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도서관은 시끄러워야 한다
[경향신문]
숨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바닥에 펜 굴러가는 소리. 내 어린 시절 ‘도서관’의 이미지이다. 도서관은 그저 돈을 내지 않는 독서실의 다른 이름으로 기억된다.
미래에는 정보만이 살 길이라며 문헌정보학과를 전공으로 찾은 기쁨도 잠시, 그 전신이 도서관학과라는 말에 어쩐지 김이 빠졌다. 도서관은 책상과 칸막이, 약간의 책이면 되는데 뭘 배운다는 걸까? 하지만 거기엔 전혀 새로운 도서관이 있었다.
나의 관심과 질문에 답이 될 정보가 있는 곳, 그 정보를 함께 찾을 사서(司書)가 있는 곳, 정보를 찾는 과정은 한 번의 질문과 대답으로 끝나지 않는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며, 그 과정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곳. 실제 도서관 이용자 중 원하는 것을 처음부터 정확하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개인의 능력부족 때문이 아니라 정보와 지식의 탐구 과정이 질문과 대답을 거치며 구체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기본인 도서관이 어떻게 조용할 수 있겠는가.
특히 현대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탐구의 과정은 이전보다 더 역동적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는 더 이상 책에만 있지 않다. 차고 넘치는 인터넷상의 정보는 이제는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기도 어렵다. 유행하는 레시피를 글로 찾느냐 동영상으로 찾느냐로 세대를 구분한다는데 이젠 AR, VR, 메타버스 시대가 온단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문해력이 문자를 읽고, 쓰고, 이해하는 데 한정되지 않는다. 디지털 세상의 정보를 찾고, 보고, 듣고,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리터러시가 요구된다. 끊임없이 배우고, 만나고, 소통해야 유지될 수 있는 능력이다.
그 중심에 도서관이 있다. 연간 3000만명 이상이 공공도서관이 진행하는 각종 문화·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는 일회성 교육에 그치지 않고 도서관에서 자연스럽게 후속 학습으로 이어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용할 수 있는 장서도 동네 도서관뿐 아니라 각종 온라인 정보원과 국립중앙도서관이 운영하는 책바다와 디지털화 사업을 통해 외연이 전국으로 확장된다. 올해 3월 문을 연 ‘실감서재’는 수장고 속 고문헌을 최첨단 기술로 재현하여 새로운 방식의 읽기를 제안하는 전시·체험 공간인데, 코로나19로 관람이 제한적인데도 1800여명이 다녀갔다. 이 모든 활동은 도서관, 이용할 수 있는 정보, 서비스를 기획·운영하는 사서, 무엇보다 여기에 참여하는 이용자들과 활발한 상호작용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익숙한 도서관의 모습이다.
여전히 도서관이 조용해야 한다는 당신은 에코의 <장미의 이름> 속 웃음을 금기시하여 희극편 책장에 독을 발랐던 근엄하고 엄숙한 도서관을 기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조용한 도서관은 사람이 없는 도서관이다. 그러나 사람 없이 책만 있는 도서관은 그저 서고일 뿐이다.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소리, 새로운 기기 사용법을 질문하는 소리, 교육프로그램 후 자기 계발을 위해 사서와 상담하는 소리, 도서관 전시실에서 감상을 나누고, 열린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의 웃음과 박수소리가 거슬리는 당신에게는 도서관이 아닌 독서실을 추천한다. 도서관은 시끄러운 곳이다. 아니, 시끄러워야 한다.
김정은 |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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