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더 나아가야 할 '성별정체성 논의'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2021. 10.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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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아들이야, 딸이야?” “몰라, 아직 그 애가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아서.”

미국의 성소수자 운동가 케이트 본스타인의 <젠더무법자>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 말처럼 신생아는 자신의 성별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없고, 그래서 진정한 성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신분체계에 편입되기 위해 어떻게든 성별은 정해져야 한다. 그 결과 태어난 아이의 성별은 주로 외부 성기를 기준으로 판정되고 그에 따라 출생신고가 되며, 그렇게 하여 우리가 매일 신분증을 통해 확인하는 법적 성별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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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대부분은 괜찮다. 많은 이들은 자신의 성별을 표현할 수 있게 된 이후에도 이미 정해진 성별에 문제제기를 안 하니까. 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법적 성별과 자신이 인식하고 표현하는 성별이 다름을, 그리고 이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한다.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2006년 대법원은 일정한 요건을 갖춘 트랜스젠더에 대해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그 명칭이 성별 변경이 아닌 정정이라는 점이다. 법적으로 정정은 처음에 잘못 표기된 것을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즉 출생 시에는 생물학적 요소만을 기준으로 성별이 기록되었으나 이후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확인해보니 처음 기록이 잘못된 것임이 확인되어 고치는 게 성별 정정이다.

나아가 법원은 이렇게 성별 정정 결정이 이루어지기 이전에도 법률적으로 성별을 평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7일 이루어진 변희수 하사의 전역처분 취소 판결이 그러하다. 전역처분 당시 육군본부는 변희수 하사가 아직 법적 성별이 남성이기에 남성의 심신장애 판정 기준을 적용해 전역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법원은 변희수 하사가 이미 성확정수술을 받고 성별 정정 신청까지 한 점 등에 비추어 전역심사 당시 그의 성별을 여성으로 평가할 수 있으므로 육군본부의 판단은 위법하다고 보았다. 신분증상의 형식적인 성별 표기가 아니라 개인의 구체적인 상황에 비추어 실질적인 측면에서 성별을 법적으로 판정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성확정수술을 받기 이전이라면 어떠했을까? 이 경우에도 출생 시 지정된 성별과 달리 법적으로 성별이 평가된 사례들은 있다. 2013년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외부 성기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 남성에 대해 남성으로의 성별 정정을 허가했고, 2017년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은 마찬가지의 경우에서 트랜스 여성의 성별 정정을 허가했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영국, 독일,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은 성확정수술 없이 성별 정정이 가능하다. 가까운 대만에서도 최근 성별 정정에 성확정수술을 요구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있었다. 성기 형태와 같은 생물학적 요소가 법적으로 성별을 판정하는 데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누군가는 법원 판결에 따라, 국가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성별 판정에 혼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위 사례들은 모두 합리적이고 일관된 원칙에 근거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바로 누구나 자신의 내면의 성별을 인식하는 성별 정체성을 갖고 있고 이것이 사회적·법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권의 원칙이다.

“국가 차원에서 입법적·정책적 결정이 필요하다.” 변희수 하사의 전역처분 취소 판결의 말미에 법원은 이와 같이 이야기했다. 국방부 역시 트랜스젠더 군복무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한다고 한다. 이러한 논의들이 이루어지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면서, 그러한 논의들이 무엇보다도 앞서 이야기한 누구나 성별 정체성에 따라 살아가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원칙하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더 이상 이번과 같이 승소 판결에 기뻐하면서도 이를 함께 나눌 수 없는 현실에 울컥함을 느껴야 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시 한 번 변희수 하사의 명복을 빈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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