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뮤지컬 영화 '아네트'로 방한한 레오스 카락스 "아주 나쁜 아버지 이야기"
[경향신문]
“높은 곳에서 아래를 보면, 꼭 빠질 것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도 시선을 떼기 어렵죠. 영화에서 그런 심연에 대한 공감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 <나쁜 피>(1986) 등으로 잘 알려진 레오스 카락스 감독(61)이 <홀리 모터스>(2012) 이후 9년 만의 신작 영화이자 그의 첫 뮤지컬 영화인 <아네트>와 함께 부산을 찾았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이자 감독상 수상작인 <아네트>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리젠테이션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10일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24시간에 가까운 이동 끝에 막 부산에 도착했다는 카락스 감독은 “봉주르, 헬로” 짧은 인사말부터 건넸다. <아네트>는 프랑스인인 그가 처음으로 만든 영어 영화이기도 하다.
<아네트>는 심연에 매혹돼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파멸로 이끄는 한 남자의 비극적인 이야기다. 영화의 음악과 공동 각본을 맡은 미국의 록 밴드 스팍스(SPARKS)가 먼저 구상해 카락스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했다. 카락스 감독은 “스팍스가 먼저 기획을 제안했을 때, 이미 15곡의 노래가 완성돼 있었다”면서 “항상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바람이 운 좋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아네트>는 영화 밖에서부터 시작되는 영화다. 녹음실에서 스팍스 멤버들을 바라보는 카락스 감독과 실제 그의 딸 나스탸의 모습이 첫 장면으로 등장한다. 연주를 시작한 스팍스가 녹음실을 나와 거리로 나서면 어느새 두 주연 배우, 애덤 드라이버와 마리옹 코티야르까지 합류한 합창의 대열이 완성된다. 노래하는 와중에 옷을 갈아입고 머리 스타일까지 바꾸니, 어느덧 두 배우는 각각 <아네트> 속 인물인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와 오페라 가수 안으로 변해 있다.
“대사 대신 노래로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뮤지컬에서는 무대 뒤에서의 모습이 자주 노출되잖아요. 이렇게 비현실적인 환경을 갖추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집니다. 아기가 꼭두각시 인형으로 등장하고, LA에서 독일로 배경이 변하는 것들처럼요.”
영화 제목이기도 한 ‘아네트’는 헨리와 안이 낳은 딸로, 뛰어난 노래 실력을 타고난 비범한 아기로 그려진다. 카락스 감독의 설명처럼 아네트는 실제 배우가 아닌 꼭두각시 인형으로 등장한다. 그는 “실제로 노래할 수 있는 아기 배우를 찾지 못했다”며 “3D 작업도 염두에 뒀지만 배우들과 감정적 교류가 어려워 인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현실적인 이유를 들었다.
‘가짜’ 사람인 아네트의 모습은 록과 팝,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로 거의 모든 말을 대신하는 <아네트>의 뮤지컬식 소통법과 맞닿아 있다. 더없이 인위적으로 완성된 이 허구의 세계를 경유해, 카락스 감독은 관객의 마음에 파문을 남기는 ‘진짜’ 질문을 던진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아버지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는 딸에게 나쁜 아버지인가?’라는 해답 없는 의문에서 해답을 찾고 싶었거든요. <아네트>는 아주 나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촌철살인 유머로 관객을 ‘죽여주던’ 코미디언 헨리와, 무대 위에서 ‘죽고 또 죽는’ 오페라의 히로인 안. 강렬한 대조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사랑은 경력에서 격차가 벌어지면서 위기에 처한다. 카락스 감독은 “사람들이 왜 성공을 원하는가, 어떻게 성공하는가, 성공을 하면 삶과 페르소나는 변하는가 등 질문들에 관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가 2012년부터 방영된 미국 HBO 드라마 <걸스>에서부터 “아주 흥미롭고 이상해” 눈여겨봤다는 애덤 드라이버는 ‘아버지’와 ‘성공’ 등 삶을 꿰뚫는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포한 기이하고도 폭력적인 인물, 헨리의 형상을 탁월하게 구현해냈다.
카락스 감독은 평소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그는 “예전엔 좋지 않은 영화를 봐도 영감을 얻었지만 요새는 그렇지 않다. 신뢰할 만한 영화가 아니면 보지 않는다”고 했다. 2013년 <홀리 모터스>로 내한했을 때 한국 영화 역시 다른 영화들처럼 보지 않는다고 말했던 그다. 이번엔 홍상수 감독의 이름을 꺼냈다. “요즘 생긴 불면증 덕분에, 다작하는 홍상수 감독의 많은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면서 “이름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홍 감독과 작업한 배우들의 연기가 상당히 좋았다”고 말했다.
카락스 감독의 손등에 그려진 문신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영화를 여는 얼굴이자, 영화를 닫는 이름인 그의 딸 나스탸의 이름이 다시 한번 언급됐다. 카락스 감독이 나스타에게 바치는 영화, <아네트>는 오는 27일 국내 개봉한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민주, 윤 대통령 탄핵소추 청문회 추진…김 여사 모녀 증인 검토
- ‘난 태국인이야’ 블랙핑크 리사의 진화···K팝 스타에서 팝스타로
- [국대 감독선임 막전막후] 돌고 돌아 홍명보,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 ‘180.2㎜’ 많은 비에 충남서 130여명 긴급대피…주택 붕괴되고 웅벽 무너지기도
- 성폭행·고문·장기 적출 위험에 노출된 사하라 사막 난민들
- [단독]‘채상병 사망 원인’ 지목된 포11대대장 “경찰, 1년 동안 뭘 했나 싶다”
- ‘법카 유용 의혹’ 검찰 소환 통보받은 이재명 “정치 검찰 이용한 보복”
- [속보]삼성전자 사상 첫 총파업···노조 “6540여명 참여”
-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독도’ 사라졌다”
- 김재섭 “김 여사 문자가 임금님 교서인가···부당한 전대개입 주체는 대통령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