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 '닮은 듯 다른' 아버지와 아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2021. 10. 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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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문준용, 소리를 향한 비행, 싱글 채널 비디오, 2019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이자 미디어아티스트인 문준용은 지원금을 받거나 전시를 할 때마다 정치판에 소환된다. 한쪽에선 세계적인 작가라 하고 또 한편에선 낯 뜨겁고 민망한 수사라며 옥신각신한다. ‘아빠 찬스’를 사용했다는 특혜 의혹은 단골 메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냉정하게 말해 문준용은 아직 ‘세계적’이라는 형용사가 어색하다. 그가 참여한 그룹전의 평론을 쓰고 박수근어린이미술관 출품작등을 직접 관람한 입장에서 그에게 맞는 표현은, ‘유망한’ 혹은 ‘발전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이다.

세계적이지 않다는 게 자격 없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다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문준용도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고 예술성이 포함된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얼마든지 지원금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예술적 가치와 기술적 가치의 병합, 새로운 형식에 관한 그의 실험은 미술계 내에서도 주목받아온 게 사실이라는 점에서 문준용에 대한 여러 기관들의 지원은 딱히 문제 삼을 게 없다. 그럼에도 정치권 일부에서 그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이유는 진중권의 말처럼 “아들에 대한 미학적 평가를 아버지에 대한 정치적 평가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여기엔 국민에게 부조리와 불합리, 불공정의 금수저라는 이미지를 심으려는 정치적 전략이 숨어 있다. 부당한 혜택 의혹으로 도덕성에 흠집을 내 아버지를 공격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의도를 생성하는 배경엔 권력이란 욕망이 놓여 있다. 욕망에 젖으면 자신만 선(善)이라는 착각에 빠져 가치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양심과 이성은 온데간데없이 상대를 지배하려는 행태권력만 내보인다. 명백한 ‘아빠 찬스’로 취직해 퇴직금 50억원을 받은 자기 아들은 감싸고 남의 아들은 근거 없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내로남불’의 전형인 곽상도 국회의원이 대표적이다. 세상에 뭐 이런 위선적인 인간이 있나 싶을 정도다.

필자는 문재인 정부의 어설픈 행정에 실망이 크다. 주거사다리를 걷어차버린 부동산 정책이나 내 집 하나 마련해 보겠다고 아등바등 살아온 서민들의 꿈을 빼앗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민심 이반을 가속화한 조국 사태와 막말의 변창흠, 예술에 관한 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황희를 문화예술부처 수장으로 기용하는 엉망인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모든 것을 조합하면 결국 4년 전 취임사에서 밝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은 헛구호에 불과하다. 책임지지 못할 단어들의 나열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구분되어야 한다. 문준용은 분명 유망한 작가이고, 아버지와는 다른 개별적인 삶을 살아온 한 명의 자연인이다. 아버지와 아들 간 정치적 밀월 따윈 밝혀진 게 하나도 없다. 그런 그에게 무차별적인 정치공세를 가한다는 건 졸렬하다. 어쩌면 한국미술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예술인의 미래를 꺾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양아치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곳이 정치판이라 해도 그래선 안 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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