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목탄으로 그린 숲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10여년 전 처음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12월 31일, 편도였다. 한국에 돌아갈 날도 기약하지 않았고, 요금이나마 아껴보려는 심산이었다. 거기서 더 아끼겠다고 무거운 짐과 함께 프랑크푸르트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 뮌스터에서 환승하고 다음 날 아침 베를린에 도착하는 야간열차를 탔다. 여러모로 스스로를 힘겹게 하는 외국 생활의 시작이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미술 재료는 스케치북, 학교 실기실에서 주워 모은 목탄과 연필이 전부였다. 당시 대학 장학금 외에 다른 지원은 없었으므로 절약해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컸다. 물론 질 좋은 물감 등의 여러 재료를 갖추면 볼거리 풍성한 그림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모든 걸 갖췄더라도 반드시 훌륭한 그림이 되는 건 아니며, 그렇다면 재료 고민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그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든 온전히 공들여 그릴 환경만 되면 즉시 그림을 그렸다.
작업실에서 도보로 3시간 걸리는 미술관까지 자주 걸어다녔다. 차비도 아낄 겸 미술관 가는 길에 놓인 작은 공원과 숲을 홀로 거니는 일이 즐거웠다. 숲과 강과 호수를 매일같이 보다 보니 그곳의 장면을 주로 그리게 됐는데 재료는 당연히 목탄이었다. 숲의 푸른 풍광을 시커먼 목탄으로 반복해 그려내는 일이 내 미래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흔적들이 쌓여 수백 장의 드로잉과 수십 개의 캔버스로 드러나기 전에는, 그림을 그리는 나조차 이 그림이 어떤 의미로 확장될지 예상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다소의 궁핍함과 무모함, 오기 비슷한 의지, 그리고 일관성의 반복을 계속하며 묵묵히 그려왔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렇게 그리지 않았으면 그다음 그림을 그리지 못했을 것 같은 생각, 또 그다음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숲과 공원이 지척에 보이는 지금의 작업실에서 비로소 원하는 물감으로 커다란 캔버스에 작업하게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렇기에 처음 그림 그릴 때처럼, 나는 오늘도 계속 그리는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