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확장] '우리본말'과 재일조선식 사투리

김명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영화 <우리학교> 감독 2021. 10. 9. 0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명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영화 감독© 뉴스1

(서울=뉴스1) 김명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영화 <우리학교> 감독 =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의 성인식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의 성인식은 매년 1월 중순에 구청 등 관공서에서 지역의 성인이 된 청년들을 모아 개최된다. 재일조선인의 경우는 지역의 조선고급학교(조고) 졸업생들이 동포 유지와 부모들이 호텔 연회장을 빌려 개최한다. 그 해에도 전년도 졸업생들이 모였다. 여학생은 곱게 한복을 차려 입는다. 남학생은 최신 유행의 양복 차림이다. 왜 여자는 치마저고리, 남자는 양복이냐는 재일동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 (gender sensitivity)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하기로 하고, 여튼 졸업 후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생들, 그 가족과 친지, 지역 유지, 선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또 하나의 동포 잔치다.

조고 졸업생의 성인식에는 물론 일가 친척이 모이는데 이 칼럼의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재일조선인 가족의 복잡성으로 인해 다양한 성장배경을 가진 친척들이 모인다. 대부분이 조선학교 출신인 졸업생들을 축하하기 위해 어떤 청년이 마이크를 잡았다. 아마 어떤 동창생의 친척이리라. 그런데 아주 유창한 우리말이다. 게다가 한류 드라마에서나 들을 수 있는 유려한 한국말이 아닌가? 이 친구는 초중고를 일본학교만 다녔는데도 조선학교 졸업생들 앞에서 누구보다 유창한 우리말로 축하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한국에서 4년 유학생활을 했다 한다.

성인식이 끝난 후 뒤풀이가 이어지고 2차, 3차가 계속되었다. 일행과 함께 근처의 이자카야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인데 옆 자리에서 그 성인식에 참가한 듯한 동포들이 나누는 대화에 귀가 쫑긋했다. “민족학교 다녀봐야 소용없네, 한국에서 4년 유학하면 간단히 해결되니까” 자주 듣던 말이었다. 특히나 동포들에게서 그렇다. 재일 민족교육이 하고 있는 우리말 교육에 불만이 있는 동포들에게서 주로 듣는다.

재일조선인의 성인식 (출처=페이스북) © 뉴스1

오늘의 주제는 ‘재일조선인식 우리말’이다. 누군가는 찬사를 보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비판의 화살을 돌리는, 조선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온 ‘우리말’에 대한 고찰이다.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는 60분 테이프, 약 500개의 촬영본으로 편집한 영화다. 아무리 조선학교가 배경이라 해도 수업 외의 기숙사 등 일상 생활 촬영분이 대부분이라 일본말이 많이 등장할 수 밖에 없었다. 편집을 위해서는 녹취가 필수인데 이 영화의 경우에는 일본어 1급 실력자가 와도 녹취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함께 생활한 내가 500개 모두 녹취해야만 했다. 30대에 오십견으로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비밀은 바로 ‘우리본말’에 있다. ‘우리본말’은 ‘우리말’과 ‘일본말’의 조어다. 재일동포들 끼리 농담아닌 농담을 섞어 ‘재일조선인식 우리말’을 이렇게 부른다. 예를 들어보자. 가령 “선생님, 오늘 아침 드셨습니까?”를 “선생님, 쿄오(今日) 아침 드셨습니까?” 또는 “선생님, 오늘 아침 다베따(食べた)입니까?” 이렇게 조선말 문장에 일본어 단어를 섞어 쓰는 경우가 흔한 것이다. 이것을 편의상 ‘단어 바꿔치기’라고 해두자. 단어 바꿔치기 외에 또 하나의 경향은 ‘단순 직역’이 있다. “전화해 주실래요” 를 “전화해 받아도 좋습니까?” 라는 식으로 말한다. “~해 받아도 좋습니까?” 는 일본어의 “~させていただいてもよろしいでしょうか“를 그대로 직역하면 이렇게 된다. 그외에도 일본어에서 주로 쓰이는 문장 끝의 “~ね。”를 우리말에 사용한다. “그렇습니다네~”

