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가계대출 억제, 따져보면 은행 담합 유도 아닌가

조귀동 기자 2021. 10. 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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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동 기자

“경제 성장 속도를 웃돈 가계대출 증가를 둔화시키기 위해 가격(=대출금리) 인상이 불가피해지면서 순이자마진(NIM)도 확대될 전망이다.”

최근 증권사에서 발간한 금융산업 분석 보고서의 공통점은 금융회사에 투자해야 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대출 금리와 조달 금리 간의 격차인 NIM 확대를 꼽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으로 대출 금리가 큰 폭으로 뛰면서 조달금리와의 격차를 늘릴 것이라는 논리다. 한동안 IT·바이오·엔터테인먼트 등 고성장 기술주에 밀려 있던 금융회사 주가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돈 냄새를 잘 맡는 금융투자업계의 시각은 가계대출 억제 정책의 본질이 경쟁 제한과 그에 따른 상품 가격(즉 대출금리) 상승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자산 버블을 억제하고 거시금융 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바꿔 얘기하자면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를 기업이 가지고 가는 결과를 낳는다는 얘기다.

정부는 고승범 금융위원장 취임을 계기로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 대출 창구를 틀어막는 방식으로 가계대출을 억제하고 있다. 2020년 말 대비 6%만 대출을 늘릴 수 있게 하는 쿼터(quota)제다.

9월 말 기준으로 7.3%인 NH농협은행은 진작에 대출을 중단했다. 4.1%인 우리은행은 10월 들어 지점별로 적게는 5억원, 많게는 수십억원을 1개월 한도로 설정했는데 3영업일만에 한도를 소진한 지점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5일 5%를 넘어선 KB국민은행도 영업점별 대출 한도를 설정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하나은행(5.2%)도 11월부터 대출모집인 영업을 중단하는 등 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 보험사, 저축은행들도 대출 쿼터제의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신용대출 한도를 큰 폭으로 줄이는 등의 조처를 하고 있다.

2021년 9월 주요 은행 가계대출 증가율. /조선DB

금융위 방식은 6% 한도에서 ‘알아서’ 대출을 줄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대출을 해주고, 누구에게는 안해주는’ 방식을 취하기 어려운 금융회사들이 대출금리를 올리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지난달 말 현재 신규 주택담보대출 금리(변동금리·신규 코픽스 연동)는 연 2.98~4.53%로, 8월(2.62~4.19%)보다 0.35%포인트(p) 전후로 올랐다. 이 기간에 코픽스 금리는 0.07%p 상승했다. 조달금리를 웃도는 수준으로 대출금리를 높인 셈이다.

은행의 이 같은 행동은 사실 금융당국의 ‘설계’에 부합한다. 가계대출은 금리와 한도 이외에 차이가 없기 때문에 고객 이동이 자유로운 편이고, 은행간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한도는 금융당국의 여러 대출한도 규제 때문에 딱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다. 결국 가격만 가지고 경쟁하는 시장에서 은행별로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을 제한하면, 은행은 가격을 높여도 고객들을 잃을 걱정이 없다. 은행이 독점까진 아니지만, 사실상 과점적인 지위에서 가격을 매길 수 있게 된다.

6%라는 한도는 올해 주택가격과 전세 임대료 상승률을 한참 밑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8월 수도권의 중위 주택 매매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5% 올랐다. 광역시 가격 상승률은 15.3%에 달한다. 전세는 더 심각하다. 수도권 중위 전세 임대료는 18.6%, 광역시는 16.6% 각각 뛰었다. 그만큼 주택대출 한 건 당 금액이 늘어났을 건 분명하다. 6%라는 수치는 대출 건수를 크게 줄이라는 주문인 것이다. 그만큼 빡빡한 대출 한도 규제 속에서 은행의 대출금리 인상 여력(즉 고객이 이탈하지 않을 수준만큼의 금리 인상 여력)은 높다 할 수 있다.

금융 당국의 행정지도에 따른 공동행위는 몇 년에 한 번씩 담합 여부를 둘러싼 논쟁의 대상이 됐다. 지난 2013년 공정거래위원회가 9개 생명보험사가 변액보험에 적용하는 최저보증수수료율을 담합했다고 판정해 20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 대표적이다. 금융감독원이 최저보증수수료율을 특별계정적립금의 0.1% 내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행정지도한 것이 발단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보험회사들은 상한선인 0.1%로 수수료율을 책정했다. 2014년 대법원은 공정위의 부과가 부당하다며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 사건은 소비자 입장에서 금융당국발 가격 담합의 좋은 사례로 비쳤다.

올해 주택담보대출 증가는 아파트 분양에 따른 집단대출, 전세대출, 정책 모기지 위주였다. 이동훈 금융위 금융정책과장은 지난달 금융연구원이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지난해 대비 주택담보대출은 절반 정도로 꺾였고, 신용대출도 급감했는데 실수요에 해당하는 대출들이 많이 늘었다. 정책 펴는 입장에서 어려운 입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 정책에 따른 대출 수요를 억누르기 위해 은행의 금리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의미다.

실수요자나 전세 세입자 입장에서는 정부의 주택 정책 실패로 고통을 겪는 것도 모자라, 정상적인 시장 환경에서 내지 않아도 될 고금리에 시달리게 됐다. 그리고 그 이득은 고스란히 은행이 챙겨간다. 이게 수탈이 아니면 뭔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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