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휴심정] 박성훈의 브루더호프 이야기]
점심 식사후 우편실에 가보니 이곳 초등학교 5-6학년 여자 아이들이 우리 부부에게 작은 편지 한장을 보내 왔습니다.
“… 요즈음 저희 반에서는 아시아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요. 한국에 대해서도 알고 싶은 것이 많은데 혹시 우리에게 부채춤을 가르쳐 줄 수 없나요? 우리가 배울 수 만 있다면 정말 신이 날 것 같아요…”
부채춤이라… 사실 나도 아내도 한국에서 텔레비전에서 부채춤을 추는 것을 보기만 했지 한번도 쳐 본적이 없는데 공동체에 오니 이 곳 형제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한국에 대해 자주 물어보고 한국 문화에 대해 알려 달라고 하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한국 홍보 대사가 되었네요. 아내는 인터넷에서 유치원 재롱잔치 부채춤과 부채춤 동작을 하나 하나 가르쳐 주는 동영상을 찾아내 이곳 아이들에게 맞게 안무를 만듭니다. 아내가 부채춤을 여자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사이 이곳 5-6학년을 담당하는 선생님에게서 아이들에게 한국에 대해 소개하는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저도 아이들에게 무엇을 소개해야 할지 고민하며 아내와 함께 자료를 만듭니다.
5-6학년 교실에 들어가니 클라이 선생님과 마타 선생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습니다. 보통 브루더호프 공동체 학교에서는 두 학년이 한 그룹을 이루고 남자 선생님과 여자 선생님이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곳 5-6학년반은 여자아이 4명 남자아이 8명으로 구성된 아주 활기찬 반입니다.
아이들에게 파워포인트로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아이들이 한국에 대해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이곳 아이들이 살고 있는 뉴욕과 한국을 비교하며 설명합니다. 뉴욕은 북한 땅과 크기가 비슷하고, 남한 보다는 약간 커서 한반도 전체가 뉴욕의 두 배정도 되는 면적이지만 뉴욕이 2천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반면 한반도 전체는 7천 5백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로 그래서 우리 가족은 해산물을 아주 좋아하고 한국 땅은 70%가 산이어서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산을 좋아해 일요일날 이 근처 캣츠킬 산이나 미네워스카 산에 가면 우리가 한국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하니 한국에 대한 지리 공부가 쏙쏙 들어옵니다.
뉴욕과 한국은 위도가 비슷해 나무와 꽃들, 과일들도 비슷하고 4계절이 뚜렷한 것도 비슷한데 진달래로 덮힌 고려산과 샛노란 은행 나무가 즐비하게 서 있는 가로수, 높은 봉우리가 펼쳐진 푸르른 산등 한국의 4계절을 보여주는 사진을 보여주자 아이들 입에서 와! 하며 함성이 터집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불고기, 김밥, 잡채, 김치등의 사진을 보여주자 여기 저기서 먹어 본 적 있다며 정말 맛있다고 군침들을 흘립니다.
우리 선조들의 슬기를 보여주는 온돌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에서 B.C 5000년 전에 세계 처음으로 사용한 난방 방식이라며 온돌의 원리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온들은 서양의 난방 방식에 비해 열 효율성이 높고, 소음이 없고, 공간 차지가 없어 근래에 와서는 서양의 프랭크 라이트라는 사람이 한국의 온돌 방식을 재발견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아주 인기 있는 난방 방식이 되었다고 하자 정말 쿨하다며 감탄의 소리가 여기 저기서 흘러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소개하는 짧은 동영상을 보여줍니다. 긴 리본을 흔들며 상고 춤을 추는 장면, 곳곳의 아름다운 강산들… 아이들의 탄성은 끝이 없고 아이들의 맑고 순수하고 활기찬 반응에 내 마음도 동화되어 즐겁기만 합니다.
