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의 귀환' 앞둔 태광그룹.. 잃어버린 10년 되찾나

김우영 기자 2021. 10.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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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배임으로 구속된 이호진 전 회장, 11일 만기 출소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이달 만기 출소한다. 그룹을 떠난 지 10년 만이다. 그동안 태광그룹은 역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003240)의 연간 영업이익은 10년 사이 8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 전 회장이 수년간 공을 들였던 티브로드는 SK브로드밴드에 인수됐다. 그룹 안팎에서 ‘잃어버린 10년’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재계에선 이 전 회장의 출소로 태광그룹의 가장 큰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그동안 미뤄왔던 각종 신사업과 인수합병(M&A)이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조선DB

◇ ‘잃어버린 10년’에 실적 반토막 난 계열사들

10일 태광그룹 등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이 오는 11일 만기 출소할 예정이다. 그는 2011년 140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기소 돼 1심에서 4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2012년에는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간암 치료를 이유로 구속집행정지와 병보석이 허가돼 불구속 상태로 항소심 재판을 받았으나, ‘황제 보석’ 논란이 일며 2018년 재수감됐다. 이듬해 대법원이 징역 3년의 실형을 확정하면서 남은 형기를 채우게 됐다.

이 전 회장은 향후 5년간 사건 관련 기업 취업이 제한된다. 이 전 회장의 출소 후 거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현재 간암 3기인 만큼 당분간 건강 회복과 치료에 주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이 전 회장은 간의 30%가량을 절제한 상태다. 당초 이 전 회장은 미국에서 간 이식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재판과 구속이 반복지면서 받지 못했다.

그룹 안팎에선 이 전 회장의 출소 사실만으로도 반기는 모양새다. 이 전 회장이 없었던 지난 10년간 태광그룹이 역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광그룹은 이호진 전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휘말리기 전인 2011년까지만 해도 재계 순위 30위권을 유지했지만, 지난해 49위까지 떨어졌다.

계열사들의 실적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은 2011년에 4조원이 넘는 연간 매출을 기록했으나, 지난해엔 1조7400억원에 그쳤다. 영업이익 역시 같은 기간 4419억원에서 535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주력제품인 PTA(고순도테레프탈) 공급과잉의 영향도 컸지만, 경영형 오너였던 이 전 회장의 부재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재계 분석이다.

태광산업의 자회사이자, 그룹의 대표 캐시카우였던 티브로드도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2019년 SK브로드밴드에 매각됐다. 2011년 7268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티브로드는 가장 최근 사업보고서가 나온 2019년에 65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1824억원에서 972억원으로 축소됐다. 유료방송 가입자 수 역시 2013년 333만명을 정점으로 찍은 뒤 매년 하락세를 이어가며 2019년엔 302만명까지 줄었다.

◇ 오너 복귀 기대하는 태광… 10년 만에 투자 재개

이 전 회장이 경영 전반에 나설 수는 없지만, 사법 리스크가 해소된 만큼 그룹의 신사업과 M&A 분야에서 보폭이 넓어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그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재계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은 재계 총수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M&A 전문가”라며 “영어의 몸이 되면서 지난 10년간 그룹의 M&A 활동이 중단된 것도 이런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과감한 투자가 어려웠던 만큼, 이 전 회장의 복귀를 계기로 그룹 내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이 2012년 회장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만 해도 태광그룹은 M&A를 그룹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아왔다. 이 전 회장은 2004년 회장 자리에 오른 뒤 2006년 쌍용화재(현 흥국화재해상보험), 피데스증권중개(흥국증권), 예가람저축은행 등을 인수했다. 미디어 부문에서도 활발한 M&A 활동을 벌였는데,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지역케이블TV 20여개를 인수해 티브로드를 탄생시켰다. 결과적으로 고배를 마셨지만, 2005년 주류회사 진로 인수전에 태광산업이 뛰어든 것도 이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한국수력원자력, LS일렉트릭, SK가스, 두산퓨얼셀, 태광산업, 현대자동차가 9월 3일 비대면으로 '울산미포산단 부하대응 연료전지 시범사업 공동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왼쪽부터) 김세훈 현대자동차 연료전지사업부장, 유수경 두산퓨얼셀 대표이사, 박용상 LS일렉트릭 대표이사,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대표이사, 윤병석 SK가스 대표이사, 정찬식 태광산업 대표이사. /LS일렉트릭 제공

태광그룹도 이 전 회장의 출소를 앞두고 사세 확장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올해 6월 태광산업은 LG화학(051910)과 플라스틱·접착제·합성고무 제조에 쓰이는 화학연료 아크릴로나이트릴(AN)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티엘케미칼’(가칭)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 태광산업이 다른 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한 건 1961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9월에도 한국수력원자력, 현대자동차, LS일렉트릭, SK가스(018670), 두산퓨얼셀(336260) 등과 손잡고 부생수소를 활용한 연료전지 시범사업에서 원료인 부생수소를 태광산업이 공급하기로 했다.

재계에서는 태광그룹이 투자 행보를 재개한 점이 이 전 회장의 출소와 무관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 전 회장 복귀를 앞두고 기업 가치 띄우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여전히 태광산업 지분 29.48%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그룹 관계자는 “올해 티엘케미칼 설립과 친환경 사업에 뛰어든 것은 사세 축소에 대한 위기감과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장기간 미뤄왔던 투자를 집행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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