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데이터 리터러시, 교실에서 바다를 읽다

김소연 기자 2021. 10. 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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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4일부터 6일까지, 그리고 14일까지 4일간 교사직무연수 ‘해양데이터 리터러시 속으로(Dive into Ocean Data Literacy)’가 개최됐다. 직무연수에 참가한 과학교사 27명은 실시간 비대면 강의를 통해 해양데이터 리터러시 교육법을 배우고 실습했다. 과학동아DB

“해양데이터 리터러시 아카데미를 통해 직접 해양데이터를 그래프로 표현해 보면서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기후변화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해결할 환경과학 연구의 필요성이 와닿았습니다.”

인천남고 1학년 이현종 군은 지난 7월 14일 인천남고에서 진행된 ‘해양데이터 리터러시 아카데미’에 참가한 뒤에 과학과 바다를 대하는 자신의 관점이 변했다고 말했다. 이날 교육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은 ‘관할해역 해양정보 공동활용 시스템(JOISS)’에 접속해 염분, 수온 등 해양데이터를 수집했다. 수집한 데이터는 학생들의 손으로 시각화돼 교과서에서 접하던 해양데이터 그래프로 재탄생했다. 이 군은 “국내 해양데이터가 정리돼 있는 사이트에서 원하는 데이터를 직접 찾아보고 그래프를 그려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해양 연구와 관련된 분야로 진로를 고민해 보게 된 좋은 계기였다”고 했다.

○ 해양데이터, 직접 꿰어봐야 깊이 이해

수온, 염분 분포, 해류 등 해양데이터를 보며 탐구하는 참가자들.  환경과학기술 제공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말은 자세하고 정확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 그 의미가 더 커졌다. 수치의 나열일 뿐인 데이터에서 참과 거짓을 분별하고, 목적에 따라 데이터를 수집·가공·분석하는 능력, ‘데이터 리터러시’가 중요해졌다.

그중에서도 지구 표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다를 읽는 능력은 날씨, 자원, 생태계를 꿰뚫어 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최근엔 이산화탄소와 열을 저장하는 바다의 능력이 주목을 받으며 바다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열쇠로 꼽히고 있다. 인간 활동의 산물로 생성된 미세플라스틱이 최종적으로 머무르는 곳도 바다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해양데이터 리터러시’란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다. 해양데이터 리터러시는 해양데이터를 읽어내 인간과 해양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해양과 공존하며 발전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하는 능력을 뜻한다. 하호경 인하대 해양과학과 교수는 “해양데이터 리터러시 능력을 키운다면 데이터로부터 해양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해 현대사회에서 해양의 중요성을 알아갈 수 있을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입을 모아 “단순히 강의와 자료로 학습하기보다 실제로 자료를 분석하고 가공해 볼 때 이해도가 확연히 높아진다”고 한다. 해양과학 교육도 마찬가지다. 수온, 염분 분포, 해류 등 해양데이터가 어떻게 그래프로 재탄생했는지 과정을 직접 따라가 보면 바다와 기후를 보다 역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세훈 인천 초은중 과학교사는 “해양과학을 교육하다 보면 다양한 그래프를 아이들에게 설명해야 하는데 이때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움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먼저 아이들은 그래프를 어려워한다. 마치 지금껏 그래프를 공부해 오며 ‘어렵다’라는 사실만을 터득한 듯하다. 두 번째로 아이들은 해양데이터 수집 방법을 모른다. 어떤 과정을 거쳐 데이터가 모여 시각화됐는지 모르다 보니 그래프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을 바꿀 수 없다. 마지막으로 교과서에는 실측자료에 대한 설명 없이 그래프와 그에 대한 설명만 제시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그래프를 일종의 그림으로 인식한 채 그림과 설명을 짝지어 암기하기 급급하다.”