일일히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니 재일조선인식 우리말에는 일본어 단어가 자주 섞이거나 지나치게 단순한 직역으로 인해 약간 어색한 우리말이 되기도 한다, 이것을 동포들은 냉소적 어감을 실어 ‘우리본말’이라 한다 정도로 알아두면 좋겠다. 그래서 녹음상태도 좋지 않은데 우리본말까지 들어가 아무리 일본어 능력자라도 녹취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게다가 일본어를 모어로 하는 3세, 4세 아이들이니 발음에서도 ‘김천해’ 인지 ‘김청해’ 인지, ‘태희’인지 ‘대휘’인지 헷갈릴 경우가 많다. 발음 문제까지 모두 포함해 일단 ‘우리본말’ 또는 ‘재일조선인식 우리말’이라고 해두자.

최근 ‘조선학교의 교육사’를 집필한 오영호 교수에 따르면 이 현상은 조선학교의 초창기에 해당하는 1950년대에 이미 국어 교원들의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재일동포 2세가 학생의 대부분이었던 당시에도 태어나 자란 일본사회의 영향은 ‘말’에도 깊숙히 스며들 수 밖에 없었다. 식민지주의 극복을 위한 조선학교 교육이니 이 문제는 심각한 고민거리였다. 국어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바르고 고운 우리말’을 심어주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고 한다. 냉전과 분단은 이 ‘바르고 고운 우리말’을 전하기 위한 필수 요소인 고국과의 소통을 어렵게 했고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재일조선인 2세 역사학자 오영호 교수의 <조선학교의 교육사> 이 책에는 교육 담당자들의 고민과 그 해결책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 뉴스1

2000년대 들어 한일 문화교류의 증대, 한류 문화의 침투는 ‘조선학교의 우리말 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외부적인 요소가 되었다. 한류 드라마와 K팝의 영향은 일본에서 유행하는 ‘한국어’와 ‘재일조선인식 우리말’을 저울 위에 놓고 비교하게 했고, 결국 비판의 화살은 ‘조선학교의 우리말 교육’으로 향했다. 조선학교냐 일본학교냐의 두가지 선택지 중에서 ‘일본학교’에 마음이 가는 동포에게 ‘조선학교의 우리말로는 통하지 않는다’와 ‘조선학교 졸업해도 재일조선인식 우리말 밖에 못한다’는 논리는, 납치문제로 악화된 여론과 더불어 조선학교 입학을 거부하는 하나의 핑계거리로 기능했다. 이것은 입학 대기 아동을 둔 재일조선인 보호자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이미 조선학생을 자녀로 둔 보호자의 경우도 조선학교의 교육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마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런 비판에 대한 대항 논리는 얼마든지 있다. 우선 어디까지나 조선학교에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 주로 일본이라는 특수한 지역 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평범한 일본인은 오히려 비판보다는 찬사를 늘어 놓지만)의 논리라는 것이다. 눈을 들어 지구 여기저기를 한번쯤 훑어보자. 어디 한군데라도 조선학교와 비슷한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지역을 찾아볼 수 있을까? 단호히 말해서 없다. 구 식민지 종주국에서 끊임없이 배제와 차별에 경험하면서도 76년 동안 유·초·중·고,대학까지 정연한 민족교육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기관, 단체가 있는가? 단연코 조선학교가 유일하다. 인류가 이룬 최고의 문화유산이라 해도 시원찮을 존재를 유일하게 일본사회만이 배제, 소외, 차별하고 국가기관과 언론미디어, 지식인 사회, 시민 사회가 똘똘 뭉쳐 ‘없는 존재’로 만들려 한다. 그러니 그 속에 사는 동포들의 ‘우리학교’에 대한 시선이 불안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없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재일조선인식 우리말’은 우리말(조선어, 한국어)의 사투리 중에 하나다. 이것을 억지 논리로 보면 곤란하다. 이미 700만명의 재외동포가 지구상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고 있고 그들의 우리말은 그 나라,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변모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고정된 어떤 것으로 보는 오류를 범하지 말자. 재미동포가 서울 표준어를 서울 사람만큼 유창하게 할 수 없는 것은 2세, 3세의 경우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도 한국에서 유학도 하고 자주 사용하기도 하면서 서울 사람들과 자유로이 소통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한국 서울 사람들이 듣기에 완벽하다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원래 표준어의 정의가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하는데 ‘조선학교의 우리말 교육이 틀렸다’는 논리는 부산 사람들이 쓰는 우리말이 틀렸다고 하는 것과 같은 논리가 된다. 그래서 당연히 재일조선인식 우리말은 재일조선인의 우리말 ‘사투리’라고 하는 것이다. 한번도 부산에 와보지 못한 서울 사람이 처음 부산에 와서 ‘외국’에 온 듯했다는 경험담은 똑같이 재일조선인 사회에도 해당된다. 재일조선인에게 한류 드라마나 서울 사람과 똑같이 우리말을 하라는 것은 불가능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편 ‘조선학교의 우리말 교육은 틀렸다’는 논리는 상대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는 교육 수혜자의 우리말 실력을 ‘교육 방식’의 오류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 학생 개인의 자질, 성향에 따라 우리말에 특출난 능력을 보이는 학생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는게 당연하다.

