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민당의 승리가 주는 메시지

한겨레 2021. 10. 1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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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23일 목요일 독일 베를린에서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최종 토론에 참석한 각 정당 후보자들. 왼쪽부터 앨리스 바이델 독일을위한대안당 공동대표, 크리스티안 린드너 자유민주당 대표, 마르쿠스 소에더 기독교사회연합당 대표, 아르민 라셰트 바이에른 총리 등이다. 2명의 사회자와 오른쪽은 아나레나 베어보크 녹색당 공동대표(왼쪽에서 세번째), 올라프 숄츠 재무장관 겸 사민당 후보, 재닌 비슬러 좌파당 디 린케 공동대표다. 연합뉴스/AP

[세계의 창] 티모 플렉켄슈타인ㅣ런던정경대 사회정책학과 부교수

지난 9월26일 독일에서 연방의원 총선거가 치러졌다. 사회민주당(SPD·사민당)이 25.7%를 득표해, 24.1%를 얻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기독교민주당(CDU·기민당)을 간발의 차이로 눌렀다.

총선에서 이겼다고는 해도 압도적인 다수당이 아니어서 ‘총리직’을 확보한 것은 아니지만, 사민당은 기뻐하고 있다. 몇달 전까지 사민당의 지지율은 14%로 낮았고, 기민당과 녹색당에 이어 3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보수주의자와 환경주의자가 선두 경쟁을 벌일 것이라던 예상은 빗나갔다. 녹색당 지지율은 4년 전보다 거의 6%포인트 증가했지만, 14.8% 득표에 그치고 말았다.

사민당은 올해 내내 여론조사에서 기민당에 크게 뒤지다 막판에 이를 따라잡는 놀라운 선전을 펼쳤고, 녹색당도 쉽게 제쳤다. 그들은 부인할지 모르지만, 사민당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많이 놀랐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평론가와 분석가들은 매력적이지 않은 당의 ‘브랜드’를 바꾼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 즉 다수 유권자가 기대하는 새 국가 비전을 제시해준 사람을 찾으려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 같은 사람 말이다.

지난해 8월 사민당이 총리 후보로 지명한 이는 북부 함부르크 출신 변호사이자 메르켈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올라프 숄츠였다. 냉소주의자들은 그가 선택된 것은 그의 비전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사실, 숄츠는 2019년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다가 뼈아픈 패배를 겪었다. 이는 2005년 메르켈에게 패배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이후 16년 만에 사민당 출신 총리가 되려던 그의 야망의 종지부처럼 보이기도 했다. 중도 성향의 숄츠는 당에 활력을 불어넣을 비전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카리스마도 약하다고 여겨졌다. 요컨대 그는 기진맥진해 보이는 사민당의 운명을 뒤집을 것으로 예상되는 그런 후보는 아니었다.

물론 그는 선거 과정에서 경쟁자들의 실수로 큰 이익을 얻었다. 예를 들어, 녹색당 총리 후보는 출간한 책의 표절 논란에 부닥쳤고, 기민당 후보는 홍수 피해를 입은 마을에서 웃는 모습이 보도돼 곤경을 치렀다. 하지만 숄츠의 성공을 경쟁자들의 실수에서 기인한 것으로만 보는 것은 불공평하다.

숄츠는 선거 기간에 자신이 독일 재무장관으로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국가 경제를 잘 관리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글로벌 최저법인세가 도입되는 데 힘을 보탰다는 점도 부각했다. 다시 말해, 그의 선거운동은 자신을 유럽 최대 경제대국의 관리를 맡을 수 있는 유능한 정치 지도자로 내세우는 데 집중했다. 좀 따분하긴 하지만 국가가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려 한 것이다. 숄츠는 이런 전략으로 ‘자연스럽게’ 자신을 유능한 총리 메르켈의 후계자로 만들었고, 정치적 스펙트럼을 넘어 메르켈 지지자들을 끌어왔다.

어떤 면에서 숄츠의 성공은 신선하다. 그의 성공은 후보자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호감을 사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본인의 역량을 강조하는 선거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 선택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성공 스토리와는 다르다. 존슨은 유능한 정치 지도자와는 거리가 먼, 세일즈맨 자질을 가진 카리스마형 정치인이다. 이 영국과 독일의 비교는 조금은 극단적일 수 있으나 두가지 경로를 보여준다. 어느 나라에서나 선거를 앞둔 정당은 유권자를 사로잡을 전략적 선택에 직면한다. 포퓰리스트들이 전세계적으로 선거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시대에, 기존 정당들은 비슷한 전략을 추구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존슨 총리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것이 단기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힘들고 불확실한 시기일수록 사람들은 노동과 생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유능한 지도자를 요구한다. ‘쉬운 해결책’이 아니라 정치적 신념과 기술을 필요로 한다. 특히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정치적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며, 정당들은 그에 따라 지도자를 뽑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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