한국을 소개하는 시간이 끝나자 아내가 아이들에게 젓가락을 하나씩 나누어 줍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곳 사람들과 달리 젓가락을 사용한다며 접시에 고래밥 과자를 펼쳐 놓고는 한국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물고기 과자라며 젓가락만 사용해서 낚시하라고 하니 아이들이 신나서 열심히 젓가락 낚시질을 합니다. 젓가락질을 어떻게 하는지 서로 가르쳐 주기도 하고, 해도 해도 안되는 아이는 꼬챙이 꽂듯 젓가락 끝을 찔러 먹는 아이도 있고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참 즐겁습니다. 고래밥이 금새 떨어지자 홈런볼 과자도 놓으니 맛있다며 이것도 금새 없어지고 말았네요.
아이들에게 한국 아이들의 전통 놀이인 제기차기, 연놀이, 널뛰기, 투호놀이 등을 사진으로 보여 주며 놀이 도구들을 당장 구할 수가 없어 직접 해보지 못해 안타까웠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저희가 아니지요. 아무 도구도 필요 없고 사람만 필요한 “우리 집에 왜 왔니”가 있기 때문이죠.
아내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설명해 주고 아이들을 두 편으로 나눕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을 찾으러 왔느냐 왔느냐”
“마이클 꽃을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가위 바위 보!”
“와 ~ ”하며 커다란 함성 소리와 함께 가위 바위 보에 진 아이가 다른 편으로 넘어 갑니다. 다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며 상대 편에 진격하고 다시 받아치기를 반복하며 가위 바위 보 대결이 끝이 없고 아이들 고함소리에 교실이 떠나갈 것만 같자 밖에서 지나가던 선생님들이 도대체 무슨 게임을 하길래 저렇게 아이들이 신이 났냐며 궁금해 합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로 한창 고무되어 있는 아이들을 진정시켜며 이번에는 “꼬마야 꼬마야” 놀이를 소개하며 긴 동아줄을 가져와 선생님 두 분께 돌리게 합니다.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꼬마야 꼬마야 땅을 짚어라,
꼬마야 꼬마야 만세를 불러라, 꼬마야 꼬마야 잘 가거라.”
긴 동아줄 밑으로 들어가 팔짝 팔짝 줄 위를 뛰어 넘기며 뒤를 돌고 땅을 짚고 만세도 부르고 다시 줄 밖으로 나오는데 끝까지 해내기가 쉽지 않네요. 드디어 크리스틴이 끝까지 성공하자 모두 박수를 치며 자신들도 재도전 하는 모습이 참 대견합니다. 꼬마야 꼬마야로 오늘의 한국 문화 체험 학습이 모두 끝났습니다. 교실 문을 열고 나오니 뒤에서 야곱이 따라 나옵니다.
“오늘 너무 재미 있었어요. 정말 감사해요.“
야곱의 인사에 내 마음도 아주 행복해 졌는데 다음날 길을 가는데 같은 반인 쿠퍼가 나를 보더니 어제는 너무 즐거웠다며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어제 일을 생각하며 즐거워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자 저도 다시금 즐거워집니다.
얼마 후 5-6학년 선생님에게서 또 연락이 왔습니다. 그동안 아시아에 대해 배운 것과 춤, 그리고 아시아 음식을 만들어 부모들을 초대하는 행사를 하려고 하는데 저희 부부에게 아이들과 함께 한국 음식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거니 거절할 수가 있나요? 그래서 오늘 아이들과 만들 음식은 김밥 그리고 군만두입니다. 아침부터 아이들과 열심히 재료를 씻고 자르고 해서 김밥 만들 준비를 끝내고 오후에는 아이들이 번갈아 가며 김밥을 맙니다. 한사람에 4줄씩 김밥을 싸는데 먼저 김밥을 싼 아이들이 다음 아이들 차례가 오자 어떻게 하는지 열심히 가르쳐 줍니다. 김밥 싸는 것이 재미 있는지 자기 몫이 끝난 아이들이 김밥을 더 싸고 싶다고 선생님께 간청하는 모습이 내심 흐믓하기만 합니다. 주방 한 쪽에는 인도에 오래 사셨던 수잔 할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인도 카레를 열심히 만들고 계십니다.
