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진실 감춘 탄소중립위 해명
2050년까지 정부 목표대로 탄소 중립을 이루려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저장하는 에너지 저장 장치(ESS) 구축 비용만 최대 1248조원이 드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전문가들과 함께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검토한 결과다. 탄소중립위 에너지 분과 전문위 의견 검토 결과에 따르면, 2050년까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61.9%까지 늘리려면 ESS 구축에만 787조~1248조원이 필요하고, 여의도 면적의 최대 76배에 달하는 면적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지난달 28일 이 같은 정부 검토 결과를 입수해 보도하자, 탄소중립위는 “관계 기관 실무자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제시된 의견일 뿐”이라며 “(위와 같은 결과는) 에너지 저장 필요량을 100% ESS로 구축한다는 가장 극단적인 가정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설명 자료를 배포했다. 탄소중립위는 “에너지 저장 방식은 ESS 외에도 양수발전과 그린수소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며 “플러스 DR(Demand Response·수요 반응), 잉여 전기의 열 전환, 수소 부문 결합 등을 도입할 경우 실제 필요한 에너지 저장 장치 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플러스 DR은 전력 수요가 적을 때 사용자에게 인센티브를 줘서 전기를 더 많이 쓰도록 하는 제도다. 양수발전은 전력 수요가 적을 때 물을 끌어올렸다가 전력 수요가 많을 때 방류해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탄소중립위의 이 같은 해명은 이미 앞서 탄소중립위 에너지 분과 전문위 의견 검토 결과에서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 난 것이었다. 산업부는 양수발전 확대 가능성에 대해 “다른 발전 방식에 비해 신규 발전소 건설에 한계가 있다”며 조목조목 반대했다. 산업부는 우선 양수발전소를 건설하려면 상하(上下)부 저수지 간 적당한 낙차(落差)가 필요한데 이런 부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둘째, 저수지 건설로 수몰 지역이 발생해 주민들의 수용성 문제가 있다고 했다. 셋째, 양수발전소는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 등 다른 발전소보다 건설에 시간이 많이 들어 미래 전력 수급 상황을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산업부는 LNG 발전소는 사업 준비 기간이 6년, 석탄발전소는 7~8년인 데 반해, 양수발전소는 10년이라고 했다. 그러나 탄소중립위는 이 같은 검토 결과는 쏙 빼고 발표하지 않았다. 이미 사업성이 없다고 검토된 내용을 다시 내세우면서 “향후 기술 개발이 가속화하면 에너지 전환 비용은 급속히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만 했다.
구체적 실현 방안 없는 장밋빛 전망만으로는 잠시 국민을 속일 수는 있을지언정 국가 에너지 안보를 지킬 수는 없다. 국민은 개돼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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