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안보 '잃어버린 5년'과 차기 정부 선택
김홍균 前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
오커스 동맹과 쿼드 정상회의
중국 위협 급속한 증대 대응책
新전체주의 저지에 美 총력전
文정부 여전히 갈팡질팡 심각
‘美 호감’ ‘中 반감’ 모두 77%
국민과 동맹은 이미 마음 정해
지난달 미국·영국·호주로 구성된 새로운 안보동맹인 오커스(AUKUS)의 출범은 여러모로 놀라운 사건이다. 전 세계 핵확산금지의 수호자 격인 미국이 핵무기 전용 위험을 무릅쓰고 고농축우라늄(HEU)을 연료로 하는 핵추진잠수함 기술을 호주에 전수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우방 프랑스가 호주와 협상 중이던 70조 원 이상의 디젤 잠수함사업을 좌초시켰고, 이에 대해 등에 칼을 꽂았다며 극렬히 반발하는 프랑스는 친구끼리는 하지 않는 자국 대사 소환이란 강수를 뒀다. 오커스 출범을 함께 발표한 세 나라 정상 그 누구도 특정 국가를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 세계는 ‘방 안에 있는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가 중국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워싱턴에서는 미국·일본·호주·인도 정상이 참석하는 쿼드(Quad)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두 달 만에 최초의 정상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한 데 이어, 코로나바이러스 델타변이가 미국 내에서 급속히 확산되는 와중에 대면 회의까지 연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쿼드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상 공동성명에서 4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을 위해 국제법에 근거하고 강압에 굴하지 않는 자유롭고, 개방된, 규칙에 기반한 질서를 증진해 나갈 것을 재차 다짐’했다. 중국을 명시적으로 거명하지 않았지만, 누구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분명하게 들린다.
본래 쿼드는 2004년 인도양 지역에서 발생한 쓰나미 재해의 복구·원조를 위해 네 나라가 ‘쓰나미 핵심 그룹’을 결성한 데서 비롯됐다가 점차 중국 견제 성격이 부각되는 데 부담을 느낀 호주가 2007년 탈퇴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장기 동면 상태이던 쿼드를 2017년에 다시 깨운 사람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였다. 아베와 트럼프가 합작한 인도·태평양 전략이 이념적 토대가 됐다. 10년 전 쭈뼛거리던 호주와 인도도 태도가 바뀌었다. 트럼프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비판한 바이든 대통령이 쿼드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바야흐로 ‘쿼드 2.0’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4개국이 다시 뭉치게 한 가장 큰 동인은 그새 급속히 커진 중국의 위협이다. 지난해 호주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코로나19의 발병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국제 조사 필요성을 제기하자 중국은 호주산 석탄·소고기·와인에 대해 대대적인 경제 보복을 시작했다. 호주 정부와 국민은 그간 정치·사회·학계 등에 파고든 중국의 ‘소리 없는 침공’에 맞서기 시작했다. 1975년 이후 소강상태이던 중국과의 국경 충돌은 인도에 중국의 전략적 위협이 경제적 기회를 압도함을 일깨웠다. 인도가 군말 없이 쿼드의 각종 활동에 참여하는 이유다.
쿼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5년 내내 갈팡질팡이다. 참여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거리를 두더니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에는 쿼드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며 태도를 바꿨다. 미·중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흔히 우리나라 상황을 ‘안미경중(安美經中)’으로 표현한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으니 어느 한쪽을 택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오커스는 인공지능(AI)·양자컴퓨팅·사이버 협력을, 쿼드는 백신·기후변화·핵심 신기술과 공급망 협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분법적으로 볼 일이 아닌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도 조언을 구하는 매슈 포틴저 전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최근 외교지 기고에서 미국과 세계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시진핑의 ‘신전체주의(neo-totalitarianism)’ 세계질서 구축 기도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퓨리서치센터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은 조사 대상 17개국 중 미국에 대한 최고 호감도(77%)를 보였고, 중국에 대한 반감도(77%)도 일본에 이어 최상위권이었다.
결국,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와 원칙,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전략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뤄 나갈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 국민과 동맹은 이미 선택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제 결코 쉽지 않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차기 정부의 선택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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