몇몇 아이들은 부모님을 맞을 준비를 위해 동양화와 한복, 부채 등으로 벽을 장식하기에 바쁩니다. 드디어 오후 3시 하나 둘씩 아이들 부모님들이 오셨습니다. 벽 쪽으로 부모님들을 위한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 쪽에는 김밥과 만두와 과일들이, 반대편에는 카레를 비롯한 동남 아시아 음식들이 놓여 있습니다. 전기 후라이팬에 군만두를 굽는 데이비스가 열심히 외칩니다.
“여기 한국산 만두가 왔어요. 정말 맛있어요. 꼭 드셔보세요. 안 먹으면 진짜 후회하실 거예요.”
열심히 만두를 선전하는 데이비스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데이비스의 신나는 영업 전략으로 군만두가 동이 나고 말았네요.
함께 맛있게 아시아 음식을 먹고 나자 아이들이 그동안 아시아에 대해 배운 것을 부모들에게 발표하고 나서 동남 아시아에서 긴 막대를 이용해 추는 춤을 선보입니다. 이 춤은 벼농사를 할 때 추는 춤으로 두 사람이 양 쪽에서 두개의 긴 막대를 붙들고 계속 부딪히면 두 명의 아이들이 막대 사이를 오가며 춤을 춥니다. 막대기가 부딪히는 소리에 참새들을 쫒아 버리는 춤이라고 하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막대기를 이리저리 오가며 신나게 춤을 추는 아이들에 모습에 함께 모인 부모들도 신이 납니다.
긴 막대기 춤이 끝나자 이젠 그동안 열심히 부채춤을 준비한 여자 아이들의 차례입니다. ‘홀로 아리랑’ 음악이 흘러 나오자 머리를 하나로 땋아 빨간 리본으로 댕기를 매고 한복이 없는 지라 하얀 드레스에 빨간 리본으로 고름처럼 묶고 부채를 들고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홀로 아리랑 음악에 맞쳐 부채를 올렸다 내렸다, 원을 만들어 돌기도 하고 산과 계곡을 만들고 파도도 타고 마지막엔 다 함께 꽃을 만들어 한바퀴 도는데 가슴이 찡해 오면서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힙니다. 아이들의 부채춤 공연이 끝나자 박수 소리가 끝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한 춤을 부모들만 보기엔 아까워 며칠 후 공동체 전체가 모이는 모임에서 아이들이 다시 춤을 추었습니다. 모두들 아이들 춤에 환호합니다. 그 날 이후 몇 몇 사람들이 제게 와서는 아이들이 홀로 아리랑으로 부채춤을 추는데 마지막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제 친구 데릭은 그날 머릿속에서 하루 종일 아리랑 노래가 맴돌았다고 하네요.
작년에 한국 전쟁 70년을 맞으면서 이곳 형제 자매들에게 영화 ‘국제시장’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자 저와 같이 일하는 로버트가 제게 찾아 왔습니다. 이 형제는 평상시 별로 말이 없는 친구였는데 제게 와서는 어제 영화 보는 내내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대니 할아버지와 다비드 할아버지는 영화를 생각하며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전해 주셨습니다. 많은 형제 자매들이 제게 찾아와 한국이 이렇게 고통을 많이 받은 줄 몰랐다며 한국을 생각하며 기도하겠다고 합니다. 7-8학년 선생님도 오셔서 너무 파워풀한 영화였다며 우리 아이들도 함께 볼 수 있어서 너무 귀한 시간이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사실 저도 이 영화를 이곳 형제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대여섯번을 봤는데 그 때마다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이라 당연한 것이지만 이곳 형제 자매들이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하려는 마음이 느껴지면서 ‘홀로 아리랑’의 노래의 마지막 가사처럼 이제는 더 이상 홀로 아리랑이 아니라 형제 자매들과 함께 손잡고 가는 아리랑이 되었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다시 가보자
글 박성훈/ 부르더호프 공동체 형제. 미국 메이플릿지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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