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스마트 시대의 주거와 서울시장의 퇴행
[경향신문]
텔레비전과 비디오, 전축, 전화기 등은 중산층의 전통적인 거실 속 전자기기들이다. 지금은 이 모든 게 폰 안에 들어왔다. 덕분에 손바닥 안에서 음악과 영상을 감상하고 강의, 게임이나 동영상 촬영은 물론 악기도 연주하고 그림도 그릴 수 있다. 이는 소비자에게 다양한 ‘앱’, 즉 디지털 콘텐츠를 제공하는 공급생태계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하드웨어의 성능만 좋아져서가 아니다.
통화 이상의 기능이 막 탑재되던 스마트폰 초기 시절, 공급자나 소비자들은 통신사가 관리하는 폐쇄형 콘텐츠 유통 방식에 익숙했다. 판도가 바뀐 것은 ‘앱장터’를 통해 콘텐츠 공급자들이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며 다양한 앱들이 쏟아져 나오면서부터다. 결국 대세는 개방형 콘텐츠 유통 체제로 재편됐다. 지금은 이런 ‘앱장터’들도 소수의 플랫폼이 과도한 수수료를 가져가는 독점 체제라는 비판이 있지만, 도입 당시는 혁신의 상징이자 토대였다.
얼마 전 서울시장이 느닷없이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었다. 사회주택에 대한 자신의 가짜뉴스가 조목조목 반박당하자 “공기업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며 그래야 원가도 절감된다”고 논점을 바꿨다. 2021년에 서울시장의 인식이 “통화만 하면 되지 굳이 비싼 데이터 이용료를 내느냐”는 수준이라니 몹시 우려된다.
이 시대 사회주택의 목표는 단순히 월세를 낮추는 것만이 아니다. 임대료야 공공의 지원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토지매입가의 2.2%를 매년 사용료로 내고 30년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외국처럼 10달러에 99년 지상권을 부여받으면, 지금의 시세 80%가 아니라 시세 30%의 임대료 책정도 못하란 법이 없다. 그러나 사회주택의 진면목은 ‘통화료’가 아니라 ‘개방적인 콘텐츠 유통’에 있다. 풀뿌리에서 주민 스스로가, 아이디어 가득한 소셜벤처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는 길을 연 것이다.
지난 6년간 사회주택의 성과는 눈부시다. 공유차량, 스터디&창업 카페와 같은 공간과 서비스의 공유 외에도 방역봉사, 치매노인 돕기, 육아와 돌봄 등으로 지역에서 사회통합을 일구고, 커뮤니티 화폐를 통해 물품을 나누는 등, 또 다른 혁신의 토대가 되거나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단순히 ‘착한 기업’이 임대수익을 덜 남기는 걸 넘어 민간의 창의성과 풀뿌리의 자발성을 바탕으로 하드웨어·공급자 주도의 시장을 수요자·소프트웨어 중심의 방향으로 이끌며, 공공주택의 혁신도 자극하고 있다.
이제 공공의 역할은 적자를 감내하는 시혜자로서 주거약자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스스로 문제 해결에 나설 때 지원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직접 앱을 개발하겠다 할 게 아니라 차라리 와이파이를 깔아 정보의 ‘망중립성’을 구현하며 더 많은 시도의 경연장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주거 영역에서라면 사회주택이 선도한 ‘시세차익에 기대지 않는 금융구조’의 바탕 위에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는 공급서비스를 통해 주거선택권을 신장하는 것이다. 가전기기를 대체한 스마트폰 외에도 우리의 집에는 필요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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