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중국] 중국공산당이 '꽃미남'을 싫어하는 까닭은?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2021. 10. 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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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서바이벌 쇼 “Idol Producer”로 데뷔해 1년 간 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다 해산한 아이돌 그룹 “Nine Percent(百分九少年)”의 모습/ 중국인터넷>

*오늘부터 매주 토요일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연재를 시작합니다. 2021년 8월 14일까지 70회 연재했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의 후속편입니다. 문혁 이후 ‘개혁개방’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는 40여년의 격변기, 그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역사를 동시대 중국인들의 육성에 귀 기울이며 핍진하게 꾸준히 기록하겠습니다. 독자님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1회>

2021년 7월 창당 100주년을 맞은 중국공산당은 인민 개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규제의 법망(法網)을 조이고 있다. 청소년의 비디오 게임 주 3시간 이하 제한, 과외 활동 및 사교육 시장 제한, 연예인의 인터넷 팬클럽 활동 금지, 음란·폭력·배금주의 조장 방송 금지 등등······.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스런 남자’ 연예인들의 방송 노출을 제한하는 법안은 중국 안팎에서 커다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외모나 언행이 여자 같은 사내를 조롱하고 폄하할 때 흔히 “냥파오(娘炮, 여성화된 남성), “나이요우 소생(奶油小生, 크림 소생),” “시아오셴러우(小鮮肉, 작고 신선한 육고기) 등의 인터넷 신조어를 사용한다. 겉모습이 “예쁘장한” 남자 연예인들은 모두 “냥파오”로 몰려 방송에서 퇴출당할 위험에 직면해 있다. BTS를 비롯한 K-팝 아이돌은 물론, 송준기, 박보검 등 중국 전역에서 인기를 누리는 “꽃미남” 한류스타들도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개인의 문화적 취향을 규제...새로운 문혁의 조짐인가

최근 방송·통신을 감독하는 중국 국가 광파전시(廣播電視, 이하 광전) 총국은 “냥파오” 연예인의 방송 출연을 규제하고 나섰다. 표면적 이유는 “남자의 여성화”를 막기 위함이다. 이미 10년 전부터 중국에선 한·일 팝문화의 이른바 “비정상적 심미(審美)” 경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점 고조돼 왔다. 급기야 중국공산당 성립 100주년을 맞아 중공 정부는 대대적인 풍기 단속에 나섰고, 예쁘장한 페미닌룩의 “꽃미남” 연예인들은 곤경을 겪고 있다. 과연 중국공산당은 왜 안팎으로 위기가 중첩되는 지금 바로 이때 인민 개개인의 미적·성적·문화적 취향까지 규제하려 할까? 새로운 문혁의 조짐인가?

하얼빈 전기공사 이사장 쓰쩌푸(斯澤夫, 1958- )는 중국 인민 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에서 상무위원 300명 중 한 명으로 활약하고 있다. 마르고 날렵한 체격에 짧은 헤어스타일의 쓰쩌푸는 군 장성 같은 풍모의 고급 관원이다. 2020년 5월 그는 정협 상무위에서 작심하고 “남자 청소년의 여성화 추세”를 비판하며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중국 청소년 남자의 여성화를 비판한 중국 정협 상무위원 쓰쩌푸의 최근 사진/ 중국인터넷>

문혁이 절정으로 치닫던 1966-69년 동안 그는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다. 조반(造反) 혁명의 주역으로 활약하다 하방(下放)당했던 홍위병 집단의 주류는 아니라 해도, 1958년생 쓰저푸 역시 문혁 세대에 속한다. 유년 시절 날마다 마오쩌둥 어록을 암송하고 전쟁영웅을 동경하며 혁명정신을 벼리고 심신을 단련했던 바로 그 세대다.

쓰쩌푸의 눈에 비친 현재 중국의 “‘사내아이들(男孩子)’은 유약하고, 비굴하고, 담력 없는” 무기력한 존재들일 뿐이다. 그는 “사내아이의 여성 기질화” 혹은 “중국 청소년의 여성화 추세”는 절대로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국가적 위기라 생각한다. 1자녀 정책의 결과 요즘 아이들은 집안에서 응석받이로 자라고, 유년기 내내 대부분 여교사의 지도를 받기 때문에 신체를 단련할 기회를 잃었다는 분석이다.

쓰쩌푸는 개탄한다. 나약한 응석받이 어린 소년들은 날마다 모니터 앞에서 일본 만화와 K-드라마를 보며 “비쇼넨(美少年)”과 “꽃미남”을 흉내 내며 닮아가고 있다. 사내라면 강건한 심신으로 국토를 보위해야 하는데, 요즘 남아들은 “양강지기(陽剛之氣, 밝고 강건한 기질)”를 잃고, 음유(陰柔, 여성성)의 기질을 갖게 되었다.

“꽃미남은 중화민족을 해쳐...남자의 여성화를 막아라!”

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쓰쩌푸는 초·중·고 남자 교사를 늘리고, 체육 교육을 강화하고, 여성화를 부추기는 퇴폐적인 팝문화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남성의 여성화”는 “중화민족의 생존과 발전을 저해하는” 사회 병리적 현상이라 부르짖는다. 중국 밖의 사람들에겐, “꽃미남”이 “중화민족”을 해친다는 쓰쩌푸의 주장은 코미디 대사처럼 들릴 수 있지만, 결코 일개인의 견해만이 아니다. 가령 중국 인터넷에 다음과 같은 작자 미상의 표어를 널리 퍼져 있다.

