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도 아름다움으로 그리는 재미화가 김원숙 "인생은 소중한 선물"

김은비 2021. 10. 7. 05: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사동 예화랑서 '인 더 가든'展
인생의 슬픔과 고통도 아름답게 승화
美 일리노이주립대에 '김원숙 칼리지'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지난 2019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는 예술대학에 재미화가 김원숙(68)의 이름을 따 ‘김원숙 칼리지’(Kim Won Sook College of Fine Art)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 작가가 모교인 일리노이 주립대에 1200만 달러(약 143억원)라는 거금을 기부해 이를 기리고자 한 것이다. 미국 대학이 한국인 이름을 딴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작가는 “1972년 유학을 가서 장학금 혜택을 많이 받았는데 그 보답을 한 것”이라며 “기부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은 김원숙 작가의 개인전 ‘인 더 가든’(In The Garden)을 개최했다. 전시는 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회화와 조각 등 80여 점을 선보인다. 밤 하늘의 아름다운 별빛을 가득 품고 있는 여인, 꽃잎이 흩날리는 정원에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부부 등 벽에 걸린 그림들은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온기가 전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따뜻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김 작가는 “인생을 살면 슬프고 돌이킬 수 없는 나쁜 일도 많다”면서도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고 의미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원숙 작가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에서 열린 자신의 개인전 ‘인 더 가든’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입양한 자녀와 한국 전쟁 고아 남편…“아픔 품고 싶어”

김 작가의 삶에는 사연이 많다. 김 작가는 1971년 홍익대 미대에 입학했다가 1년간 영어 공부를 하고 이듬해 홀로 미국으로 떠났다. 부모의 지원을 받을 만한 상황이 안됐던 김 작가가 선택한 곳은 일리노이 주립대였다. 당시 가장 많은 장학금을 줬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에서 유학을 하며 돈이 많은 사람을 수없이 봤지만 사회에 환원을 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며 “나도 누군가를 꼭 도와주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작가는 학교를 떠나고 40여년이 지나서 그 꿈을 실제로 이뤘다. 김 작가의 남편인 크레멘트(69)가 경영하던 미국 의료기기 회사를 정리하면서 수백억원의 큰 돈이 생기면서다. 크레멘트는 발명가이자 기업가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한 후 의료기구 관련 특허를 60개 가량 출원하며 회사를 성공시켰다. 김 작가는 기부를 결심한 계기에 대해 “현실감 없는 큰 돈을 갖고 있으면 재앙이 올 것 같았다”며 웃었다. 남편 역시 모교인 퍼듀대에 거액을 기부했다.

이들 부부에게는 또 다른 특별한 사연이 있다. 김 작가는 40년 전 한국에서 혼혈아 2명을 입양해 키워 냈다. 51세인 아들은 사업을 하고, 48세인 큰 딸은 미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우연일까. 아이들을 입양하고 20년 후에 만난 현재 남편인 크레멘트 역시 한국 전쟁 고아다. 전쟁 무렵 한국에서 혼혈아로 태어난 크레멘트는 정확한 생년월일도 모른다. 크레멘트는 한국 보육원에서 자라다 1956년 미국으로 입양됐다. 크레멘트는 당시 미국이 처음으로 입양을 허락한 한국 전쟁 고아 중 한명으로 미국 언론에서 크게 다뤄지기도 했다. 김 작가는 “자식들과 남편이 입양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 통하는 부분이 많다”며 “나보다 더 친하게 지낸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한국에서 온 입양아들이 친부모를 찾을 수 있도록 DNA 검사 프로그램을 만들고, 북한 고아를 지원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사업에도 참여하는 등 꾸준히 한국 입양아들을 돕고 있다. 김 작가는 “전 세계에 있는 한국인 입양아들은 수만명에 달할 정도”라며 “좋은 부모를 만난 아이들도 많지만, 입양 후 하인처럼 부려지거나 자살·마약 중독 등에 노출되는 등 일반적인 10대라면 겪을 수 없는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도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50여년간 작가의 삶...성공했다 자부”

김원숙 작가의 그림에는 이같이 작가가 살아온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20대에 떠난 고향 한국에 대한 그리움, 따뜻한 불 앞에서 기타를 치는 남편,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 등이 그렇다. 그는 “실제로 내 그림은 일상에서 나온 이야기와 감상을 그대로 그린 것”이라며 인생의 모든 순간이 그림의 소재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를 그림을 통해 전하려 했다”며 “슬프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그 속에서 얻을 것이 분명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고 또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의 그림에서는 이런 의도가 어렵지 않게 읽힌다. 작가가 일부러 직관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난해한 현대미술을 보면 무슨 의미인지 와닿지 않아서 괜히 주눅이 들고 부담스럽기도 했다”며 “예술은 하나의 소통인데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를 못하면 실패라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실제로 자신이 작가로 제일 뿌듯한 순간도 관람객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 무언가 얻어가는 것이 표정에서 읽힐 때라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지난 50여년간 작가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 “성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는 항상 삶이 먼저였고, 예술은 살다 보면 나오는 부산물 같은 것이었다”며 “그럼에도 50년간 계속 미술을 해왔고, 그래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도 삶의 의미,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김은비 (demeter@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