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핵기술 전수, 파키스탄 '핵 개발의 아버지' 사망
[경향신문]
숙적 인도 핵실험 단행하자
혈혈단신 귀국, 핵개발 진행
이란·리비아에도 기술 넘겨
‘파키스탄 핵 개발의 아버지’이자 북한에 핵기술을 전수한 핵 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85·사진)이 10일 사망했다. 향년 85세.
파키스탄 국영방송 PTV는 이날 칸 박사가 폐 질환으로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병원에 이송된 후 숨졌다고 보도했다. 알자지라는 칸 박사가 지난 8월 코로나19에 감염되자 해당 병원에 입원했고, 몇 주 전에 퇴원했으나 건강이 다시 악화돼 병원에 재이송됐다고 보도했다.
칸 박사는 파키스탄 내에서는 핵무기 개발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1936년생인 그는 1952년 파키스탄으로 이주한 인도 출신 이민자로, 카라치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서독,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에서 유학했다. 그는 1970년대에 벨기에의 루벤가톨릭대학에서 금속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네덜란드의 한 기술회사인 FDO에서 근무하다가 파키스탄으로 돌아왔다. FDO는 네덜란드 울트라 원심분리기(UCN)라는 회사에 부품과 기술을 제공하는 회사였다. 칸 박사는 FDO에서 원심분리 우라늄 농축 기술을 빼내 와 파키스탄의 첫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웃 나라인 인도가 1974년 최초의 핵실험을 단행하자 그는 줄피카르 알리 부토 당시 파키스탄 총리를 만나 핵무기 프로그램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1976년 핵기술을 가지고 혈혈단신으로 귀국한 그는 결국 1998년 핵실험에 성공했으며 이후 파키스탄은 국제사회로부터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됐다. 파키스탄 국민들 입장에서 칸 박사는 자국의 방어 수준을 끌어올리고 최대 라이벌인 인도와 견줄 핵무기를 개발한 주역인 것이다.
칸 박사는 그러나 미국 등 서방국가로부터는 핵기술을 1990년대에 북한과 리비아, 이란 등 소위 ‘불량국가’로 이전한 인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2004년 2월 파키스탄 국영방송에 나와 이들 3개국에 고농축우라늄(HEU) 제조에 필요한 원심분리기와 기술을 팔았다고 인정한 이후로 이슬라마바드의 자택에서 연금 상태로 지내왔다. 2009년에 가택연금이 해제됐지만 그가 집을 나설 때마다 당국의 감시를 받는 등 움직임이 극히 제한되기도 했다.
칸 박사는 2012년에는 기성 정치권의 무능함을 비판하며 파키스탄구국운동(TTP)이라는 정당을 출범시켰으나, 2013년 총선에서 단 1석의 의석도 건지지 못하자 정당을 해산했다.
아리프 알비 파키스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칸 박사의 타계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고 애도했다. 그는 칸 박사와 1982년부터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다고 밝히며 “우리는 그의 공로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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