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이제야 다시 등장한 정치 풍자 코미디

신동흔 문화부 차장 2021. 10. 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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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L에 등장한 시사 풍자 인기
文 정부서 ‘개콘’ ‘웃찾사’ 종영
진영 논리에 ‘좌표’ 찍혀 사라져
악다구니 정치에 성찰 기회 제공

최근 동영상 플랫폼(OTT) 쿠팡플레이에서 새로 시작한 코미디쇼 ‘SNL코리아’의 한 코너에서 개그맨 안영미가 스마트폰으로 “재명 오빠? 난 오빠의 그런 점이 좋더라”고 통화하는 장면이 나왔다. 김부선 배우를 흉내낸 말투에 많은 이가 여당 유력 대선 후보를 연상했다. 하지만, 이어진 대화에서 “응 배우 유재명 오빠”라면서 긴장이 탁 풀어졌다. 청중의 기대가 배반되는 그 순간에 웃음이 유발되는 법이다. 다른 코너에선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초록색 운동복을 입고 ‘다주택자’ ‘자영업자’라고 써 붙인 연기자들이 등장해 ‘탕’ 총소리에 차례로 쓰러지는 장면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방역 대책 실패를 비꼰 내용이었다.

개그맨 안영미가 2일 쿠팡플레이를 통해 공개된 웹 예능 ‘SNL 코리아’ 조여정편에서 "재명오빠? 난 오빠의 그런 점이 좋더라"라고 말하고 있다. /쿠팡플레이

‘TV서 사라진 정치 코미디 부활’ ‘문재인 임기 중 첫 풍자’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후진국도 아니고, 집권 여당의 실정(失政)을 콩트 소재로 삼은 것만으로 화제가 된다는 사실에 잠시 낯이 뜨거웠다. 실제로 “얼마나 억눌렀으면 별것도 아닌 패러디에 사람들이 감동하냐”는 댓글도 있었다.

우리에게 시사 풍자는 그리 낯선 게 아니었다. 2011년 12월 케이블 채널 tvN에서 처음 방송된 SNL의 경우, 18대 대선을 앞둔 시기 ‘여의도 텔레토비’에서 박근혜·문재인·이정희·안철수 후보 특징을 절묘하게 잡아낸 콩트를 매회 선보였다. 당시 집권당 사람들이 자당 후보가 우습게 나올 때마다 속을 부글부글 끓이면서도 “언론 탄압” 소리 들을까 항의도 못 하던 모습을 보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KBS 2TV ‘개그콘서트’(개콘)도 ‘사마귀 유치원’ ‘민상토론’ 같은 코너를 통해 권력과 사회 현상을 비판했다. 오히려 보수 정권에서 시사풍자가 활발했던 것. SNL도 박근혜 정부에 미운털이 박혔다는 말이 무성했지만 멀쩡히 방송되다가 문 정부 출범 이후 슬그머니 사라졌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KBS 개콘도 모두 이번 정부 들어 폐지되면서 더 이상 방송에서 시사 풍자를 보기 힘들어졌다.

방송국 사람들은 “시청률 저하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개그맨들 이야기는 달랐다. 시청률 저하는 결과일 뿐, 문 정부의 엄숙주의와 진영 논리가 큰 원인이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 누구도 문제 삼지 않을 웃음의 소재를 찾다 보니 ‘옥동자’식 외모 개그, 남녀 성차(性差)를 강조하는 개그, 지역별 사투리 비교 등을 다룰 수 없었다.

정치 풍자도 힘들어졌다. 한 개그맨은 “보수 세력은 (압력이 있어도) 무시하거나 저항할 수 있었는데, 이른바 진보를 표방한 사람들은 달랐다”면서 “인터넷서 그악스럽게 여론 몰이 하고 좌표 찍어 돌리니 다들 입을 다물었다”고 했다. 여성 개그맨 김영희는 한 팟캐스트에서 “지금 조국 딸 느낌나요, 박탈감 느낀다”고 했다가 한동안 방송을 쉬어야 했다.

/KBS 방송화면 중 일부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1년 동안 KBS2TV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인 '봉숭아학당'에는 매회 문재인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문 교장' 부부가 등장해 프로그램 엔딩을 장식했다.

노골적으로 눈치를 살핀 듯한 정황도 있다. 이 정부 출범 초기 개콘 ‘봉숭아 학당’은 대통령 분장으로 나와 “‘샤람’이 먼저다”를 반복하는 ‘문 교장’ 캐릭터에게 1년간 엔딩을 맡기기도 했다.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거나 강한 존재의 허점을 부각해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의 공식을 따르는 대신, 대통령을 드러내놓고 미화했으니 시청률이 온전할 리 없었다. 정치 팟캐스트나 유튜버가 재밌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 정권 들어 공중파 시사 프로까지 차지한 김어준과 김제동은 아무리 낄낄거려도 풍자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이 유발한 웃음은 풍자가 아닌 조롱에 따른 것이었고, 자기 진영 내에서만 메아리쳤을 뿐이다.

그렇게 방송에서 버림받은 시사 풍자의 바통이 이제 쿠팡 계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이어졌다. 지난 9일 SNL 6회에선 ‘윤미향, 위안부 후원금 횡령 논란’과 윤석열 후보의 ‘손바닥 王[왕] 자’를 웃음 소재로 삼고 있었다. 고전 미학에서 웃음은 대상과 ‘거리’를 느끼게 하고 이를 통해 성찰을 제공하는 기능을 한다. 모처럼 선보인 시사 코미디가 대선을 앞두고 악다구니만 쓰는 정치에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을 텐데, 이번 시즌은 10회로 끝날 예정이라니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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