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밥 딜런..예측 깬 노벨문학상 수상자들

서정원 2021. 10. 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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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역사 문학상 이모저모
수상자 117명 중 여성은 16명
언어는 영어-불어-독일어 순
사르트르·파스테르나크는 거부
한트케 수상땐 반대 시위 거세
해마다 10월이면 전 세계 문인들의 시선은 스웨덴 한림원으로 모인다. 전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알리기 때문이다. 인류사에 길이 남을 대문호들도 수상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 탓에 노벨문학상 무용론이 제기되는가 하면, 언어·성별·지역적으로 편향됐다는 지적도 있지만, 여전히 상의 권위는 굳건하다. 시대정신의 총화이자 인류의 지성을 가장 근사적으로 계측할 수 있는 도구로써다.
발표에 앞서 수많은 호사가와 도박사들이 수상자를 예측하지만, 대개는 빗나가곤 한다. 꽃이 피더라도 과실을 수확하는 데까진 시차가 있듯이 지금 유명하진 않더라도 이제껏 인류 정신의 토양을 비옥하게 한 수많은 거장도 후보군에 포함되는 터다. 미국 시인 루이스 글릭의 경우 2020년 수상 전까지 그를 수상자로 꼽는 이는 드물었다. 그럼에도 일단 발표가 되면 문학성에는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거의 없을 만큼 상은 적확하게 세계 문학의 밀알들을 가리켜왔다. 그간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을 톺으며 이제껏 문학이 담지해온 당대를 살펴봤다.

가장 특징적인 건 성비다. 노벨상이 시작된 1901년부터 2020년까지 수상자 117명 중 여성은 16명에 그친다. 전체에서 단 13% 수준이다. 여성이 사회 전반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시대였고 문학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이 나타났다. 첫 여성 수상자는 1909년 스웨덴의 아동문학작가 셀마 오틸리아나 로비사 라겔뢰프였고, 이후 17년이 지난 1926년에서야 이탈리아 소설가 그라치아 델레다가 상을 받았다.

스웨덴 시인 넬리 작스가 1966년 수상한 이후 1970~1980년대엔 여성 수상자가 없었다. 1991년에 이르러서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소설가 네이딘 고디머가 받았다. 점점 더 성적으로 평등해지는 2000년대 이후부터는 수상 비율도 높아진다. 2010년대 수상자만 앨리스 먼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올가 토카르추크로 3명이다. 다만 2020년까지 여성이 2년 연속으로 수상한 사례는 없다. 언어별 수상자로는 영어권이 30명으로 압도적 우세를 보이는 가운데, 독일어·프랑스어(14명) 등이 뒤를 잇는다. 무엇을 문학으로 볼지에 대해서 한림원의 기준은 꽤 관대했다. 1953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수상한 게 대표적이다. 한림원은 처칠에게 시상하며 "인간의 고귀한 가치를 훌륭하게 옹호했고, 역사적·전기(傳記)적 기술에서 탁월한 묘사를 보였다"고 했다. 2016년 미국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에게 상을 주면서는 "미국의 위대한 음악적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만들어냈다"고 평했다.

영예로운 수상자로 발표됐지만 수상을 거부한 경우도 있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는 1964년 수상자로 발표됐지만 자의로 수상을 거부했다. "작가는 스스로 체제가 되는 것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그는 모든 공적인 훈장과 명예를 거부한다고 일찍이 밝히며 프랑스의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도 거부했다.

1958년 수상자로 호명된 소련 소설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상을 거부한 사례다.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소련작가동맹이 그를 제명하고, 소련 정부도 그를 추방하겠다고 협박했다. 그의 소설 '닥터 지바고'가 러시아 혁명을 왜곡하고 비방했다는 이유에서다.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 혁명기 혼란 속에 방황하는 주인공 유리 지바고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결국 파스테르나크는 "조국을 떠나는 것은 내게 죽음과 같다"는 탄원서를 전하고 노벨상 수상을 거부했다. 1989년에 이르러서야 그의 아들 예프게니 파스테르나크가 대리 수상했다.

2019년 수상자인 오스트리아 극작가 페터 한트케를 두고서는 수상 철회 요구도 있었다. '발칸의 도살자'로 불리며 인종청소를 벌였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을 옹호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전범 재판을 기다리며 구금돼 있다 2006년 숨진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었고, 같은해 인터뷰에서 "밀로셰비치는 영웅이 아니고 비극적인 인간"이라고 까지 말했다. '인종청소' 피해 지역 가운데 하나인 보스니아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어떨까.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무라카미 하루키, 마거릿 애트우드, 앤 카슨, 아니 에르노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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