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스타벅스에서 생긴 일

양선희 2021. 10. 9.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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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언젠가 “스타벅스에서 알바라도 하면 사촌의 친구까지 부러워한다”는 말을 들었다. 알바하다가도 쉽게 정규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매달 한 번씩 직원에게 원두를 주고 무료 음료 쿠폰을 주는 등의 부수적 요인들이 더 젊은이들의 마음을 끄는 거로 보였다. 스타벅스에 대한 선망이 알바 자리마저도 더 빛나 보이도록 하는 효과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벅스는 우리나라의 국내외 기업 중 고용과 관련해선 모범적 기업으로 꼽힌다. 그들이 파트너라고 부르는 1만8000여 명의 매장 근로자가 거의 정규직이라는 점은 실제로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사례다. 장애인 고용, 경단녀 고용 프로젝트 등 정부의 고용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작년엔 정부에서 일자리 유공 표창을 받기도 했다.

「 마케팅으로 촉발된 스타벅스 갈등
잠재됐던 직무별 정규직 불만 폭발
임금 대비 적정한 업무량 부과하고
이익 공유 및 보상 시스템 도입해야

이렇게 ‘고용 모범 기업’으로 알려진 스타벅스에서 요 며칠간 일어난 파트너들의 집단 반발은, 그래서 상당히 놀라웠다. 한 직장인 익명 게시판에 지난주 마케팅 행사였던 ‘리유저블 컵 데이’ 따른 과도한 업무에 대해 올린 한 매장 근로자의 호소에서 시작해 사태가 점점 진전되더니 아예 SNS 커뮤니티에서 집단행동을 결의하고, 모금까지 했단다. 회사가 파트너를 소모품 취급한다는 불만이 제기됐고, 처우 개선과 과도한 마케팅 지양 등을 요구하며 ‘트럭 시위’를 벌였다.

스타벅스의 ‘굿즈 마케팅 이벤트’가 지나치다는 건 누구나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러니 이를 진행하는 현장 근로자들이 얼마나 고달플지도 짐작이 간다. 그렇다 해도 집단행동에 나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노조가 있어도 쉽게 결의되지 않는다. 한데 노조도 없는 이 회사 근로자들이 이 정도로 뜻을 모은 건 분명히 뭔가 내적 문제가 곪아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그래서 노동과 인사 문제 전문가들에게 문제가 무엇으로 보이는지 물었다. 회사와 직원들의 입장은 여러 경로로 보도되었지만, 어쩌면 이건 업무과다 같은 개별적 문제보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뜻밖에도 전문가들의 관점은 극단으로 엇갈렸다.

선데이 칼럼 10/9
#기업들이 정규직화를 꺼리는 게 바로 이런 사태를 우려해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기존에 알바나 계약직으로 쓰던 직무를 정규직처럼 고용 보장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배려’로 보아야 한다. 근로자들도 직무별 정규직과 일반 정규직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차별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요즘 시급이 높아지면서 편의점 알바 자리는 인기가 많다. 그런데 일이 몰리는 편의점의 경우 시급을 50% 이상 올려줘도 알바를 구하기 힘들다. 힘든 일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서비스 업체는 마케팅 없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직원들이 고통 분담을 하려는 태도도 중요하다.

#스타벅스의 정규직화는 배려가 아니다. 이 회사는 직영점만 1600개 가깝고, 연 매출이 2조 원대다. 서비스업에선 수시로 사람이 바뀌는 게 더 문제다. 쿠팡도 정규직을 더 확보하려고 애쓰고 있을 만큼 안정된 인원이 확보돼야 하는 곳이 이런 서비스업이다. 실제로 직무별 정규직의 경우 근무 형태나 임금이 알바보다 나을 건 없다. 스타벅스는 시급 9000원 안팎을 받는 직원이 대다수이고, 월급은 100만 원대가 주류로 알려져 있다. 투잡을 뛰지 않고 생활이 되겠는가. 그런데도 회사는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자기 직무 외에도 이벤트까지 과도한 업무를 부과한다. 업무의 양이 시급에 적정한 것인지 계산해야 하는데 그런 개념이 없다. 이 시대 청년들은 ‘N잡러’라고 할 만큼 여러 가지 일을 해야 생활이 가능하다. 힘을 비축하는 게 생존 조건이다. 힘든 일엔 그에 합당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노사 간 기대가 서로 다르다. 근로자는 직장을 통해 생활의 안정을 원하지만, 스타벅스 수준의 임금으론 불가능하다. 반면 회사는 정규직엔 애사심 같은 로열티를 기대하면서 과도한 업무를 떠넘긴다. 스타벅스 직원들의 게시물 중엔 회사가 직원을 소모품으로 취급한다거나 말로만 때우는 이중성을 지적하는 대목이 많았다. 지난해 1600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낸 데는 각종 이벤트에 동원된 근로자의 역할이 컸을 텐데도 적절한 보상이 없었다. 회사는 계속 부자가 되는데 근로자는 생활이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한다면 좌절할 수밖에 없다.

스타벅스 현상은 회사와 직원들의 이해(利害)와 이해(理解)가 엇갈리는 지점에서 폭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엇갈림이 스타벅스만의 일일까. 나는 평생고용제에서 연봉제 혹은 고용의 다양화로 넘어가는 시절부터 현장기자로 기업을 취재했다. 이 양대 시대를 가르는 일종의 ‘정서변화’를 꼽으라면, 회사가 직원을 보는 눈과 직원이 회사에 갖는 애정의 온도가 확 떨어졌다는 점이다. ‘애사심’은 구시대적 정서가 됐다.

연봉제 이후 많이 받는 직원은 ‘내가 잘해서’이고, 적게 받는 사람은 ‘회사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서’라고 했다. 원래 충성심이란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 같은 존재를 향해 생기는 것이다. 보호보다 효율을 선택한 기업에 충성심이 일어나지 않는 건 어쩌면 인지상정이다. 기업도 직원에게 효율만큼 보상하고, 손님처럼 깍듯하게 존중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는다면 스타벅스 같은 부닥침은 도처에서 벌어질지도 모른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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