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史 들추기]300만원짜리 '삼엽충' 20년만에 '3대 이모'가 되다

신중섭 2021. 10. 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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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룩스社, 2001년 세계 최초 출시
시장 초기, 비싸고 부족한 청소 성능에 외면
AI·라이다 센서 탑재로 비약적인 성장
물걸레 청소·반려견 돌봄 기능까지
코로나 여파로 지난해 시장 큰폭 확대

‘백(白)색 가전’이 이젠 ‘100(百)색’ 가전이 됐습니다. 색깔만 다양해진 게 아닙니다. 신발관리기, 식물재배기 등 온갖 신(新)가전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가전제품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전해 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주중엔 일하느라, 주말엔 쉬거나 놀러다니느라 바쁜 현대인에게 집안일은 정말 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입니다. 최근 ‘청소·설거지·빨래’ 돕는 가전제품의 인기가 급속도로 오르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가사 노동을 도와주는 가전이라고 해서 ‘3대 이모님 가전’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입니다. 식기세척기·건조기·로봇청소기가 그 주인공인데요, 이 가운데서도 어설픈 성능으로 ‘바보’ 소리까지 듣던 로봇청소기의 약진이 심상찮습니다. ‘바보 가전’에서 인공지능(AI)을 업고 ‘필수가전’ 자리를 노리는 로봇청소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세계 최초의 가정용 로봇청소기인 일렉트로룩스의 트릴로바이트(사진=일렉트로룩스)
최초 로봇청소기는 2001년 일렉트로룩스 ‘트릴로바이트’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 2015년 판매량 14만3500대 수준이었던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은 지난해 29만2500대 규모로 2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물론 냉장고나 세탁기, 에어컨과 같은 가전과 비교하면 아직 크지 않은 규모지만 초창기 로봇청소기의 인기를 생각하면 이러한 성장세는 그야말로 눈부십니다.

이름만 보면 ‘로봇’이 붙어 최근에 나온 가전 같기도 하지만 로봇청소기가 등장한 지는 어언 20년이 됐습니다. 세계 최초의 로봇청소기는 2001년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사가 선보였는데요, 해저에서 플랑크톤·박테리아를 빨아들이며 청소하던 삼엽충에서 기능·디자인 모티브를 얻어 제품 이름도 ‘트릴로바이트(삼엽충)’로 지었습니다.

트릴로바이트의 출시 당시 구매가는 2500달러(약 300만원). 2021년인 지금 로봇청소기가 300만원이라고 해도 비싸다고 느껴질 텐데, 20년 전에 300만원이었으니 정말 웬만한 사람은 구매하기 힘들었던 고가 가전이었던 셈입니다. 실제 트릴로바이트는 국내에 진출한 당시 강남권을 비롯한 고급 주거단지 소비자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청소 능력과 길 찾기·장애물 감지 성능 등이 현저히 부족했던 탓에 선풍적인 인기로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신기함’이나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 그쳤던 것이죠.

지난 2017년 LG전자가 LG 로보킹 출시 15주년을 기념해 진행한 ‘최초의 로보킹을 찾아라’ 이벤트.(사진=LG전자)
가전 업계 잇따라 진출했지만 ‘바보 가전’ 오명

그럼에도 트릴로바이트가 로봇청소기의 모태가 된 건 분명했습니다. 트릴로바이트 출시 이후 글로벌 가전 기업들은 하나둘 비슷한 형태의 로봇 청소기를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시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죠. 국내에선 트릴로바이트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 2003년 LG전자(066570)가 국내 기업 최초로 로봇청소기 ‘로보킹’을 출시했습니다. 2006년엔 삼성전자가 ‘하우젠 로봇 청소기’를 내놨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좀처럼 커지지 않았습니다. LG와 삼성이 로봇청소기 사업에 뛰어들었던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가전 업계는 로봇청소기 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2005년 3만대 정도였던 로봇청소기 시장은 2008년에야 고작 10만대를 넘어섰습니다. 7년 뒤인 2015년까지도 14만 대 수준에 머무르며 시장 성장은 거북이걸음을 걸었습니다.

