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뜰 안 그린 80점.. 心情을 화폭에 담다
달밤에 뛰어보고 싶다
계절이 변하는구나..
만나는 '순간'을 포착
도미 초기엔 '주경야독'
어두운밤 배경 작품 많아
자유 만끽 여자들 묘사
여성주의 미술사 한 획
남편과 모교 144억 기부
이름 딴 단과대학 생겨
서울시 강남구 가로수길에 있는 예화랑에서 재미화가 김원숙(68)의 개인전 ‘인 더 가든(In The Garden)’이 열리고 있다. 회화와 조각 작품 약 80점을 선보인다.
김원숙은 ‘감성’이나 ‘느낌’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인생의 크고 작은 국면과 순간에 마주하는 심정들을 자신만의 독특한 선과 색감으로 표현해온 작가다.
1970년대 홍익대 서양화과를 다니던 중, 한국 교육 방식에 갈증을 느끼던 그는 2학년 때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을 마치고선 졸업하고 ‘귀국해 결혼이나 하라’는 아버지 말에 반발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작은 상을 받았을 때, ‘이걸 뻥튀기해서 집에 말하면 여기 눌러 앉아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겠지!’ 하는 생각부터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어떤 ‘운동’도 ‘이즘’(사상)도 추구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오히려 어디에 ‘가담’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며 “인생을 그려온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예술도 삶보다 중요하지는 않다고 말하는 화가다. 그는 “예술은 열심히 살고 나면 생기는 부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번 전시에 대해서도 관통하는 주제를 묻는 질문에 “없다. 그저 언제나 그랬듯 나의 일상”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적은 작가노트에서 “삶의 뜰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느낌들을 그려내는 것이다. 희망과 절망, 즐거움과 안타까움들이 따뜻함과 겸허함으로 그려지고 빚어진다. 나의 뜰 안에는 여러 문화, 다른 삶의 경험들이 모두 풍요로운 그림거리가 되어 끝없이 이어지는 재미난 작업들로 가득하다”고 썼다. 전시장에서는 기자에게 “가슴이 우리의 뜰 안이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뜻은 이번 전시의 제목 ‘뜰 안(In The Garden)’에 그렇게 압축됐다.
50년 화업을 쌓는 동안 김원숙의 그림 속 주인공도 그의 인생을 따라 변했다. 방황하는 소녀에서 홀로 세상을 마주한 한 여성으로 나아갔고, 이어 중년의 부부로, 이어 노년의 부부로 흘러왔다.
이번 전시는 미국에 ‘김원숙 미대(Kim Won Sook College of Fine Art)’가 생긴 뒤, 처음으로 귀국해 여는 기념 전시이기도 하다.
김 화백은 2019년 남편 토머스 클레멘트 씨와 함께 모교인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ISU)에 1200만달러(약 144억원)를 기부했다. 학교 측은 예술대학에 이 졸업생의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미국 단과대학에 한국인 이름이 붙은 첫 사례라는 설명이다.
한국전쟁이 낳은 혼혈의 고아였던 남편이 발명가로 성공한 뒤 거액의 돈이 생겼는데 그것이 기쁘기보단 두려워 기부했다고 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김 화백은 “미국에 유학 와 장학금 받으며 학교를 다녀 받은 게 참 많았다. 돌려주는 문화가 우리에겐 잘 없는데 그런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실감할 수 없는 큰 돈이 생기니 재앙이 몰려오는 것처럼 두렵더라”고 기부한 뜻을 말했다.
30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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