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中·高 상위권 학생까지 줄었다

박세미 기자 2021. 10. 11.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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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국영수 '우수' 모두 줄고 중학생은 영어 '우수'만 늘어
'중위권 성적' 학생 비율도 줄어 학력 하향평준화

자기가 배운 교과목 내용을 80% 이상을 이해하는 이른바 ‘우수 학력’ 중·고교생 비율이 지난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교육계에서 코로나 여파로 원격 수업이 장기화하면서 성적 하위권에 속하는 학생이 늘고 중위권이 붕괴하는 ‘학력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많았는데, 실제로는 상위권도 함께 주저앉는 ‘하향 평준화’까지 일어난 셈이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최근 펴낸 ‘2020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분석 보고서’에 담겨 있다. 지난해 치러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교육부가 대외적으로 발표하지 않는 ‘우수 학력’ 비율까지 포함해 분석한 보고서다. 코로나 세대 우수 학력 저하 현상이 국가 공식 통계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3월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에서 올해 첫 2021학년도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열리면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2021.03.25 / 장련성 기자

이 보고서에 따르면, 고교 국어 과목 우수 학력 학생 비율은 2019년 28.8%에서 2020년 23.3%로, 영어는 40%에서 37.1%로, 수학은 29.3%에서 29%로 전년에 비해 각각 0.3~5.5%포인트 감소했다. 중학교도 국어가 2019~2020년 사이 39.7%에서 36.5%로, 수학은 17.9%에서 17.7%로 각각 감소했다. 특히 고교 국어와 중학교 수학은 2017년 이후 4년 만에 우수 학력 비율이 가장 낮게 나타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가 매년 시행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고교는 2학년, 중학교는 3학년을 전국 약 3% 비율로 표집(標集)해 평가하고 있다.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는 ‘우수학력(4수준·교육과정 80% 이상 이해)’, ‘보통학력(3수준·50% 이상)’, ‘기초학력(2수준·20% 이상~50% 미만)’, ‘기초학력 미달(1수준·20% 미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이번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중3과 고2 학생들은 대다수 과목에서 전반적인 학력 저하 현상이 뚜렷했다. ‘중위권’도 크게 줄었다. 고2 국어는 2019년 48.7%에서 2020년 46.4%로, 수학은 36.2%에서 31.8%로 줄었고, 중2 국어는 43.1%에서 38.8%, 영어는 48.5%에서 34.8%로, 수학은 43.4%에서 40.1%로 각각 감소했다. 지난해 중·고교 국·영·수 모든 과목에서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일제히 늘어났는데, 이와 동시에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는 학생마저 줄어드는 ‘학력의 하향 평준화’가 나타난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단순히 코로나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교육 현장을 장악한 좌파·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초등학교 지필고사를 폐지하고, 중학교 1학년 중간·기말 시험을 없앤 데 이어, 2017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모든 학생에서 일부만 치르도록 바꾼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김경회 명지대 석좌교수는 “시험도 없고 숙제도 없는 교육 현장의 변화가 결과적으로 학교 현장에 ‘학력 경시’ 문화를 만들어냈다”며 “공부 잘하는 학생은 더 잘하도록 교육 환경을 조성하지 못했고, 못하는 학생은 최소한의 기초학력을 갖추도록 끌어올리지도 못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2025년 자사고·외고 폐지를 추진하는 등 ‘수월성 교육’을 등한시한 것도 상위권 학생들 학력 저하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 한 중학교 교사는 “전에는 아이들 사이에 ‘국제고에 가겠다’ ‘외고를 가고 싶다’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지금은 그런 목표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이러한 분위기 속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며 학력 저하 현상이 수면 위로 급격히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경기도 한 중학교 교사는 “코로나 이후 아이들 학력이 떨어진 걸 감안해서 중간고사 문제를 상당히 쉽게 냈는데도, A등급(100점 만점에 90점 이상) 받는 최상위권 아이들이 전년보다 30%는 줄었다”고 했다. 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질문 수준이나 교과 이해도도 예년보다 상당히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시험이 없어진 초등학생은 학력 저하 여부를 확인할 방법조차 없는 상황이다. 박정현 한국교육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상위권 학생들이 줄어드는 건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 하락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잘하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교육 당국이 적절한 성취 동기를 제공해야 하는데 지금 교육 현장은 이를 ‘줄 세우기’로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학력 저하가 상위권까지 번진 사실이 확인된 만큼 방과 후 보충 수업 등 학력 미달 학생들 위주 대책뿐 아니라 상위권 학생들의 학력 향상을 위한 조치도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한 전국 단위 학력평가를 다시 치르고 개별 학교에서도 자주 시험을 치러 학력이 저하된 아이들 수준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며 “상위권부터 하위권까지 수준별 수업을 실시하는 등 과감한 맞춤형 대책을 펴야 더 이상의 하향 평준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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