원인은 뻔했습니다. 청소기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청소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물론 발전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2000년대 초 트릴로바이트를 비롯한 1세대 제품 이후, 초음파 감지 센서 등 여러 센서를 탑재해 장애물 감지 성능을 한층 더 개선한 2세대 제품이 나오긴 했지만 소비자를 만족시키긴 힘들었습니다. 여전히 문턱을 제대로 못 넘는가 하면 카펫을 구분하지 못했고 구석구석 깨끗한 청소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바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 모델이 삼성디지털프라자 강남본점에서 인공지능(AI) 기술로 사물인식 능력과 주행성능을 대폭 개선한 로봇청소기 ‘비스포크 제트 봇 AI’를 소개하고 있다.(사진=삼성전자)
AI 탑재로 ‘인간 청소부’ 성큼…코로나로 ‘폭풍 성장’

로봇청소기는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룹니다. 각종 센서뿐 아니라 카메라까지 달아 장애물을 더욱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됐고 일반 청소기와 같은 진공흡입 방식이 적용되는 등 흡입력도 강화됐습니다. 성능은 더 좋아졌지만 가격은 저가형은 20~30만원 수준에서 고급형도 100만원 대로 낮아졌습니다.

무엇보다도 2016년 등장한 AI와 사물인터넷(IoT) 기능이 탑재되기 시작하면서 ‘완전체’로 거듭납니다. AI의 딥러닝으로 사물·공간인식 능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것은 물론 자율주행차에 활용되는 ‘라이다’(LiDAR·물체인식센서) 센서와 중앙처리장치(CPU)까지 탑재해 그야말로 인간 수준의 ‘청소부’에 가까워진 것이죠.

삼성전자는 올해 4월 라이다·3D 센서와 인텔의 AI 솔루션 등 최첨단 AI 기술을 대거 탑재한 ‘비스포크 제트 봇 AI’를 올해 4월 출시했습니다. AI로 집안 구조와 가구·가전을 정확히 인식해 공간을 매핑, 자율주행 능력을 구현하고, 전선이나 반려동물 배설물과 같은 장애물은 물론 1㎤의 작은 사물까지 입체적으로 감지한다고 합니다. 청소를 마친 뒤에는 본체가 ‘청정스테이션’으로 복귀해 충전을 시작함과 동시에 먼지통도 알아서 비워주고, ‘스마트싱스 펫’ 서비스를 통해 반려동물까지 돌볼 수 있습니다. 획기적인 성능 개선에 힘입어 삼성의 로봇청소기 매출은 비스포크 제트 봇 AI 출시 후 8월 말까지 누계로 전년 동기 대비 4배 이상 성장했다고 합니다.

LG전자는 먼지 흡입용 로봇청소기와 함께 물걸레 전용 로봇청소기까지 따로 내놨습니다. 올해 6월 출시한 먼지 흡입용 로봇청소기 ‘LG 코드제로 R9 오브제컬렉션’은 스마트 인버터 모터의 강력한 흡입력과 함꼐 약 300만장의 사물이미지를 학습해 공간과 사물을 정밀하게 인지하는 강화된 AI를 탑재했습니다. R9이 진공 청소를 끝내고 복귀하면 물걸레 전용 로봇청소기인 코드제로 M9 씽큐가 알아서 물걸레 청소를 진행해 한번에 진공과 물걸레 청소를 모두 끝내는 스마트 페어링 기능도 돋보입니다.

로봇청소기 시장은 지난해 코로나19 여파에 따라 확산한 ‘집콕’ 문화를 계기로 더욱 빠르게 성장 중입니다. 유로모니터는 올해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이 30만대를 돌파하고 오는 2025년엔 43만5000대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AI와 IoT로 무장한 로봇청소기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LG전자가 더 똑똑하고 편리해진 로봇청소기 ‘코드제로 R9 오브제컬렉션’을 21일 출시했다. 모델들이 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왼쪽부터 카밍 그린, 카밍 베이지 색상의 LG 코드제로 R9 오브제컬렉션.(사진=LG전자)

신중섭 (dotor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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