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발] '상위 12%'의 눈에 비친 '대장동 사태' / 안영춘
[아침햇발]
안영춘|논설위원
추석 연휴 때 일이다. 한달에 두어번 불가피한 용무에 쓰는 16년 된 소형차를 타고 집을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호대기에 걸렸는데, 매캐하게 타는 냄새가 차 안으로 스며들었다. 조수석 뒷바퀴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차를 길가로 빼려고 사방을 둘러봤다. 검게 선팅된 독일산 고급차들이 에워싼 한가운데 우리 차가 투명한 탁상용 어항처럼 오도카니 놓여 있었다. 초보운전인 둘째 딸은 운전대 앞에서 놀란 금붕어마냥 얼어붙었다. 아비는 어떻게든 용기를 주고 싶었다. “쫄지 마! 우리 차는 상위 12%야!”
나는, 정확히 말해 ‘우리 가구’는 정부가 공인한 대한민국 상위 12%다. 25년 된 20평대 초반 아파트에 사는데, 윤희숙 전 의원과 다른 ‘순수 임차인’이다. 전세 대출금은 5년 만에 끝이 보인다. 암호화폐는커녕 주식 하나 없다. 소득 수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쩌다 귀띔을 받은 이들이 “설마!”(의심)는 아니어도 “에이!”(반신반의) 하고 반응하는 정도다. 일산 새도시 언저리에 사는 덕에 경기도에서 챙겨주는 재난기본소득을 받았지만, 내 살림 형편을 꿰는 이들은 정부가 내게 부여한 정체성에 분개하거나, 더러 의아해한다.
정부 산식이 맞다면, 나와 큰딸의 건강보험료 합계가 2인 가구 중에 상위 12% 안에 들었다는 얘기다. 큰딸은 헤어 디자이너로 불리는 특수고용노동자로, 지역보험에 들어 있다. 작은딸은 주소가 학교 기숙사여서 가구원 수에서 빠진다. 정부 보기에 우리 집은 2인 맞벌이 가구다.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과평가될 여지가 없지 않다. 그걸 알면서도 큰딸의 소득이 하릴없이 궁금해져 뒤통수를 긁적이며 캐물었다. 우리 가구의 드높은 지체에 미치는 기여도는 나보다 현저히 낮은 거로 확인됐다. 괜히 가정불화만 빚을 뻔했다.
나는 정부가 꼼수를 부렸을 거라 생각지는 않는다. 아니, 나는 주관적 느낌보다 부유할 수도 있다. 양극화 시대의 구도를 1 대 99로 볼지 20 대 80으로 볼지 논쟁하는 시대다. 평균이 아닌 백분위로 줄을 세우면 20%를 넘어 12%에 든다 해도 경악할 일은 아니다. 코로나로 벼랑 끝에 몰린 400만 자영업자는 내 뒤로 꼬리별처럼 늘어설 터이다. 단체 활동가나 젊은층이 많은 인적 네트워크 탓이 크겠으나, 사적 모임에서 비용을 낼 때 스스로 ‘정규직 가중치’를 부여하곤 한다. 요컨대, 우리 국민 상당수는 나보다 빈곤하다.
그럼에도 정부가 나를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수식이 아무리 정확한들 타당성이 없으면 숫자놀음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복지예산 규모로는 보편복지입네 선별복지입네 하는 논쟁 자체가 기만적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코로나 재정 지출을 보면 사정은 더 딱하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지출은 3.4%다. 미국은 16.7%, 일본은 15.6%에 이른다. 비교하는 게 무색할 지경이다.
얼마 전 <주간경향>이 그 차이를 피부에 와닿게 비교했다. 프랑스 파리, 미국 애틀랜타, 캐나다 토론토, 일본 도쿄에서 식당을 하는 동포 4명이 받은 코로나 지원금이 우리 돈으로 치면 1억1천만~2억8천만원이었다. 같은 기간 충남 천안에서 대형 카페를 운영하는 이는 600만원을 받았다. 지난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만장일치로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했다. 이런 사례는 이 기구 역사상 유일하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은 코로나 위기에 국민의 생존을 외면한 유일한 선진국이다.
사회복지학자 윤홍식은 근작 <이상한 성공>에서 한국의 성공 요인과 미래의 덫이 되는 요인이 하나라고 역설한다. ‘각자도생’이다. 우리 국민은 국민연금보다 개인연금에 훨씬 많은 돈을 낸다.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사보험에 들면 따박따박 소득공제를 해주는 것이다. 몇해 전 나는 급여에서 미리 떼는 소득세를 회사 기준의 120%로 올렸다. 연말정산 때마다 100만원 안팎을 토해내다 못해 찾은 궁여지책이다. 아는 세무사에게 물으니 사보험이 전무한 것부터 짚었다. 국가는 각자도생에 무심한 나를 징벌한다.
우리 국민에게 각자도생의 최전선은 단연 부동산이다. 노인부터 청년까지 만인 대 만인이 벌이는 이 투쟁에서 계급이 결정된다. 무주택자는 ‘임차인’이라는 법률적 신분도, 지대에 무관심한 숙맥도 아니다. 유주택자가 되기 전까지는 끝없이 수탈을 당하는 식민지 하층 계급이다. 박근혜 정부 경제부총리였던 최경환은 국민에게 “빚 내서 집 사라”고 부추겼다. 국민의 주거 생존권에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징적 선언이었다. 정부가 아무리 내게 ‘상위 12%’라는 면류관을 씌운들, 나는 ‘이상한 선진국’의 빈곤층이다.
이런 나라에서 대장동 사태는 과연 기함할 일인가. 내 눈에는 토건 카르텔이 변칙적인 기술을 선보인 조금 특이한 사례일 뿐이다.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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