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오늘 할 일의 70%라도 해냈다면 성공했다고 기뻐하자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1. 10. 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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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설정해야만 만족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일을 하나 마무리 지었다는 성취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또 다른 일이 밀려오고 데드라인 한 두 시간 전에 까먹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등 밥은 어떻게 먹고 숨은 어떻게 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살다보면 일이 없는 때가 있는 반면 일이 한꺼번에 몰아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스트레스에 짓눌리는 경험을 하곤 한다. 실제로 스트레스라는 영어 단어는 건물이나 다리가 큰 하중을 견딘다고 할 때 압박감 또는 하중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압박감에 짓눌리는 경험을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것은 꽤나 적절한 표현인 셈이다. 

계속 짓눌리다 보면 납작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므로 얼마 전 《나는 왜 내가 힘들까 (원제: 자아의 저주)》의 저자인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에게 스트레스를 이기는 법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리어리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견디는 데 우선 해야 할 일 목록도 스트레스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해야 할 일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심리학 연구들이 반복적으로 보여주듯 탄력성(또는 회복력)이 좋은 사람이 되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슬프지만 은퇴를 하거나 어느 날 벼락 부자가 되어 업무가 없어진다고 해도 해야 할 일 목록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직장에서 해야 할 일이 없어지고 나면 집안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잔뜩 생긴다. 에를 들어 손주들과 놀아주기, 크고 작은 집안일 하기 같은 일이다. 업무가 없어지고 나면 심지어 즐겁게 해야 할 취미활동이나 운동도 어느 새 해야 할 일(To-do list)의 일부가 되어서 오늘 충분히 취미 활동을 하지 못해서 분하다며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가능하다고 한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한 때 백수로 지냈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사람이란 무리 속에서 자신의 필요를 찾는 동물이기 때문에 일이 없는 것도 나름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일이 없는 경우 자신이 과연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존재인지 괴로워하며 존재론적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할 일이 많아서 괴로운 것도 견디기 어렵지만 할 일이 없어서 일을 찾아 나서는,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려 애쓰는 괴로움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할 일을 찾고 나면 일이 많다는 괴로움에 시달리게 되므로 일이 없으나 있으나 인생은 계속해서 고통이지만 말이다.

해야 할 일이 없어지면 편해질 것이라고들 쉽게 생각하지만 일은 있으나 없으나 괴로움을 안겨주며 또 해야 할 일이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잔뜩 쌓여 있는 해야 할 일 리스트를 없애는 데 골몰할 것이 아니라 어차피 저것들은 죽을 때 까지 잔뜩 쌓여 있을 것이므로 결코 다 해낼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일정 부분 '포기'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더 현명한 삶의 방식이다. 

해야 할 일 리스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은 행위이기 때문에 물이 완전히 마르지 않을 정도로만 틈틈이 적당히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밑 빠진 독을 완전히 채우겠다는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잘못된 목표 설정으로 매일매일 실패를 늘리는, 즉 쓸데 없는 고통을 늘리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꼭 처리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이 존재하므로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은 좋은 선택이다. 그러고 나서 오늘 처리해야 할 일의 50~70% 정도를 해냈다면 성공이라고 받아들이고 기뻐하도록 하자. 이렇게 목표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설정해야만 만족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히 불만족 속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잔뜩 쌓여 있는 할 일 목록을 보고 이것들을 다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히지만 "여기서 반 정도만 처리해도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나면 짓눌리는 느낌이 훨씬 덜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살아남기 위해 70% 이상을 처리해야만 하는 날들도 있겠지만 분명 그렇지 않은 날들이 더 많을 것임을 상기하자. 일의 가지 수를 줄일 수 없다면 '질'을 조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꼭 필요한 몇 가지를 열심히 하고 나머지를 조금 대충 하는 방식으로 타협할 수 있다. 성취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일단 사는 것이 더 중요하므로 타협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이러한 인간적인 목표 조정이 불가능한 환경에 있다면, 만족감이나 성취감, 행복을 느끼는 것이 불가능한 삶을 살고 있는 셈이므로 빠져나올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장기적인 생존에 보탬이 될 것이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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