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돌멩이로 국 끓이는 법
[경향신문]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서울비전 2030’을 발표했다. 발표를 들으며 정치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사다리’ 타령이, 그중에서도 ‘주거 사다리’ 타령이 특히나 답답했다.
‘일부’ 30대 중반 또래들은 요즘 한창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딱히 집을 사고 싶지 않은 나도 그런 정보에 노출된다. 그걸 보며 내가 정말 의아한 건, 한국 사회가 신축 아파트 ‘투자’에 한 번만 성공하면 몇 억원의 차익을 거두는 건 일도 아니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돈벌이를 시작하고 돈의 가치를 가늠해 본 적이 있다. 그해 월급이 약 70만원이었는데, 한 달에 50만원씩 16년 넘게 모아야 1억원이 됐다. 그러나 부동산에서 1억원은 돈도 아니다.
한국은 도박을 불법의 영역에 두고 있다. 도박죄의 보호법익은 ‘건전한 노동관념 내지 경제도덕’이다. 부동산 시장을 자꾸 보면 내 안의 ‘건전한 노동관념’이 박살난다. 왜 이것은 도박이 아닌가? 이 ‘사다리 게임’이 아주 큰 보상과 처벌을 받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고, 여기 몰두하는 사람이 많은 한 논의는 산으로 가게 돼 있다. 문제의 해답은 공공임대주택이다. 집으로 ‘투기’할 수 없는 시스템 안에서 주택이 공급되고, 세입자도 사기를 당하지 않는 안전한 집 말이다.
얼마 전 열심히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친구와 만났다. 친구는 사업 투자라는 것이 어떤 경로로 이뤄지는지를 나에게 설명했다. “사업은 말하자면 돌국을 끓이는 거야. 돌멩이를 커다란 냄비에 넣고, 이걸로 한번 국을 끓여 보겠습니다, 하고 계속 젓고 있는 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와서 들여다보면서 뭘 갖다 넣어서 그게 진짜 맛있는 국이 되는 거지.” 나는 운동 역시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
프랑스는 2019년 기준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전체 주택 중 21.4%에 달하고, 독일 베를린의 시민들은 지난달 주민 투표를 통해 부동산 대기업이 소유한 24만채의 임대주택을 사회화하는 데 찬성하는 의견을 절반 이상 모아냈다. 상상해 보면, 거기도 이런 움직임을 처음으로 원하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 의견에 누군가가 동조하게 됐고, 어느덧 그게 그럴듯한 메시지로 사회에 통용되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을 것이다.
공공 정책의 문제는 세수라고들 한다. 괜찮은 임대주택에서 노년까지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게 꿈이라,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증세에 대한 의견을 종종 물어 본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십중팔구 세금이 잘 쓰인다는 보장만 있다면 얼마든지 세금을 더 내겠다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내심 내가 사는 동안 ‘돌국’을 끓여서 다 같이 나눠 먹는 게 가능할지도 몰라, 생각한다.
다들 쉽게 잊지만 금융기관들은 기업이며, 이들이 가져가는 이득은 천문학적 수준이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여러 명목으로 이자를 내고 있다. 많은 이들의 마음만 동하면 그걸 모아 세수로 만들어 내는 건 일도 아닐 텐데. ‘사다리 게임’ 대신 어떤 토양이라도 발 딛고 살기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그건 ‘우리’가 믿으면 이루어진다. 그게 나의 희망이다.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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