시하는 환경 수업을 금지할 법도 하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빈번하게 실시하는 여론조사에서 늘 들쭉날쭉하는 대선 후보자 지지도와 정당 지지도가 고작이다. 많은 여론조사 기관들이 우후죽순 난립해 있고, 신뢰성에도 문제가 많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대선 후보자 여론조사도 다자대결, 양자대결 등 그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흥행성에 치우쳐 있다. 게다가 단임제여서 어차피 연임이 불가능한 현직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왜 그리 자주 조사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저 여론조사 결과로 정부를 공격하거나 신문 지면과 뉴스 시간을 때우기에는 제격이다.
필자 역시 많은 시민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는지가 무척 궁금하다. 아마 기후변화는 아예 안중에 없고 부동산 문제,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 공정성, 남북 관계 등의 응답이 짐작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경우 이런 여론조사가 별 의미가 없다. 그동안 정당들이 마냥 이합집산(離合集散)만을 거듭해 온 가운데 확고한 정책이 없는 까닭이다. 정책이래 봤자 어디에 새로운 공항을 지을지 말지가 고작이다. 그러니 정책 선거가 아니라 지역 대결 구도와 인물 선거로 일관하면서 후보자들의 적격, 부적격만 서로 따지고 있다.
오늘날의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그저 대표자를 뽑는 걸로 다가 아니다. 또한 정부가 떠맡아야 할 정책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공동체의 미래를 선택하는 의미도 갖는다. 선거에서 패한 이들은 고작 권력을 잃지만, 선거를 그르치면 국민은 미래를 잃는다는 사실을 꼭 명심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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