해양데이터를 살아 움직이는 상태로 전달하기 위해, 해외에서는 이미 해양데이터 리터러시를 교육현장에 접목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미국해양대기청(NOAA)에서 운영하는 ‘교실 속 데이터(Data in the Classroom)’ 서비스다. 웹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하기만 하면 NOAA의 해양관측위성이 보내오는 관측자료를 접할 수 있다. 학생들은 이 관측자료를 이용해 엘니뇨, 해수면 상승, 산호초 백화, 수질, 해양 산성화 등 바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분석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수면 상승 항목에선 바람, 해류, 그리고 조류 등 해수면 상승과 연관된 요소와 평균과 분산 등 통계 분석법을 학습한다. 우주에서 해수면을 측정하는 방법이나 우주 공간 속 달과 지구의 운동 등 심화 개념도 배운다. 이후엔 인공위성에서 보내온 해수면 데이터로 학생들이 해수면의 높이에 따른 태풍피해 정도나 기후변화가 부른 해수면 상승 등 주제를 설정해 주도적으로 탐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미국 럿거스대에서 운영하는 ‘해양 데이터 랩(Ocean Data Labs)’이나 유네스코(UNESCO)의 ‘해양 리터러시 포털(Ocean Literacy Portal)’ 등 다양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들로는 한반도 연근해 데이터를 자세히 다룰 수 없고, 내용이 전부 영어로 돼 있어 국내 교육현장에 해양데이터 리터러시를 접목하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 우리 바다를 배우는 ‘해(海)봄 교실’의 학생들

환경과학기술이 지난해 출시한 해양데이터 리터러시 교육 웹사이트 ‘해(海)봄 교실’을 활용해 9월 인천 연근해의 조석예보표(오른쪽)와 한반도 인근 해역의 4계절 표층 수온 데이터(왼쪽)를 각각 그래프로 나타냈다.

국내에서는 해양데이터 전문기업 환경과학기술이 지난해 11월 해양데이터 리터러시 교육 웹사이트 ‘해(海)봄 교실’을 출시해 한반도 연근해 해양데이터를 한국어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마련했다. 해(海)봄 교실은 환경과학기술이 해양수산부 연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구축한 JOISS의 해양데이터를 활용한다. JOISS는 국내 해양 연구자료 3억 4000만 건, 모델·재분석 자료 3TB(테라바이트·1TB는 1024GB), 위성자료 10TB를 보유하고 있는 해양연구자료 전문 저장소다.

해(海)봄 교실을 통해 학생들은 직접 COBE 수온장기변동, 정선 해양관측자료의 수온과 염분 장기변동, 생물다양성 자료, 국립해양조사원 조위관측소 자료 등을 시각화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위도 38.2159, 경도 128.71 부근의 동해 북부 생물다양성 자료가 궁금한 학생은 생물다양성 탭에 나타나는 한반도 지도에서 해당 영역을 클릭하면 된다. 2013년도 해양생태계기본조사를 통해 확보한 그 지역 식물플랑크톤, 중형저서생물, 동물플랑크톤의 개체수 변화 데이터가 시간에 따른 그래프로 나타난다. 

더 복잡한 분석도 가능하다. 해양자료를 분석하고 시각화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인 ODV(Ocean Data View)를 사용하면 JOISS의 자료를 수직 프로파일, 산포도, 수직단면도, 수평분포도 등 다양한 그래프로 나타낼 수 있다. 환경과학기술이 운영하는 해양 데이터사이언스 블로그 ‘씨랩(SEALAB)’에서 ‘ODV 튜토리얼’에 접속하면 ODV 설치부터 사용법까지 상세하게 소개하는 활동 가이드를 살펴볼 수 있다. 

환경과학기술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해양데이터를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해양데이터 리터러시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인천남고, 인천과학고, 인천여고 등 인천광역시의 과학중점학교와 과학고등학교에서 시범운영 중이다. 해양데이터 리터러시 아카데미에서는 ODV를 다운로드하고 설치한 뒤 조작하는 방법과 해(海)봄 교실 활용법, JOISS의 해양데이터를 그래프 형식으로 바꿔보는 방법을 교육한다.

