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무서운 ‘좋아요’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타인의 인정을 목숨과 맞바꾼 파이톤 이야기가 나온다. 파이톤은 태양신 아폴로의 혼외자로 태어나 계부 밑에서 자랐다. 세상이 자신의 위대한 출생 배경을 믿지 않자 아폴로를 찾아가 “아버지 소유의 천마(天馬)가 끄는 수레에 올라 천도(天道)를 달리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오늘날로 치면 부자 관계 인증 샷 요구다. 아폴로는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아들의 뜻을 꺾지 못했다. 파이톤은 세상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을 날다가 추락해 죽었다.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갈망하는 인간 본성을 뜻하는 파이톤 콤플렉스가 여기서 비롯됐다.
▶한 데이터 분석업체는 어떤 개인이 SNS상에서 어디에 ‘좋아요’(likes)를 눌렀는지 68개만 알면 그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그의 피부색과 가정사, 마약·술 중독 여부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70개를 알면 그와 잘 아는 ‘절친’처럼 될 수 있고, 300개를 알면 그의 아내나 남편보다 그를 더 속속들이 알게 된다. 300개를 넘어서면 그에 대해 그보다 더 잘 아는 전지자 경지에 오른다. ‘좋아요’가 기업들에 소중한 마케팅 자료로 쓰이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상업적 가치가 1조달러를 넘는다고 한다.
▶'좋아요’는 강력한 유권자 정치 성향 파악 툴(tool)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거대한 해킹’은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측이 데이터 분석 기업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를 통해 페이스북 이용자 8700만명의 개인정보를 불법 활용한 기법을 추적했다.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를 겨냥해 개인 맞춤형 정치 광고를 제작할 때도 ‘좋아요’와 공유(share), 댓글 등을 활용했다.
▶페이스북에서 근무하던 한 여성 매니저가 엊그제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페이스북이 청소년의 정신적 문제를 방치하고 정치적 양극화를 조장해 왔다고 주장하면서, 페이스북이 기업 윤리를 저버린 중심에 ‘좋아요’가 있다고 성토했다. 에티오피아를 피로 물들이고 있는 종족 간 폭력 배후에도 혐오를 조장하는 글을 띄우고 ‘좋아요’를 유도하는 부정적인 메커니즘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란 책을 쓴 오타 하지메 일본 도시샤대 교수는 “나를 인정하는 이는 ‘남’이기 때문에 인정에 매달릴수록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없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인정 욕구가 일으키는 온갖 폐해를 개인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좋아요’ 개수를 숨기는 등의 보완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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