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의 온차이나] 토사구팽의 이유

최유식 동북아연구소장 2021. 10. 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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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권력 강화, 홍콩 탄압 앞장섰던 공안부 부부장 출신 2명 잇따라 숙청
장쩌민계 공안 세력 제거하고 연임 기반도 다지기

베이징 정·관계가 요즘 숨을 죽이고 있답니다. 시진핑 주석 집권기 ‘권력의 칼’ 역할을 했던 공안부 부부장 출신의 두 장관급 인사가 지난주 줄줄이 낙마했기 때문이죠. 시 주석 연임이 결정되는 내년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또 한 번 숙청 바람이 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옵니다.

먼저 9월30일 쑨리쥔(孫力軍·52) 전 공안부 부부장에 대한 쌍개(雙開) 결정이 발표됐어요. 쌍개란 공산당에서 제명하고, 공직도 박탈한다는 뜻입니다. 통상 쌍개가 결정되면 검찰로 넘겨져 기소가 되죠. 이틀 뒤인 10월2일에는 베이징시 공안국장, 공안부 부부장, 사법부장을 지낸 푸정화(傅政華·66)가 국가감찰위 조사를 받고 있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두 사람은 시 주석 집권기에 공안 실무를 책임진 인물들로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 등 정적 제거, 홍콩 민주화 시위 탄압, 중국 내 인권 운동가와 반체제 인사 단속 등에 앞장섰죠. 충견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이 시점에 토사구팽을 당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쑨리쥔 전 공안부 부부장에 대한 조사 결과를 담은 중국 국가감찰위 발표문. /국가감찰위 홈페이지

◇홍콩 납치극 주도한 쑨리쥔

2015년말 홍콩 퉁뤄완 서점 관계자 5명이 홍콩과 선전, 태국 등지에서 잇따라 실종된 일이 있었죠. 당시 이 서점은 ‘시진핑과 그의 연인’이라는 제목의 책 출판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2017년초에는 홍콩 호텔에 머무르고 있던 중국 밍톈그룹 샤오젠화 회장이 사라진 사건도 있었죠.

그 직후에는 중국이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홍콩에서 대대적인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송환법 추진을 철회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주도한 게 바로 당시 공안부 홍콩마카오대만판공실 주임이었던 쑨리쥔입니다. 시 주석은 홍콩 보안법 제정을 통해 사실상 홍콩을 중국 체제에 통합했는데, 그 작업을 실무적으로 책임진 인물인 거죠.

2018년 장관급 공안부 부부장으로 승진했고, 코로나 19 사태가 터진 2020년 초에는 중앙지도조의 일원으로 우한에 내려가 방역통제 작업을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작년 4월7일 후베이성 우한에서 열린 한 코로나 19 방역 관련 회의에 참석한 쑨리쥔 당시 중국 공안부 부부장. /AP 연합뉴스

국가감찰위에 따르면 그는 정치 야심에 가득한 인물로, 당내에 파벌을 만들고 파벌의 이익을 위해 공안 조직을 동원해 반대파를 염탐하는 등 탈법, 월권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돼 있어요. 시 주석, 펑리위안 여사의 지시라며 공안부장에 보고도 하지 않고 직접 조직에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중요한 대목은 ‘신종 코로나 방역 일선에 있으면서 마음대로 직무에서 이탈하고 개인적으로 대량의 기밀 자료를 보관했다’고 한 대목이에요. 그는 상하이외국어학원을 졸업하고 호주 남웨일스대로 유학을 떠나 공공위생과 도시관리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중국에서는 그가 신종 코로나와 관련된 기밀 자료를 서방에 넘기려고 한 것으로 보는 것 같아요.

◇과거 보스에 칼 겨눈 푸정화

푸정화는 일선 형사로 출발해서 사법부장까지 지낸 입지적인 인물입니다. 2010년 베이징 공안국장으로 있으면서 태자당 세력의 비호를 받고 있던 천상인간 등 베이징 4대 룸살롱을 대대적으로 단속해 전국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됐죠.

2013년 공안부 부부장으로 승진하고 나서는 과거 자신의 보스였던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 부패사건을 맡아 조사했습니다. 링지화 전 중앙판공청 주임 아들 자동차 사고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도맡아 처리하면서 시 주석의 권력 장악을 도왔죠.

베이징시 공안국장을 맡고 있던 2011년 당시의 푸정화. /로이터 연합뉴스

술·담배를 일절 하지 않는 그는 동료와 부하 직원에 대한 혹독한 대우로 ‘1호 혹리(酷吏)’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출세를 위해 과거 보스에 대한 조사도 마다하지 않은 냉정하고 잔혹한 인물이죠.

◇장쩌민계 공안세력 뿌리뽑기

이들에 대한 토사구팽 식 처리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공안부는 체제와 권력 유지에 중요한 기관인데도 시 주석이 그동안 제대로 장악을 못 했죠. 공안부장은 시 주석이 임명해도, 주요 실무 부서 책임자들은 장쩌민 전 주석 측근인 멍젠주 전 정법위 서기가 키운 인물들이 차지했습니다.

시 주석은 이들을 차례차례 제거하면서 자신의 측근들을 그 자리에 앉히고 있죠. 시 주석 집권 9년간 낙마한 공안부 부부장 출신은 모두 4명입니다.

내년 20차 당 대회 연임을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분석도 있어요. 시 주석 연임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못하도록 자신에게 충성을 다했던 인물들부터 시작해 대대적인 숙청 작업에 돌입하려는 의도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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