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극초음속 미사일, 김정은 집권 10년 핵 고도화의 결정판"[인사이드&인사이트/전성훈]

전성훈 국민대 겸임교수·전 통일연구원장 2021. 10. 1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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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30년 비핵화 외교 실패
북한이 지난달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 8형‘의 발사 모습. 마하 5 이상의 빠른 속도로 현재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으로는 요격이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뉴시스
전성훈 국민대 겸임교수·전 통일연구원장
《북한이 9월 28일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 8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현존하는 미사일방어 기술로 막을 수 없는 극초음속 미사일은 김정은이 집권 후 일관되게 추진한 핵무력 고도화의 결정판이다. 북한을 설득하고 압박해 핵을 포기시키겠다는 비핵화 외교의 실패를 다시 한 번 입증한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북한이 미국과 타협해 일부 핵능력을 줄일 수는 있어도 완전한 핵 폐기는 불가능하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북한 비핵화는 우리의 꿈일 뿐이지 현실이 아닐 수 있음도 자각해야 한다.》
첫 실험으로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북한의 의지와 능력을 결코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이런 점에서 “개발 초기 단계부터 실전배치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우리 합동참모본부의 평가는 우려스럽다. “우리는 (북한의) 어떠한 새로운 능력에 대한 보도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미국 정부의 평가와도 대비된다. 비핵화 외교가 시작된 노태우 정부 이후 역대 정부는 북한이 새로운 무기를 개발할 때마다 그 능력을 평가절하하고 파장을 축소하며 현실을 외면하기에 급급했다. 그런 안이하고 무책임한 자세가 30년 비핵화 외교의 철저한 실패를 초래했고 우리 국민을 북한 핵무력의 인질로 만든 셈이다.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경쟁

개발에 많은 재원과 기술이 필요한 미사일은 핵탄두를 탑재해야 ‘비용 대 효과’면에서 수지가 맞는다. 값비싼 미사일에 재래식 탄두를 실어 봐야 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미사일 기술을 들여와 사거리를 늘리는 데 애를 먹은 것도 핵탄두를 개발할 것이라는 미국의 의심 때문이었다. 김정은이 2017년 수소탄과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에 연이어 성공한 후에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했다고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은 물론이고 극초음속 미사일과 회피 기동이 가능한 단거리 미사일 ‘KN-23’에 핵탄두를 탑재할 것으로 상정해야 한다.

현재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의 선두 주자는 러시아다. 그 뒤를 중국 미국 인도가 추격하고 있고 여기에 북한이 가세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음속의 최대 20배까지 비행할 수 있는 가장 빠르며 가장 정확한 미사일로 알려져 있다. 핵탄두를 탑재한 극초음속 미사일은 명실상부한 불패의 무기로서 한미 미사일방어망을 무력화시키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호위함 선상에서 극초음속 미사일 지르콘의 시험발사를 해오던 러시아는 4일 핵잠수함에서도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뉴시스
러시아는 경제난으로 위축된 재래식 전력을 보완하기 위해 첨단무기 개발에 집중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18년 러시아가 서방의 미사일방어망을 피해 세계 곳곳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 중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2019년 12월 실전배치한 아방가르드 극초음속 미사일을 1957년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에 비견되는 쾌거라고 자랑했다. 4일에는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지르콘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도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김정은은 집권 직후 유훈 계승을 시작으로 병진노선을 거쳐 현재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견지하면서 핵탄두와 미사일 개발에 전력투구했다. 미국의 민간연구소(핵위협 이니시어티브·NTI)에 따르면 북한은 1984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총 156회의 각종 미사일 실험을 실시했는데 김정은 집권 후인 2012년 1월부터의 실험 횟수가 125차례에 달한다. 김일성 때부터 시작된 미사일 발사의 80% 정도가 김정은 집권 10년간 집중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북한은 올해 9월에도 모두 여섯 발의 각종 미사일을 발사했다.

세습정권의 명운 건 핵무력 고도화

김정은이 유훈 계승 차원에서 취한 첫 조치는 김정일에게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하며 “북한을 핵억제력을 보유한 무적필승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켰고, 우리 민족끼리 나아가는 6·15 통일시대를 열어놓았다”고 칭송한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2012년 4월 개정한 헌법 서문에도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명기했다. 핵무력이 선대의 귀중한 유산이자 북한체제의 존립 기반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병진노선은 핵과 경제를 병행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핵무력을 완성한 후에 경제 건설을 추진하는 ‘선 핵무력 건설, 후 경제 건설’의 순차 노선이다. 김정은은 2013년 3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 억제력만 든든하면 천만대적이 덤벼들어도 무서울 것이 없으며 마음 놓고 경제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힘을 집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핵보유를 법적으로 정착시키고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핵무력을 강화하기 위한 법령도 채택했다.

김정은은 5년 뒤인 2018년 4월 핵무력 완성을 기반으로 경제 건설에 매진하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제시했다. 당시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를 평화 국면으로 몰고 가면서 4·27 남북 정상회담 개최 일주일 전에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제시한 것이다. 남북 회담에 나온 김정은의 목적이 핵개발 포기가 아니라 경제 개발을 위해 남한을 활용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남한 활용전략은 국제제재의 벽에 막혀 진전을 보지 못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세 차례씩 했지만 하노이회담이 실패하고 김정은의 국정 운영은 큰 차질을 빚었다. 그의 좌절감은 두 가지 경로로 표출되었는데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을 공개적으로 토로하면서 막말로 비난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2019년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미국과의 장기전이 불가피하다면서 ‘정면 돌파’를 기치로 내세우고 억지력을 강화하며 자력갱생의 길을 택한 것이다.

국민 보호를 위한 대책 필요

김정은은 올해 초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도 모든 난관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면서 국방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과업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비롯해 전술핵무기, 초대형 핵탄두, 핵잠수함, 잠수함발사핵미사일, 군사정찰위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반도는 사실상 핵시대에 진입했다. 역대 정부가 전가의 보도로 삼은 비핵화 외교는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를 막지 못했다. 차기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오만과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비핵화 외교의 실패를 용기 있게 인정하고 북한의 핵무력을 냉정하게 직시해 핵시대에 맞는 국가안보 시스템을 시급히 갖춰야 한다. 아울러 탄도미사일을 금지한 기존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모든 종류의 미사일로 확대하는 새로운 안보리 결의를 마련해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최대한 저지해야 한다.

우리도 북한의 미사일 고도화에 맞서 각종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당분간 미사일 개발 경쟁은 피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남북한의 미사일 수준이 균형을 이룬 시점에 군비통제를 통해 군사적 안정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대비해야 한다.

전성훈 국민대 겸임교수·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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