해양데이터 리터러시를 학교 현장에서 원활히 활용하기 위해 지난 8월 4일부터 6일까지, 그리고 14일까지 교사직무연수 ‘해양데이터 리터러시 속으로(Dive into Ocean Data Literacy)’도 진행했다. 인천광역시 소속 과학 교사 27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직무연수에서는 실시간 비대면 강의를 통해 기후변화, 해양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환기하며 해양관측과 해양학의 중요성을 교육했다. 이후, 실습을 통해 ODV 활용법을 배워보는 등 교사들이 먼저 해양데이터 리터러시를 체험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마지막날인 6일 진행한 해커톤(제한된 시간 동안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행사)에서는 해양데이터 리터러시를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했다. 교사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수업자료를 제작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직무연수에 참가한 김경민 인천 제일고 과학교사는 “생활기록부를 쓰다 보면 학생들이 다채로운 활동을 경험하게 하기 어렵다는 점이 큰 고민으로 남는데 이번 연수가 큰 도움이 됐다”며 “보다 다양한 자료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박소예나 환경과학기술 해양사업부 과장은 해커톤의 성과로 “과학 정규교과과정과 해양데이터를 연결하거나, 과학 외에도 다양한 교과와 해양데이터를 연결한 STEAM 수업 주제가 도출된 점이 특히 고무적”이라고 했다. STEAM 수업은 과학, 기술, 공학, 인문, 예술, 수학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합해 융합적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방식이다. 송태윤 환경과학기술 부사장은 3일간의 교사직무연수를 마치며 “해양데이터 리터러시를 통해 학생들은 데이터에서 도출한 정보와 지식으로 해양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책임 있게 결정할 능력을 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천여고에서 진행된 ‘해양데이터 리터러시 아카데미’에 참가한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과학동아DB

참여수기 │ 해양데이터 리터러시가 그릴 교실 풍경

(조세훈 인천 초은중 과학교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학교 현장에도 교사와 학생이 사용할 노트북과 태블릿이 충분히 보급됐고, 비대면 수업이 확대되면서 학생들은 컴퓨터를 통해 수업을 듣고 있다. 온라인 수업이 임시방편이 아닌 하나의 수업 형태로 자리 잡은 지금이 온라인 기반의 데이터 중심 과학 교육에 알맞은 때다. JOISS와 ODV를 활용한 해양데이터 리터러시 교육은 이런 현장의 흐름에 안성맞춤이다. 아이들은 JOISS를 통해 어렵게만 보이던 그래프가 다양한 장비로 실측된 데이터의 모음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해(海)봄 교실에 직접 접속해 실측 데이터와 그래프를 대조하며 그래프를 분석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비교하면서 해양데이터에 한 발짝 더 다가갈 것이다. 또, ODV 사용법을 익혀 JOISS의 데이터를 불러와 다양한 형태의 그래프를 직접 도식화하면 데이터가 시각화되는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 어렵던 그래프를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다니, 이보다 더 그래프와 친해질 방법이 또 있을까. 나는 해양과학을 가르칠 때면 교육자료로 가공된 그래프를 화면에 띄워놓고 심심한 설명을 늘어놓기 바빴다. 설명을 하면서도 ‘아…, 이렇게 가르치면 안 될 것 같은데…’ 하는 의구심이 머릿속에 가득했으며, 굳어지는 아이들의 표정 앞에 교수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마땅한 교수 방법을 찾지 못했는데, 이는 당시에 데이터 리터러시의 개념을 알지 못했고, 데이터의 본질을 파고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교단 앞의 내 모습을 반성하며 해양데이터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 본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10월호, 해양데이터 리터러시, 교실에서 바다를 읽다 

[김소연 기자 leci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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