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크 애런 시리즈'로 불리는 애틀랜타-밀워키 NL 디비전시리즈, 이유를 봤더니..

2021. 10. 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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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장윤호 기자]지난 1월22일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메이저리그의 홈런왕 행크 애런이 부활(?)해 밀워키로 돌아왔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밀워키 브루어스가 9일(이하 한국 시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5전3선승제를 시작했다. 1차전이 밀워키 브루어스 홈 구장인 ‘아메리칸 패밀리 필드(American Family Field,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렸다. 1차전은 밀워키가 애틀랜타에 2-1로 승리했다.

아메리칸 패밀리 필드는 2001년 4월6일 ‘밀러 파크(miller park)로 개장한 구장인데 금년 1월 보험사인 ’아메리칸 패밀리‘와 15년간 명칭 사용권 계약을 하고 올시즌 개막과 동시에 ’아메리칸 패밀리 필드‘로 바뀌었다.

흥미로운 것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전신이 바로 ‘밀워키 브레이브스’였다는 사실이다. 밀워키 브레이브스가 1966년 애틀랜타로 연고지를 옮겨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시대를 열었다.

지금도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 1957년 시골 도시 연고의 밀워키 브레이브스가 메이저리그의 상징인 뉴욕 양키스를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이 된 ‘사건’이다. 7차전에서 5-0으로 양키스를 잠재웠다.

그날 밀워키시의 위스콘신 애비뉴는 뉴욕이 자랑하는 타임스 스퀘어로 변했다. 무려 22만5000여명의 팬들이 몰려 거리가 파티장으로 변했다.

그 다음 해인 1958년 월드시리즈에 두 팀은 다시 맞붙었다. 결과는 미키 맨틀이 뛴 뉴욕 양키스가 이번에는 7차전에서 밀워키 브레이브스를 누르고 챔피언이 됐다.

1958년 밀워키 브레이브스는 행크 애런이 클린업 타자였고 에디 매튜스, 밥 웨커 등을 자랑하는 팀이었다.

그러나 행크 애런을 보유한 밀워키 브레이브스는 1958년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 후 6년이 지난 뒤 연고지 이전 청원을 냈고 결국 그 2년 후 애틀랜타로 옮겨 갔다.

밀워키 브레이브스가 1957년, 1958년 2년 연속 뉴욕 양키스와 월드시리즈를 펼친 시기가 밀워키 야구의 황금기였다.

행크 애런의 본명은 헨리(Henry) 루이스 애런이다. 그래서 헨리로도 불린다. 1934년 태어나 올해 1월 세상을 떠났다. 밀워키 브레이브스 유니폼을 입고 1954년 4월13일 신시내티 레즈전에 데뷔해 1976년10월3일 디트로이트전이 마지막 경기였다.

그는 1966년 밀워키 브레이브스가 애틀랜타로 옮겨가면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선수가 됐고, 1975년 현재의 밀워키 브루어스로 팀을 옮겨 1976년 10월 은퇴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떠난 행크 애런이 밀워키 브루어스로 돌아왔고 밀워키를 떠나 애틀랜타로 연고지를 옮겼던 브레이브스가 드디어 2021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밀워키로 돌아와 밀워키 브루어스와 경기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메이저리그는 이번 시리즈를 행크 애런이 부활한 ‘행크 애런 시리즈’라고 한다.
행크 애런은 23년 메이저리그 통산 755홈런, 2297타점을 기록했다. 타율은 3할5리였다. 은퇴 후 인종차별주의와 싸우는 등 미국 사회의 지도자로 존경 받았다.

[사진=AFPBBNEws]-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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