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수제맥주 만들 대기업 뽑아요" 소형 수제맥주가 오디션 펼친 이유는? [생생유통]
소형 수제맥주 브루어리 몽트비어는 지난달 회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캔맥주, 수제맥주 되다' 오디션을 펼친다는 공고를 띄웠다. 참가 대상은 국내 대형 브루어리의 맥주 제품이다. 1등은 상금 200만원과 몽트비어 위탁생산 기회, 직영점 2곳에서의 판매 기회를 얻는다. 연 매출 3억원에 직원 5명인 기업이 대기업을 위해 제조 라인과 유통망을 내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오디션을 개최한 이유에 대해 몽트비어는 "급성장한 수제맥주 시장에 어떻게든 들어와야겠는데 이름만 수제인 맥주라도 만들어야 하는 고충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박도영 몽트비어 이사는 "대기업이 수제맥주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상황을 풍자하려고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맥주계 공룡, '3% 시장' 노려
국내 수제맥주 시장이 급속 팽창했지만 수제맥주 업계 관계자들은 "진짜 수제맥주를 만드는 중소업체들은 위기에 빠졌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수제맥주가 각광을 받자 맥주 업계 '공룡'인 OB맥주와 롯데칠성음료가 소형 수제맥주 시장에 공격적으로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수제맥주 판매액은 1180억원에 그친다. 맥주 전체 시장 규모가 약 3조7000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3% 수준이다.
OB맥주는 자체 수제맥주를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구스아일랜드, 핸드앤몰트 등 수제맥주 제품군을 갖춘 OB맥주는 지난 6월 수제맥주 협업 전문 브랜드 '코리아 브루어스 콜렉티브(KBC)'를 출범시켜 빠르게 라인업을 늘리고 있다. 노르디스크맥주, 백양BYC 비엔나라거, 캬맥주 등이 이렇게 나온 맥주다.
롯데칠성음료는 수제맥주 오디션인 '수제맥주, 캔이 되다'를 펼치고 있다. 롯데는 주세법 개정으로 지난 1월부터 동종 주류 생산 업체에 한해 타사 주류 위탁생산이 허용된 이후 제주맥주, 세븐브로이 등 위탁생산으로 재미를 봤다. 이제 오디션을 통해 수제맥주 일부를 골라 대량생산의 길을 열어주겠다고 한 것이다. 오디션 취지를 두고 일각에선 "대형 공장과 유통망을 무기로 수제맥주 업체들을 줄 세우는 것 아니냐"며 삐딱한 시선을 보낸다.
더 큰 문제는 소형 수제맥주 업체들이 시장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맥주 세금 개편 이후 편의점은 수제맥주의 주요 판로로 떠올랐는데, 편의점이 펼치는 맥주 판매 전략은 '4캔 만원'이다. 4캔 만원 그룹에 속하기만 해도 소비자의 눈에 들어 판매량이 급증하기 때문에 업체들은 큰 폭으로 마진을 깎아가면서도 이 그룹에 속하려 한다. 하지만 소수의 중형 수제맥주 업체를 빼고 소형 수제맥주 업체 중 마진 감소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 곳은 없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양조협회가 정한 수제맥주의 정의대로 '소규모 독립적인 양조업자'를 고집하는 수제맥주들은 소비자 눈에 들 방법조차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손잡고 만드는 '컬래버 수제맥주'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색 조합으로 한 몸에 관심을 받지만 반짝 유행한 후 인기가 빠르게 식는 경우가 많고, 비슷한 협업 제품이 연달아 나오면서 소비자들 관심도 차츰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소비자들이 컬래버레이션 수제맥주가 수제맥주의 전부인 것으로 오해하며 식상함을 느끼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게다가 컬래버 제품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수제맥주 업체 독립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업계 관계자는 "한 수제맥주 업체는 컬래버 상품 매출 비중이 80%가 넘는다"며 "라이선스가 연장되지 않으면 그곳은 생존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규모 양조장에 한해 온라인 판매 허용해야"
업계에선 "대기업에 대항할 숨통을 뚫어달라"며 수제맥주의 온라인 판매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수제맥주협회는 지난 4월 "코로나19 시대에 소비자가 직접 매장을 방문해야 하는 수제맥주 업계는 고사 직전"이라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소규모 업체에 한해 온라인 판매를 허용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현행 주세법은 주류의 온라인 판매가 금지됐지만 전통주만 예외로 허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역 농산물을 사용해 맥주를 만드는 소규모 양조장에 한해 온라인 판매를 허용하는 방안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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