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아내가 바람·빗물로 내게 용기내라 말해요"
"한글 진작 배웠다면 용기내어 병원에 아내 일찍 데려갔을텐데"
주머니엔 아내가 쓰던 휴대폰 "보고싶을 때마다 열어보죠"

“글 모르는 날 대신해/ 모든 일 앞장서주며/ 남편 기 살려준다고/ 싫은 소리 한 마디 안 하던/ 천사 같은 내 집사람.”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청 별관의 성인 문해교육 기관 ‘늘푸름학교’에서 만난 김종원(69)씨는 사별한 아내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이 시(詩)는 세상을 떠난 아내를 위해 지난 5월 김씨가 쓴 것이다. 최근 이 학교에서 한글을 뗀 덕분이다. “글을 몰라 평생 집사람을 힘들게 했어요. 내가 글씨를 배웠다면 용기있게 병원에도 일찍 데려갔을 텐데…. 갔을 땐 이미 암이 다른 부위로 전이가 된 뒤였어요.”
그는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충남 금산의 큰아버지 집에 맡겨졌다고 한다. 학교에는 보내주지 않고 농사일만 시켜 열 살 때 집을 나왔고, 대전에서 장사를 하다 자동차 정비소에 취직했다. 글을 몰라 부품을 주문할 때면 부하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그래도 평생을 손재주 좋은 정비공으로 살았다. 45년을 함께한 아내는 김씨의 ‘눈[目]’과 같았다. 그런 아내가 덜컥 갑상선암에 걸렸고 10년을 투병하다 결국 2018년 세상을 떠났다.
“내가 글을 모르니 평생 집안일이며 아이들 학교며 집사람이 다 했어요. 그래도 글씨 모른다고 한 번도 뭐라고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 사람이 세상을 떠나니까, 혼자 간판을 읽지 못해 어디도 못 가고 캄캄한 세상에 놓인 것 같더라고요.” 우울 증세가 찾아와 다니던 자동차 정비소도 그만뒀다. 아내의 납골당에 가는 것 외엔 집 밖에도 잘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한글을 배우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2019년이었다. 아들과 함께 구청에 업무를 보러 갔다가 ‘글을 무료로 가르쳐 주는 곳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집사람 살아 있을 때 ‘나 퇴직하면 어디 학원이라도 다니면서 같이 글공부하자’고 약속한 게 생각났어요. 그 약속을 지금이라도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영등포구청이 운영하는 늘푸름학교에 입학했고, 현재 초등학교 고학년에 해당하는 3단계 과정을 다니고 있다. ‘아내를 잊지 않겠다’며 생전 아내가 쓰던 스마트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등교하는 김씨에게 학교 선생님이 ‘시를 한번 써보시라’고 권유했다. 뒤늦게 배운 한글로 ‘하늘나라 집사람에게’란 시를 썼다. “하늘나라 집사람이 매일 바람 되고 빗물 되어 나에게 용기 내라 말합니다”라는 내용이다. 하늘의 아내가 그를 내려다보며 빙긋이 웃는 그림도 그렸다. 그는 “집사람 얼굴과 똑같이 그리고 싶어서 한 달 넘게 30번 이상 고쳐가며 그렸다”고 했다.
김씨는 이 시화로 지난달 교육부가 주최한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아내의 납골당으로 달려가 “나 글공부하는데 상도 받았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늘푸름학교의 초등·중등 교육 과정 6개 반에는 현재 김씨를 비롯해 118명의 ‘어르신 학생’이 있다. 2019년까지는 수업당 30명씩 180명이 거의 꽉 찼지만 코로나 때문에 수강자가 대폭 줄었다고 한다. 서울시에는 이 같은 성인 문해교육 기관이 70곳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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