여자 같은 사내는 일생을 약하게 하고(娘炮軟一生)

굳센 사내는 일세를 강하게 한다(硬漢强一世)

이 한 마디엔 “꽃미남” 연예인에 대한 다수 중국 인민의 반감이 담겨 있다. 오랫동안 중국의 매체들은 꽤나 상투적으로 게임과 팝문화를 “정신적 아편”에 비유해 왔다. 19세기 아편이 중화문명을 파괴하고 “100년 치욕”를 초래했듯, 외래의 “불량 문화”는 오늘날 청소년의 심신을 해치고, 나아가 “중화민족의 생존”까지 위협한다는 발상이다.

쓰쩌푸의 발언 이후 중국에선 “남자의 여성화”를 둘러싸고 꽤 큰 논쟁이 일었다. 특히 남성 교사의 비율을 늘리고, 체육교육은 남자 교사가 도맡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남녀 차별의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쓰쩌푸의 주장은 사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공산당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급기야 2021년 9월 2일, 중국 광전총부는 전국 각지의 방송국에 “연예인들의 풍격, 복식, 화장까지 엄격하게 관리하고, 특히 ‘냥파오(여성스런 남자)’ 등의 기형적 심미 취향을 단연히 두절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2021년 9월 8일, 중앙선전부는 텐센트(Tencent), 넷이즈(NetEase) 등 중국의 대표적 게임 회사들을 향해 “그릇된 가치”를 조장하는 음란, 색정, 폭력, 공포, 배금주의의 콘텐츠와 남성의 여성화 경향을 부추기는 “냥파오” 불량문화를 모두 삭제하라 엄포를 놓았다.

중 공산당, 문혁 땐 계급 혁명의 완수 주창...지금은 ‘중화민족’ 강조

1920년대 성립 초기부터 중국공산당은 전통 시대 사대부의 문약(文弱)을 배격하고 혁명 전사의 상무(尙武) 정신을 강조했다. 1930-40년대 반제·반봉건 투쟁의 과정에선 더욱 강인하고 용맹한 혁명가의 정신이 강조됐다. 문혁 시절엔 여성의 몸치장과 화장까지도 봉건적 구습이나 부르주아 퇴폐풍조라 여겨졌다. 젊은 여성들이 오히려 여성성을 버리고 남자 못잖은 남성적 강인함을 발휘해야만 했던 시대였다.

문혁 시대의 가치관에 비춰 보면 , “남자의 여성화”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반혁명적 자산계급의 퇴폐 문화일 뿐이다. 쓰쩌푸는 그 시대의 가치관에 따라 “꽃미남”의 대중적 인기를 그대로 방치하면 “중화민족의 생존과 발전”에 큰 위협이 된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1961년 중국 영화 “홍색낭자군”의 한 장면/ 공공부문>

요컨대 중공 정부는 “중화민족 대부흥”의 깃발을 들고 “여성스런 남자”가 판을 치는 연예계에 정풍(整風)을 일으키고 있다는 얘기다. 문혁 때는 “중화민족”보단 “계급 혁명”의 완수를 위해 정풍을 일으켰다. 이제는 “중화민족 대부흥”이 중국공산당의 최고 의제다.

2021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은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중국공산당의 초심(初心)은 바로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 만천하에 선언한 바 있다. 시진핑이 생각하는 중국공산당의 존립근거이자 궁극목적은 계급철폐도, 인민해방도, 공산사회의 건설도 아닌 바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얘기다. 중국공산당이 계급정당이길 포기하고 민족정당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중국공산당은 더는 공산혁명의 정당이 아니라 민족주의 정당이다. “민족중흥”의 깃발 아래 인민 개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고 교정하는 가부장적 국가사회주의 정당이다. 근대 자유주의는 개인의 사생활과 기본권의 보장을 위해 국가권력을 제약한다. 반면 중국공산당은 인민 개개인의 사고를 개조하고 인격을 교도(矯導)하는 가부장적 온정주의(paternalism)의 국가관을 표방하고 있다.

게르만 민족 강조한 1930~40년대 독일 나치와 비슷

그러한 중국공산당의 선전을 보면서 1930-40년대 독일의 나치를 떠올린다면 무리일까? 나치는 군사훈련과 스포츠 교육을 통해 청소년기 남자들을 강건하고 군기 잡힌 나치 혁명의 주동세력으로 배양하려 했다. 나치 선전부는 게르만 민족의 번영을 위해선 건강한 사내들의 “규율 있는 남성성(disciplined masculinity)”이 필수적이라 주장했다. “건강한 남성성”을 해치는 모든 “비정상적” 성행위를 처벌했다. 1933년 5월 6일 나치 선전부장 괴벨스(1897-1945)는 “동성애자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1937년 2월 나치 친위대 수장 힘러(Heinrich L Himmler, 1900-1945)는 동성애자의 숙청을 잡초 제거에 비유한 바 있다.

<1937년 나치 청소년 조직 히틀러 유겐트(Hitler Jugend) 복싱 캠프. 1922년부터 시작된 히틀러 유겐트는 게르만 민족의 번영을 이끌 남자 청소년들의 강인한 신체 단련을 특별히 강조했다./ 공공부문>

“중화민족”을 절대가치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중국공산당은 레닌주의 볼셰비키 정당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오히려 독일 제3제국 나치당과 유사한 점이 많다. 때문에 현재 중화 대륙에 몰아치는 새로운 문혁의 바람을 이해하기 위해선 중국공산당이 “계급” 노선을 버리고 “민족” 노선을 취한 근본 이유를 파헤쳐야만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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