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이 사라진 시대

김진철 2021. 10. 1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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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게티이미지뱅크

[한겨레 프리즘] 김진철ㅣ책지성팀장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 루카치 죄르지가 쓴 것처럼, 밤하늘 별빛만 살펴보고도 살 수 있던 시대는 행복했으리라.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러 인간은 별빛을 잃었고 소설이 그 길을 밝혀주리라는 것이 루카치의 이야기라고, 문학평론가 김윤식(1936~2018)은 풀이했다. 인류가 나아갈 길을 찾는 작업으로서의 창작과 비평은 가슴 벅차고 멋진 일이다.

이미 정해져 있는 뚜렷한 길만 따라가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던, 실패를 걱정하고 불안에 떨 일이 없었을, 그 시대는 진작에 저물었다. 총총한 별빛이 사라진 자리에 암흑은 더욱 깊어간다. 길 잃은 이들은 이정표를 찾아 헤매고 떠돈다.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는 이들은 번민하여 어둠 속을 방황한다. 가야 할 길을 찾고, 살아남아야 할 이유와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 헤맨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애끓는 번민은, 창작에 혼신을 다하는 작가의 고뇌에 못지않다.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이다. 종교를 찾고 주술에 마음을 빼앗긴다.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고 불공에 정성을 다하고, 오늘 아침에도 정화수를 떠놓은 간절한 두 손이 있었을 것이다. 애달픈 마음으로 점을 치고 사주를 보고 철학관을 찾을 것이다. 입시, 취업, 승진 경쟁에 피가 마르고, ‘벼락거지’ 처지에 빠질까 노심초사하며, 거듭 좌절하고 헛되이 욕망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은, 땀 흘린 노력이 마땅한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 암울함은, 무엇이든 붙들게 한다. ‘로또신’ ‘코인신’에게 영혼까지 바쳐 애원한다.

책이 읽히지 않고 팔리지 않는 사회에서 유독 베스트셀러를 약속하는 열쇳말들이 있다. 부, 돈, 부자, 행운, 행복이다. 상한 마음에 ‘힐링’을 선사하겠다는 책들도 봇물이다. 경쟁에 다친 마음,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심리를 누구라도 매만져주길 바라는 이들을 겨냥한 책들이다. 일과 공부에서 성공하는 비법을 알려주겠다는 책들도 인기가 식지 않는다.

길 잃고 방황하는 이들의 안간힘은 안타깝지만, 무지하고 어리석은 행위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살아남기 위해,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라도 기운을 내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작은 위안을 얻고 살아갈 작은 희망이라도 건져내려는 행위를 손가락질할 일은 아니다.

더 많이 갖겠다고, 더 큰 힘을 손아귀에 넣겠다고, 더 높이 올라서겠다고, 하늘에 빌고 신에게 의지하는 것은 흉측하다. ‘대박’과 ‘한탕’의 탐욕은 절박한 이들의 안간힘과는 다르다. 화천대유·천화동인은 <주역>에서 따온 깊은 뜻으로 포장하고 있으나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대박을 취하겠다는 천박함일 뿐이며, 손바닥에 짙게 적어넣은 ‘임금 왕’(王)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탕을 노리는 자기현시의 과욕일 따름이다. 겸허히 하늘의 뜻을 알고자 했던 주역에서 이름을 취한 것은 뻔뻔함이요, 전근대적 제왕의 꿈을 멋대로 꾸는 것은 아둔함의 소산이다.

돈과 치유와 성공을 약속하는 베스트셀러에 통찰과 사유는커녕, 비법조차 제대로 담겨 있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점집이든 철학관이든,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될 리 없거니와, 무신론자로서 백번 양보하여 자세를 고쳐봐도 신이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지도가 되어주는 시대는 진작에 종언을 고했다고 생각한다.

별빛이 자취를 감춘 자리에서 우리는 스스로 갈 길을 찾아야 한다. 찾기 위해 방황해야 한다. 그것은 대박과 한탕으로 가는 미혹이 아니라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꿈을 위한 절박한 헤맴이어야 한다. 작가들이 의식과 무의식까지 동원해 잃어버린 ‘나’와 유토피아를 찾아 방황하는 인물과 서사를 창작하듯, 하찮은 신념 혹은 위대한 망상일지언정 사라진 빛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밝혀야 한다.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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