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글로벌 투기꾼, 가계빚 급증한 한국 노린다

방현철 경제부 차장 2021. 10. 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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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미국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는 국면엔 항상 글로벌 투기 세력의 희생양 찾기가 시작됐다. 미국이 회복하면 돈 흐름이 바뀌는 ‘머니 무브’가 생기는데, 이를 노려 돈 벌 기회를 찾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후 미국 경제가 ‘반짝’ 상승하던 2010년의 일이다. 글로벌 금융계에서 ‘피그스(PIIGS)’란 단어가 퍼지기 시작했다. 원래 ‘피그스(PIGS)’는 1970년대 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을 낮춰 부르던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아일랜드까지 넣어 남의 나라 돈으로 재정을 충당하다 위기를 맞은 ‘재정 위기국’이란 뜻이 됐다. 결국 이 나라들은 투기 세력 공격으로 국채 금리가 뛰고 시장이 혼란에 빠졌고,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은 구제금융까지 받았다.

유럽 부채 위기가 잠잠해지자 ‘프래자일 파이브(fragile five)’란 말이 글로벌 금융계에 퍼졌다.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는 2013년 경상수지 적자가 큰 브라질·인도네시아·인도·터키·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섯 나라를 통화 취약국으로 묶었다. 당시 벤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은 미국 경제가 본격 회복되자 2014년부터 돈 풀기를 줄이는 ‘테이퍼링’을 하겠다고 했다. 이들 5국에선 외국인 자금이 빠지면서 통화 가치 하락, 주가 폭락 등으로 난리가 났다.

한국은 글로벌 위기 때마다 ‘글로벌 ATM(현금인출기)’으로 불린다. 대외 의존도가 높다는 숙명에 문을 열어놔 외국인이 쉽게 돈을 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2010년, 2013년 두 번의 희생양 찾기는 다행히 비켜 갔다. IMF 외환 위기, 글로벌 금융 위기로 된통 당한 후 외환보유액을 막대하게 쌓고 단기 외채는 줄여 놨다. ‘거시 건전성 3종 세트’라고 해외 투기 자금이 과도하게 들어오는 걸 막는 조치도 했다.

이제 다시 미국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서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이르면 11월 코로나 위기로 실시했던 비상 조치를 거두고 테이퍼링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또다시 글로벌 투기 세력이 희생양을 찾을 시기가 오는 것이다. 다만 사전에 이들이 어떤 기준을 들이밀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위기는 매번 다른 얼굴로 찾아온다.

현재 한국 경제에 가장 취약한 부분을 꼽으라면 폭증한 가계빚이다. 이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18년 2월 가계부채에 취약한 나라로 10국을 지목할 때 한국이 들어갔다. WSJ는 한국과 노르웨이의 가계부채 증가율이 유독 높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은 그간 취약 지점을 보강하기는커녕 구멍을 키웠다. 집 투기를 막는다며 ‘헛발질’ 부동산 정책을 펴다 젊은 층을 ‘패닉 바잉’으로 몰았다. 코로나 위기로 금리를 대폭 낮추면서 혁신 경제 부문으로 돈이 흘러 들어갈 방안을 마련하는 덴 게을리했다. 그 결과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올 1분기 105%로 2년여 만에 13.2%포인트가 늘었다. 상승폭이 홍콩·노르웨이에 이어 셋째다. 투기 세력이 공격 대상으로 가계부채 취약국을 묶는다면 한국은 빠질 수 없어 보인다.

주요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증가 추이 비교. /자료=한국은행

최근 월가에 유행하는 말 중 하나가 ‘파티를 즐기되 문 앞에서 춤춰라(Party hard, but dance near the exit)’라고 한다. 미국의 돈 풀기가 끝날 때를 대비하란 뜻이다. 지금 우리 경제 관료들이 하듯, 몇 년 손을 놨다가 시험 때 벼락치기 공부하듯 미봉책을 써선 글로벌 투기의 타깃이 되기 쉽다. 최근 전방위로 나서 가계빚 줄이기에 나선다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늦어도 너무 늦었다. 다음 정부 경제팀은 제발 미리 약한 지점을 보강하는 정책을 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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