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美 부채한도 협상과 '뉴저지 상어 떼'의 교훈
재집권위해 물불 안가리는 공화당
상어 출몰까지 상대에 책임 따지듯
사상 초유의 디폴트 위기 알면서도
유권자 공포 조장하려 조정안 부결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최근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 상태를 불러올 부채 한도 조정안을 부결 시킴으로써 글로벌 재정 위기의 새로운 단초를 열었다.
물론 그들의 내세운 주장은 다르다.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은 부채 한도를 올리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의 부결을 민주당의 통치력 결여로 몰아붙였고 다른 일부 야당 의원들은 균형 예산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조치였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지난달 표결이 공화당의 정치적 사보타주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문제는 이 같은 정치적 폭거가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부채 한도는 필리버스터와 한데 어우러져 소수당에 국정 운영의 기반을 흔들어 놓을 엄청난 파괴력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독특한 제도적 장치다. 정부의 지출 규모와 세율을 정한 재정 관련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이와 관련한 더 이상의 추가 논의는 없다는 게 일반의 통념이다. 그러나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의회를 통과한 법안이라 하더라도 이로 인해 예산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면 상원의원 40명의 동의로 적자 보전에 필요한 국채 발행을 막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곧바로 국가적 재정 위기 상황이 닥치게 된다.
이 같은 재정 위기의 파장은 대단히 심각하다. 연방정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예산이 동나 필요 불가결한 공공서비스가 중단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연방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는 전 세계 금융거래의 담보로 사용되기 때문에 국제금융 시스템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가 초래한 금융 공황 당시 단기 연방 채권의 이자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겁에 질린 투자자들이 최고의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미 국채로 몰렸기 때문이다.
미국 국채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국을 믿을 수 없는 거래 상대로 만드는 것과 매한가지다. 미국 정부의 채무 지불 능력이 무책임한 야당의 변덕에 좌우되기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공화당이 하나로 똘똘 뭉쳐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올 부채 한도 조정안을 부결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공화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뉴저지 상어 떼’의 교훈을 터득했다. 좀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공화당은 현 정권에 대한 평가적 성격을 지닌 ‘회고적 투표(restrospective voting)’를 무기화했다.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는 것보다 정당 정책에 관해 유권자들이 아는 바가 별로 없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분명히 밝혀졌다. 심지어 그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조차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올해 초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미국 구조 계획 덕분에 연방정부의 재난지원금을 수령했다. 미국 구조 계획은 당론에 따른 양당의 표결을 거쳐 법제화됐다. 물론 공화당은 이 법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지방 유권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난지원금이 민주당 덕분이라는 답변은 절반에 불과했다. 반면 전체 응답자들의 3분의 1은 미국 구조 계획안이 공화당 주도로 법제화됐다고 답했다. 공화당 의원 전원이 이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은 도대체 무엇에 반응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유권자들은 전반적인 상황이 제대로 돌아갈 때 집권 여당을 지지한다. 반대의 경우 설사 그것이 집권당의 정책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여당이 독박을 뒤집어쓰게 된다.
이와 관련해 정치학자인 크리스토퍼 애컨과 래리 바텔스는 일반의 예상과 달리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1916년의 대통령 선거를 즐겨 인용했다. 당시 우드로 윌슨은 자신의 출신 주인 뉴저지에서 패했다. 왜 그랬을까. 애컨과 바텔스는 당시 뉴저지 연안에서 연달아 발생한 상어 떼의 공격이 주된 요인이었다는 견해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윌슨에 대한 호불호에 상관없이 상어 떼의 공격은 윌슨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러나 뉴저지의 유권자들은 그에게 책임을 물었다. 보다 산문적으로 말하자면 대통령 선거는 선거 직전 몇 분기의 경제 상황에 의해 승패가 갈린다. 하지만 단기적인 경제 움직임에 대통령이 미치는 영향력은 연방준비위원회(Fed·연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유권자들은 경기 상황을 이유로 지미 카터를 백악관에서 끌어냈지만 정작 그들에게 몰매를 맞아야 할 장본인은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 위해 경제를 불황의 늪 속에 빠뜨린 폴 볼커 연준 의장이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그 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물론 회고적 투표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새로운 게 있다면 정권 탈환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공화당의 작태다. 그들은 정권 재장악을 위한 그들의 사보타주가 국가 전체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제 유권자 자신에게 물어보라. 상대 정당이 집권한 경우 국정 운영을 방해하는 것이 정권 탈환에 유리한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정당이 선택할 최적의 정치 전략이 무엇일까. 대답은 집권당에 불리한 사태가 발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거의 노골적인 사보타주 전략도 나온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생각해보라. 디샌티스는 효과적인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응책을 막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마스크 착용은 물론 사기업의 백신 접종 의무화 시도까지 차단하려 들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종식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 이제 공화당의 전략에 따라 채무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매코널이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부채 한도 상향 조정안 부결이 금융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그에게는 바이든 대통령이 국정 총책임자일 때 위기가 발생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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