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別曲] [160] 노예근성의 어용(御用) 지식인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2021. 10. 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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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소양(素養)이 필요하다. 급히 만들어지는 재능이 아니라 천천히 갈고 닦아 쌓는 교양이다. 그 점에서 중국의 유가(儒家)는 일찍이 육예(六藝)를 내세웠다. 예절[禮], 음악[樂], 활쏘기[射], 말타기[御], 글씨[書], 셈[數]이다.

그 나름대로 균형을 중시한 구성이다. 이 가운데 ‘어(御)’는 말이나 수레를 모는 능력이다. 요즘말로 치면 운전면허증이라고 해도 좋을까. 아무튼 이 글자의 처음 꼴은 사람이 채찍을 든 채 어딘가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거기서 발전한 뜻은 말타기, 또는 수레 몰기다. 그러나 언제부턴가는 남을 지배하거나 거느린다는 뜻이 점차 뚜렷해진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억조창생(億兆蒼生)의 머리에 올라앉은 최고 권력자 ‘임금’의 뜻도 얻는다.

/일러스트=이철원

따라서 어용(御用)이라고 하면 임금이 만들거나 사용하는 그 무엇, 또는 그런 상태다. 임금이 직접 만들었다는 뜻의 어제(御製)라고 적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군왕이 적은 글 어필(御筆), 그가 내린 명령 어명(御命), 임금의 초상화 어진(御眞) 등이 그렇다.

궁궐 최고 권력자가 사용하는 물건이나 인재 등이라서 ‘어용’은 때로 최고 수준의 그 무엇인가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권력의 명령에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사람 처지라면 ‘노예’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현대에 들어오면 이 말 쓰임새는 퍽 밝지 않다.

요즘 내로라하는 중국·홍콩 영화감독들을 보면 황제의 발밑을 기는 ‘어용 지식인’ 모습이 떠오른다. 6·25전쟁을 소재로 한 ‘금성 대전투’ ‘장진호’ 등 사실관계를 아예 도외시한 체제 찬양 영화 제작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노예 근성의 어용 지식만이 횡행하니 문명의 뒷걸음질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마음 밝은 중국인이 있어 새 버전 ‘육예’를 만든다면, ‘홀로서기’ 항목을 꼭 넣어야 좋지 않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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