전반적으로 조선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우리말 수준이 떨어진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힘들다.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네이티브인 우리가 부끄러운 측면이 더 많다. 대표적인 예가 ‘글쓰기’이다. 주로 초등학생의 경우에 나타나는 특징인데 우선 글씨가 너무 예쁘고 거기다가 정성들여 쓴다. 마치 인쇄한 것 같이 고운 글씨를 자주 본다. 조선학생이나 조선학교를 졸업한 재일조선인에게 손편지를 받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다. 대체로 조선초급학생의 경우 ‘단어 바꿔치기’나 ‘순수한 직역’도 거의 없다고 보면 되겠다. 비교적 교정하기 쉬운 어린 시절에 우리말의 단단한 기초를 세우기 위해 초급학교 국어교원이 큰 역할을 한다. 이것이 중,고,대학을 거치면서 개인적인 편차가 발생해 가는 것이다.

글쓰기와 달리 말하기는 조금 다른 영역이라 할수 있다. 말하기는 특히나 그 지역, 문화,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재일조선인의 경우 그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말의 영향이 강할 수 밖에 없다. 어른들의 영향이다. 그러니 어떤 어른이 ‘조선학교의 우리말, 우리본말은 틀렸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말 버릇을 돌아 보아야 한다.

이처럼 재일조선인 내부의 ‘재일조선인식 우리말’ 비판은 사실 조선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자신들의 세대에 적용할 수 있는 비판이다. 어디까지나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므로 그 영향을 ‘말’도 강하게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백번을 노력해도 부산 사람들은 부산 사투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부산 사람이 서울에서 10년, 20년 살게 되면 서울식으로 변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부산 토박이는 이를 두고 서울말로 변했다 하고 서울 사람은 애매한 서울말이라 한다. 이를 두고 부산의 국어교육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은 ‘우리말’만으로 그 중요성을 따질 수 없다. 우리말 교육을 통해 무엇을 새 세대 재일조선인에게 주고자 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소년단, 조고위원회, 학예회, 중앙체육대회, 예술경연대회, 소조활동, 수업, 선생님과의 관계, 전국대회진출, 운동회, 졸업식, 조국방문 등등 조선학교에서 1년 내내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 활동을 통해 ‘일본 땅에서 조선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한 인간을 육성하는 것이다. 이것을 4년의 한국 유학생활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오산이다.

어느 K팝 좋아하는 조선학생에게 물었다. “왜 K팝이 좋아? 일본 J팝과 어떻게 달라?” 나의 우문에 그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우리말 가사가 참 곱습니다”

우리말 사랑에 있어서 한국의 국어교육은 조선학교를 따라가지 못한다. (물론 단어바꿔치기나 단순 직역 문제는 ‘한계’이며 분명 극복해야 할 문제다. 재일동포 어른들부터 실천하자)

2007년에 찍은 어느 조선학교 교실. ‘말이자 곧 민족이다’라는 표어가 선명하다.© 뉴스1

sseol@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